성전 파괴가 된 70년 전후설과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였던 96년 설이있습니다
둘다 요한복음과 123서 보다 앞선 편집연대를 가집니다
70년전후설의 경우
로마의 성전 파괴에대한 민간의 혼란.
그리스도교내의 이단의 난립.
유대교인들의 그리스도교인들 박해.
이에대한 비판과 미래제시를 구하고자
편집 되었다는 설입니다
96년의 경우
도미티아누스 3세? 의 박해와
성전파괴의 주범이었던 로마의 멸망 큰성 바벨론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표를 받는다는것도 사도시대에 횡행했던
로마 시민증 거래의 비판의 연장선으로 해석됩니다
므깃도에서의 전쟁또한 과거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로마군의 캠프가 있었기에 포로였던 요한은
당연히 염두해두지 않았을리 없었겠지요
이러한해석은 후대의 역사비평학자들의견해입니다
성서에서 기본적으로 계시록은 재림을 기다리자는
요한의 메시지로 해석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요한1서 4장3절의 적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났다는
구절과 요한복음서의 결국 모든것은 사랑이다라는
종결로 볼때 사도요한은 다갈아엎자는 세상에 대한 심판의
복수심보다는 서로서로 사랑하자는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고 볼수있습니다
그렇기에 계시록 말미 21장의 추가는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21장에서 절대로 추가하거나 빼지말라고 하지요
한마디로 심판을 통해 로마인들을 지옥에보내버리고
말겠다라는것보다는
앞서 봉인된 책에대한 비유에서 볼수있듯이
(봉인된책에대한 해석은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유대교의 사상이 반영되었습니다
봉인되었다는것은 요한의 생전엔
예언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입견을갖지않고 하나님의 판단을기다릴뿐
그들을 사랑하겠다는 요한의 심경의 변화가
잘 드러났다고 볼수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계시록에대한
해석을 이 이상은 하지 않습니다
핵전쟁을 예언했니 인간 몸에 뭘 심을 꺼니하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아무 상관없는 개소리입니다
폰으로 싸질른거라 날이밝으면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