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4)
[유전] [오후 11:09]
석존 - 남방엔 법맥이 안간다(남방불교 = 소승불교,초기불교,근본불교,상좌부불교,니까야불교 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자들)
증일아함경 1011쪽
그 때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무슨 이유로 여래께서는 자리를 펴되 북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불법은 북천축(北天竺)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쪽을 향하도록 자리를 펴게 하였느니라."
[유전] [오후 11:13] 이게 별거 아닌거 같지만 지금 남방불교가 카톡이나 디씨 불교게시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서 한국 불교가 더 어렵게 되었고 님들이 어딜 가더라도 님들의 앎과 그들의 앎이 다른데다 그들이 요즘 너무나 많은 잘못된 지식과 대승불교 폄하를 퍼뜨려 오히려 정상적인 불교신자가 사이비 또는 이단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죠. 잘못된 법이 퍼진다는 것은 그런 사이비나 이단으로 몰리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본인은 물론 가족과 이웃과 나라까지 공사상에 함몰되어 삶을 함부로 포기하고 막행막식으로 결국 세상이 어지럽게 됩니다. 다들 이 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인 마음으로 대처하세요.
낙공외도: 공사상에만 떨어지면 외도이다.
공망
[ 空妄 ]
공(空)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그에 집착하는 태도.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31장에서는 ‘불교의 진수는 공(空)인 바 그릇 들어가면 공망(空妄)에 떨어진다(주: 떨어질 락落)’고 했다. 공(空)의 진리는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위대한 가르침이지만, 그것을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나 단멸론(斷滅論)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법문이다. 불교에서도 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경계하기 위해 공은 단멸론과 상주론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전] [오후 11:25] 파일: 중론 4권.txt
[유전] [오후 11:25]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네."
[유전] [오후 11:26]
"간략하게 제일의(第一義)를 말한 것이다."
"【문】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왜 단지 이 여덟 가지 일만을 들어 타파하는가?
【답】 법이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긴 하나 간략하게 여덟 가지 일을 들어 모든 법을 통틀어서 타파한 것이다.
‘발생하지 않는다’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 논사들은 갖가지로 사물이 생겨나는 상(相)에 대해 말하니, 어떤 이는 원인과 결과가 같다고 말하고"
[유전] [오후 11:27] 중론은 처음 시작부터 오류네요. 불교 제일의는 자비심(대보적경)인데 저런 공사상이 제일의 라고 해놓았군요.
[유전] [오후 11:29] "만약 법이 실제로 있다면 없는 것이 아닌데,전에는 있다가 지금 없다면 이것은 단멸하는 것이고,먼저 자성(自性)이 있었다면 이것은 상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이치에 들어간다."
[유전] [오후 11:31] 자성은 불성을 뜻하는데 이 불성은 처음부터 모든 곳에 있었음을 먼저 숙지하면 저런 논리로 헤아리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모든 곳에 있었으니 앞으로 새롭게 발생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거죠.
[유전] [오후 11:33] 이렇게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중론을 지었다면 이걸 계속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유전] [오후 11:36] 그런데 이들은 법과 자성을 혼동하여 사용을 하죠. 법이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은 것을 두고 이걸 또 불성이 상주하지도 단멸하지도 않는다고 떠듭니다.
[유전] [오후 11:38] "만약 법이 실제로 있다면 없는 것이 아닌데,전에는 있다가 지금 없다면 이것은 단멸하는 것이고,먼저 자성(自性)이 있었다면 이것은 상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이치에 들어간다."
[유전] [오후 11:39] 위 중론 처음 내용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겁니다. 법을 이야기하다가 자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둘을 같은 개념적 이해로 보아 자성이니 무자성이니를 따지며 해석하고 있으니 이것이 맞을 수가 없는거죠.
[심연] [오후 11:40] 불경에서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봤으나 본것이 없고 들어도 들었다 할만한것이 없다" 고 한다면 제법실상을 얘기한 것이죠. 불성을 설할때도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다릅니다. 불성은 항상하기 때문에 "생멸이 없다"고 하거나, "얻은바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 하기하기도 하죠. 용수의 저 게송은 표현법 부터가 공사상으로 별 의미가 없는 표현이고 뉘앙스가 중도지견과 완전히 다릅니다. 불성과 법을 구분하지를 못하니 저런 게송이 나오는거죠.
[유전] [오후 11:41] 그렇죠
[심연] [오후 11:50] 용수가 대승을 부흥시켰다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오법을 부흥시켰네요. 대승 부흥은 원효대사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유전] [오후 11:53] 그렇죠. 원효대사의 해석서들이 중국 혜능 이전에 중국으로 유입되어 매우 크게 알려졌죠.
[심연] [오후 11:54] 용수보살은 대승부흥이 아니라 그냥 힌두교 부흥이고, 진정한 대승의 주역은 원효대사임에도 중생들의 어두운 눈때문에 용수 덕인줄 아는거죠.
[유전] [오후 11:54]
"모든 법의 자성은
연(緣) 속에 있지 않네.
자성이 있지 않으니
타성도 있지 않네."
[유전] [오후 11:55] 법에 자성 즉 불성이 있네 없네로 떠드는 건 처음 보는군요.
[심연] [오후 11:57] 공사상 아니랄까봐 격식이나 그런게 전혀 없이 완전 말장난이네요. 불경은 공성을 논하는것 같아도 격이 있습니다. 묘한 이치에 맞게 문법의 순서나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히 있죠. 허공이 아니라 진공에 대한 법문이니까요. 중론은 그냥 허공법문이네요.
[심연] [오후 11:58]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내맘대로 법문이 공사상 법문이죠.
2021년 8월 4일 수요일
[유전] [오전 12:00] 법 자체는 운영 시스템으로 그것을 운영하는 부처님에게 불성과 자성이 있는 것이지 법 자체에는 불성이나 자성이 없습니다. 차라리 불법이 설해져 있는 불경 즉 불경책에 불성이 있다고 했으면 책도 물질이니까 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한것으로 오류는 아닙니다. 하지만 법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저 운영 시스템 법칙이고 매뉴얼과 같은 것인데 그 자체에 인격, 신격, 불격을 넣어 불성이나 자성이 있네 없네 따지는 자체가 오류죠.
[유전] [오전 12:02] "또 모든 법의 자성은 연 속에 있지 않다. 단지 연이 화합한 것이기에 이름[名字]을 얻을 따름이다. 자성이란 자체이다. 연 속에는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으니 자기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자성이 없으니 타성도 없다. 왜 그러한가? 자성이 있으므로 타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 [오전 12:03] 위의 말 자체는 맞는 말이죠. 순수하게 법만을 두고 이야기 했고 그 법에는 자성이 없다 즉 용수의 중론에서 대표되는 이론 무자성론이 법으로만 한정하면 맞는 말이고 내가 수 없이 법에는 자성이나 我(아)가 없어서 불교 3법인 중의 하나가 제법무아 즉 모든 법에는 나 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고 말해 왔죠.
[유전] [오전 12:04] 문제는 저 제법을 불성과 열반에도 묶어서 혼동하여 설하고 있는게 중론이라는 거죠.
[유전] [오전 12:06] 용수의 중론은 결국 공사상으로 끝나 그 공사상의 감옥에 갇힌 상태인데 이 공사상은 모든 것이 둘이 아니며 항상한 것이 없어서 불성이나 심지어 부처님 조차 항상한 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폐해가 심각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구분이 중요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다 라는 뜻인데 이걸 곧이곧대로 믿어서 실제로 산이 물이 되고 물이 산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카오스 혼돈 상태가 모든 관념을 지배하게 됩니다.
[유전] [오전 12:09] 이런 폐해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깨달은 고승들이 용수의 중론이나 여기에서 파생된 개념인 중관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중도(中道)라는 단어로 대신하여 중론과 중관이 중도와 다름을 강조한 것이죠.
[심연] [오전 12:10] 성철스님도 용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승들은 용수에 대해 거론조차 안하죠. 용수에 대해 얘기하는 깨달은 고승분들 본적이 없는거같네요. 성철스님 제외하고요.
[유전] [오전 12:10]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는 중론은 읽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에 함몰되면 더 어려운 관념과 이해로 본인은 물론 주변에게 까지 극심한 폐해를 줄 수 있습니다. 공사상은 모든 물질과 사람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여 인간 또한 물질로 인식하게 만들죠. 이건 내가 실제 체험적으로 수 없이 겪어본 경계이고 다른 체험자들의 사례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 [오전 12:12] 성철스님만 언급을 했고 그것을 중도로 덮어쓰기 위해서 약간의 인용도 앴지만 중론을 인정한 것은 아니죠.
[유전] [오전 12:12] 일부 법에 대한 설명에서 맞는 부분만 인용했다고 봅니다. 법 자체가 무자성인 것은 맞으니까요.
[유전] [오전 12:13] 중론은 더 이상 읽을 필요도 없어 이만 마칩니다.
[유전] [오전 1:43] "(유전) 이 공사상은 모든 것이 둘이 아니며 항상한 것이 없어서 불성이나 심지어 부처님 조차 항상한 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폐해가 심각하게 일어납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 불생불멸(태어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다)로 영원한 것과 같이 모든 각각의 부처님도 영원합니다.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없어집니까? 또 석가모니불이 없어집니까? 그래서 석가모니 열반시에 내가 열반에 든다고 내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모든 존재가 생멸변화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전생에 마왕으로 지낸 전생담이 있고 그런 마왕이 부처가 되었다고 해서 그 석가모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죠.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로 항상 변화하지만 지은 죄와 공덕이 그 역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공과 과를 지나고 합쳐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유전] [오전 2:02] 화엄경에 등장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뜻에는 중중무진의 여러 뜻이 있다고 내가 말해 왔는데 저 석가모니의 첫 일성 자체에 모든 존재의 고유성은 변화하지 않고 홀로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전] [오전 2:04] 거의 대부분의 불경에서 전생과 그 경을 설법하는 헤아릴 수 없는 인연과 연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만약 그런 전생과 원인자들이 홀로 독립하여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경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유전] [오전 2:06] 이런 것은 중학생만 되어도 능히 분별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체가 (공사상의) 망상 속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