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 中>>>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관찰을 할 때에도 능히 관찰하는 이가 없다 함을 이치대로 관찰해야 하나니, 관찰함이 아니요 관찰하지 않음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이치대로의 관찰이라 하지만, 이와 다르게 관찰하면 이치대로의 관찰이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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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관찰함이 아니요 관찰하지 않음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같은 문구가 불경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이것을 공도리로 이해하면 비상비비상처와 같은 계열 입니다. 그런데 올바르게 본다면 해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단 비상비비상처 부터 해석 하자면 이는 생각이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니다. 생각은 아닌데 생각이기는 한, 즉 인식하기 어려운 미세한 망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고 미세망상만 남은 공의 마지막 경계입니다. 하지만 공에만 떨어져 있으면 이 미세망상을 못보는데, 범망경에 보면 범천이 마왕 파순에게 유혹되어 자신이 최고 신이라는 망상을 가지게 되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생각과 마음작용이 전부 외적 존재들의 메세지이고, 미세망상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이처럼 공성에서는 미세망상에 홀려 항상 망상만 피우고 길을 찾지 못하지만, 공을 넘어서 대자대비심을 깨달은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공성에 든 존재들의 미세망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고 중생들의 미세망상 까지도 모두 꿰뚫어 봅니다.
이것이 비상비비상처에 대한 올바른 견해이고 분별입니다.
그럼 "관찰을 할 때에도 능히 관찰하는 이가 없다 함을 이치대로 관찰해야 하나니, 관찰함이 아니요 관찰하지 않음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는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생각도 마음도 관찰하는 놈도 내가 아닌 외적 존재들의 신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내가 아님에도 관찰하는 것은 의지가 있기 때문이고
세상이 공해도 의지를 내는 이유는 자비심이 있기 때문이며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들은 세상이 공해도 품습니다.
품고 보니 공하지 않은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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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선한 욕망은 처음 도심(道心)을 내는 것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내가 욕망이 근본이라 한 것이니라.
-대반열반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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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욕망이 의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