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지에 의문을 갖게 하는 실험이 하나 이루어졌습니다.
실험자인 벤자민 리벳의 이름을 딴 리벳의 실험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 실험의 결과는 아직까지 많은 논쟁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실험자들이 버튼을 누르고자 생각을 하는 시점보다 손가락 근육이 미세한 차이로 먼저 움직인다는 결과의 실험인데요.
이전까진, 그리고 지금도 사람이 생각을 한 후에 뇌에서 근육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 다음에 근육이 움직인다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실험은 이 과정을 뒤집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에게 진정으로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쟁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사실 철학에서는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범신론자로 알려진 스피노자인데요. 그는 사람은 의지를 가질 수 있으나, 그 의지가 자유롭게 생성되지 않는다고 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했습니다.
언듯 듣기엔 뭔가 어려운 내용인 것 같지만, 건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충분히 스피노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판단을 할 때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경험, 처해진 상황이란 제약을 받습니다. 숲 속에서 곰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달리기 실력을 믿고 도약질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곰은 죽은 시체는 건들지 않는다는 우화를 믿고 그 자리에서 죽은 척 할 것입니다. (우화와는 반대로 곰은 확인사살을 위해, 혹은 장난삼아 시체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죽은 척 하다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 곰과 마주친 상황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만나서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이 밖에도 내적 갈등을 겪는 경우에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인격, 양심과 사회적 평판, 외적 보상, 본능, 욕구 등을 저울질 하며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제3자가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특정인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와 비슷한 예는 인간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갈공명과 사마의의 수 싸움, 가위바위보를 잘 한다는 사람들이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들이 그런 예이지요.
로크 역시 자유의지를 부정했습니다. 로크는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해 수동적인 반응만 보일 수 있다고 했지요. 그리고 이 수동적인 반응은 이 지각작용과 함께 기존의 기억이 혼합되어 내려진다고 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 알파고가 바둑에서도 인간을 제압하며 체스에 이어 바둑에서마저도 AI가 인간을 능가해버렸는데요. 이 역시 인간의 사고와 유사합니다. 처해진 상황에서 가능한 한 모든 수를 계산하고 그 중에서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선택하는 거죠. 다만 인간과 AI의 차이점이라면 기억력과 연산력의 차이가 넘사벽이라는 것.
바둑과 체스는 정해진 판과 규칙 안에서만 판단을 하니 그나마 경우의 수가 적어서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만약 기술이 더 발달되면 개인의 선택 역시 기계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과거에도 비슷한 존재를 생각해낸 사람이 있습니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그는 일명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가상의 존재를 이야기 했습니다. 만약 한 시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원자와 원자의 운동량 등을 아는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는 미래 또한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자유의지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자유의지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하지만.... 서양철학의 게임체인저인 칸트는 자유의지를 긍정했는데...
과연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