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온갖 이유로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또래의 비난충 3마리가 살고 있었다.
함께 자라다보니 나도 때로 그들이 헐뜯는 대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심지어 내가 파란색 옷을 입으면 파란색 옷을 입었다고 투덜댔고, 그런 말을 듣기 싫어 빨간색 옷을 입으면 빨간색 옷을 입었다고 또 투덜댔으며, 그중 한명은 내가 9살 때 겨우 트림 한 번 한 것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엄청난 약점을 잡았다는 듯 툭하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마구 헐뜯었다.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다” 등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3마리 비난충들은 남들의 조언이나 지적은 모두 거부했다.
몹시 교만하게 “네까짓 게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등으로 투덜대면서.
물론, 나 역시 한동안 그 비난충들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비난충들은 또 무엇인가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 나를 헐뜯었는데,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무엇인가 자기네들에게 죄지은 것이 있다 보니 양심에 찔려 그러는 것이라고 중상모략까지 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결국 그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그들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던 어느 날, 한 비난충이 또 누구인가에게 불평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소금 잔뜩 맞은 지렁이처럼 도무지 못 견디겠다는 듯 지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바로 저거구나! 저것들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지랄을 하는구나!’
그렇게 그 비난충들의 약점을 알아낸 나는 그날부터 일부러 그들에게 다가갔으며, 그리고는 일부러 그들이 견디지 못할 말이나 행동만 골라서 하기 시작했다.
‘제발 지랄 좀 해’
그럴 때면 기대대로 예외 없이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도무지 못 견디겠다는 듯 지랄을 떨던 그 3마리의 비난충들.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고소하든지.
그 뒤, 어느 정도 속이 풀리자 내 성질이 조금씩 망가지는 것 같아 그 비난충들이 괴로워하는 짓은 더 이상 않게 됐는데, 그래도 가끔씩 비난충들을 만날 때면 ‘또 저것들의 속을 뒤집어볼까?’하는 놀부 심보가 툭툭 샘솟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