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역대상 13장 9~11절)
궤(아론의 싹난 지팡이, 십계명 석판, 만나가 들어있다는 일반적으로 성궤라고 불리는 상자)를 보호하기 위해 궤를 붙잡은 것만 가지고 사람을 찢어죽이는 신이니까 자기 종을 모욕하는 말을 하고 다닌 아이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것 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김정은이 계단을 헛딛여서 넘어질 뻔하는 걸 옆에서 부축해준 걸 가지고도 감히 옥체에 손을 댔다고 총살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단순히 궤를 붙잡았다고 죽인건 아닙니다. 만일 그 정도로 죽인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멸족되었을 겁니다. 성경에서 신이 직접 인간을 심판할때는 인간은 모르는 심판받은 자와 심판하는 신만 아는 비밀이 있죠.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기도하고 생략하기도 합니다.
웃사의 예에서 성경에 들어난 것만 보자면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인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신의 법을 알리고 신을 모시는 지금의 목사와 같은 책임을 가집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임은 신이 정해준 법을 스스로 지키고 알림으로 다른 11지파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웃사는 레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임을 소홀히 했습니다. 언약궤를 소달구지에 옮겨서는 안되고 4고리에 2막대로 꿰어 레위인이 옮겨야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예법. 군대로 치면 사격장에서 사고친거고 병사로 치면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경계임무에 실패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죠?!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엄격함인건 분명합니다.
웃사의 예는 확대해석하면 현대 먹사들을 향한 신의 경고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웃사의 예를 들며 하나님께 예를 다하라는 설교하는 목사들이 먼저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으루돌아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