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전 글에도 썻듯이 수행에는 넘을수 없는 벽이 있다고 하였고
이 넘을수 없는 벽을 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존재가 응해줘야 한다고 하였다.
하이데거가 말하길
진리란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글쓴이는 이것이 견성과도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에 대해 하이데거는
"존재자가 먼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말들을 풀어서 설명하면
내가 먼저 스스로 진실해져야 궁극적인 존재가 응한다는 것이다.
진실해 진다는 것.
글쓴이는 이것을 스스로가 스스로를 명예살인하는 것과도 같다고 여긴다.
타인이 자신을 명예살인할 때에는 그래도 항변, 회피등등의 자기방어수단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명예살인 할 때에는 완전 무방비 상태로 그 고통을 고스란히 온 마음으로 받게 된다.
마치 송곳으로 심장을 찔러대는 듯한 고통, 이 고통이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덜하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수많은 가식들과 가면들이 깨어져 나간다.
니체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짐을 진 낙타와도 같다.
삶의 무게라는 무거운 짐을 진 낙타는 불의를 눈감고 외면하고 작은 이익에 현혹되기 쉽다.
여기서 대오각성하면 용맹한 사자가 된다.
용맹한 사자는 불의에 대항하고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마음의 준비까지 되어있다.
죽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이고,
죽더라도 해야할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어린아이가 된다.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했던 옳음이 정말 옳았던 것일까?
만약 그것이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으로 사실은 옳지 않은 것이었다면
자신이 삶을 살가가면서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쌓음으로서 잘못된 올음을 진정한 올음이라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라면
나의 그러한 행동으로인하여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고정관념들이 깨어지면서 어린아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이 어린아이와 하이데거가 말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진실해 지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궁극적인 존재가 응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이 깨달음의 조건이 된다.
현대의 종교들은 우리가 더 쉽게 구원이나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서로 경쟁하는 것같다.
믿습니다만 외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주문을 외우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질 않나
몰라몰라만 외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천태만상이다.
또한
수 많은 수행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고 수행법에만 몰두한다.
절대 불가하다.
그 누가 타인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깨달음은 기술이 아니다.
자신이 자신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삶을 살아오면서 직접 간접 경험들을 통해 축척해온 고정관념들이다.
이 고정관념들을 깨는 것은 자기 자신을 깨뜨리는 것과도 같다.
이 과정을 가벼운 말과 글로 쓰니 쉬이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직접 경험해 본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들이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가늠하는 과정이라고 언젠가 글로 쓴듯하다.
여러분들은 니체가 말한 저 3단계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