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종파가 선불교입니다. "이심전심 · 견성성불 · 불립문자 · 교외별전"을 핵심으로 합니다. 선종이 도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대승불교의 '공'을 도교의 '무'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이를 격의불교라고 합니다. 이런 사고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교라고 하지만 사실 껍데기를 벗기고 알맹이를 보면 도교인 게 동아시아의 불교입니다.
깨달았다고 막행막식하는게 우리가 아는 승려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승려들이 보면 평생을 계율을 지키며 길에서 나고, 길에서 깨달음을 얻고, 길을 다니며 가름침을 전하다가 길에서 열반하신 붓다는 그냥 모지리이고 저열한 존재입니다. 그 제자들인 아라한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게 선종을 포함한 대승에서 말하는 붓다와 그 제자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대승에서도 반야계까지는 스승으로서의 붓다에 대한 존숭은 분명합니다만....
원효는 득도했다고 주장한 뒤에 여자를 품고 설총을 낳습니다. 깨달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건데 이게 붓다의 가르침에 과연 일치할까요? 깨달았기 때문에 술 먹어도 되고 여자를 품어도 되고, 살인을 해도 되고 인의도덕을 해쳐도 된다는게 막행막식하는 많은 승려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고 그렇게 주장한다는게 아닙니다.)
원효의 깨달음이 붓다의 깨달음과 같은 것일까요? 같다면 왜 붓다의 생활과 원효의 생활은 그렇게 차이가 날까요?
깨달음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주제에 섣불리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막행막식하는게 깨달음이라면 그건 개나 줘야 할 것입니다. 인류에 해악만 주는 삿된 길일 뿐입니다. 명백하게 붓다가 설한 깨달음은 아닙니다. 도교의 깨달음일 수는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