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무아지경은 정신이 취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입니다. 깨어있지만 잠을 자고 있는
상태와도 비슷한 거지요.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누구나 초기에 알게 되는 것이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중에,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간은 정말 얼마 안되는구나
하는 점이지요. 우리는 내가 뭐하고 있는지 아는 시간이 얼마 안되며 대부분의 시간들을
무아지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에서의 무아지경은 평상시의 무아지경과는 좀 다릅니다.
나름 번뇌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다만 정신이 깨어있지 못하는 것이고요.
내가 무아지경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는 상태인 거지요.
그래서 그것도 경지라면 경지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부족한 것이니
채워가면 됩니다. 그 무아지경도 무시할만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선정의 상태는 전혀 아닌 거고요.
사마타를 위빠사나인 관법과 따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하나입니다.
선정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관도 강해집니다.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멀리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눈 뜨고 경치를 보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부처님도 산 정상에 올라 조견 오온개공 하셨을 뿐일 겁니다. 그냥 올라가서 보니
훤히 다 보인 것이지 머리 굴려서 저기 경치가 어떨까 생각한 건 아닌 거지요.
법이 한눈에 다 보이신 겁니다.
초선 이상의 선정에 들면 기쁨, 행복, 환희 이런 것들이 나타나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아지경이 아닙니다. 불교의 선정은 의식이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무아지경은 선정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지관쌍수라 해서 지관을 수레바퀴처럼 동시에
닦아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이 곧 지혜입니다. 보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