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창조를 전제하여야 한다.
만약 우주가 우연히 형성되었다면 모든 것의 존재 이유는 우연성에 기반을 둘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인간 역시 우연성을 기반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므로 규범성같은 것이 필요치 않을 것이며 따라서 존재의 이유와 같은 것을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존재의 이유를 논한다 하는 것은 창조를 전제한다.
존재의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적 의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류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인류가 잃어버린 궁극적인 의문인 존재의 이유 그것을 추궁해보자.
당신이 자동차를 만든다면 당신은 자동차에게 있어 창조자이고 자동차는 창조물이다.
그런데 당신이 자동차를 창조한 이유 즉 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는가?
아마도 당신이 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운반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자동차를 창조한 창조의 이유는 창조물인 자동차를 운반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창조물인 자동차의 존재의 이유는 창조의 이유인 운반수단이나 이동수단에 쓰여짐에 있게 된다.
자동차가 엔진이 고장 나서 더 이상 운반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자동차의 존재가치는 사라진 것이므로 그 자동차는 존재의 이유를 다하여 폐차 처분 되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는 창조의 이유에 적합하게 쓰여 지는 것에 있다.
창조의 이유는 쓰기 위함에 있고 존재의 이유는 쓰여 짐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어떠한 물건을 만들때 당신은 그 물건을 어떠한 용도로 쓰기 위하여 만든 것이고
당신이 만든 그 물건은 그 용도로 쓰여 짐으로서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므로 그 용도에 쓰여짐을 존재의 이유로 가진다.
글쓴이가 위의 예를 통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존재의 이유나 창조의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면 그 쓰임을 통하여 밝혀 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인조물 같은 경우에는 그 쓰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인간을 포함한 신이 만들어낸 자연물 같은 경우에는 그 궁극적 쓰임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기에 아직까지 존재의 이유 또는 창조의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이
창조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는 쓰임을 매개로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그것을 하늘의 명령이라하여 성(性)이라 하였다.
여기서 논리를 한 걸음 더 진척시켜보자.
이제 당신이 붓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붓을 만드는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함에 있을 것이고
붓의 존재의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함에 쓰여 짐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붓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겠는가?
당신은 아마도 글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붓을 만들지 않겠는가.
이것이 체(體)와 용(用)의 관계이다.
형태(體)를 통하여 창조물의 쓰임(用)을 유추해 낼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형태를 통하여 존재의 이유를 유추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수많은 유수한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사물의 형태와 현상들을 관찰한 것이다.
이제 당신이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였다면 당신이 이해한 이치를 당신의 몸에 그대로 적용시켜 봄으로서 당신의 존재의 이유를 유추해 보자.
당신이 여성이라면 당신의 몸은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가?
당신이 여성이라면 당신의 형태는
남성으로부터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여 그 생명의 씨앗을 몸 안에서 키워내고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그 생명을 몸 밖으로 이동시켜 몸 밖에서 키워 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당신의 형태는 생명을 키워 내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여성의 존재의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여 그 생명을 온전히 키워냄에 있다.
반면 당신이 남성이라면 당신의 몸은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가?
남성의 형태는
여성에게 생명의 씨앗을 전해주기에 적합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여성이 그 생명을 잘 키워낼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는 건장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남성의 존재의 이유는
여성에게 생명의 씨앗을 전해주고 여성이 그 생명을 온전히 키워낼 수 있도록 지켜주는데 있다 할 것이다.
이와같이
체와 용의 관계를 통하여 남성과 여성의 경우를 통합하여 살펴보면 인간의 존재의 이유는 생명을 키워내는데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인간이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존재하여야 하고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창조주는
당신을 존재시키기 위하여 당신에게 식욕을 부여하여 놓았고
인류를 존재시키기 위하여 당신에게 성욕을 부여하여 놓았다.
이상의 논리만 살펴보자면
창조주가 인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의 이유는 존재하기위해 존재함에 있는 것이 되고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단지 살기위해 살아가는 것에 인간의 존재의 이유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하라”는 창조주의 요구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요구는 모든 생명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생명의 가장 낮은 단계를 단세포 생물이라 가정하여 단세포 생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단세포 생물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충분히 성장한 후에는 자신을 분열 시키는데 있다.
단세포 생물이 성장한다는 것은 식욕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고
단세포 생물이 분열한다는 것은 성욕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가장 낮은 단계의 생명인 단세포 생물에게도 “존재하라”는 창조주의 의도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잘 먹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예쁜 아이들을 낳고 잘 키우면서 잘 살아가라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면 세상은 참으로 시시하지 않은가?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당신의 존재의 이유가 너무도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창조주는 왜 그토록 생명을 존재시키려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나는 지금까지 살펴본 존재의 이유를
“전제적 존재의 이유” 또는 “순리로서의 존재의 이유”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창조주가 그토록 존재시키려 했던 생명을 통하여 이루고자하는 진정한 창조의 목적 또는 존재의 이유를
“궁극적 존재의 이유” 또는 “역리로서의 존재의 이유” 라 부르고자 한다.
(궁극적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