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한숨 푸지게 자고 일어나서 먹을 거 뭐 없나 하고 부랄을 긁적이며 부엌 막사발들을 뒤적이고 있자니
아, 자꾸만 좀 전에 꾼 꿈이 머릿속에 가물가물 하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상한 꿈이 아니었다. (아! 그제 먹다 남겨둔 떡이 여기 있네.)
그는 밤새 맺힌 이슬에 눅눅해진 떡을 질겅이며 집안을 서성거렸다.
아아 그래 그때 일곱 천사가.. 아니, 여섯명이었을지도 몰라...
아무튼 그 치들이 북을... 잠깐, 북이 아니라 부부젤라였나? 거참 방금 꾼 꿈인데 벌써 가물가물하다니...
한참을 중얼중얼거리던 그는 돌연 구석에 처박아뒀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펼쳤다.
에... 내가 꾼 꿈의 이야기.... 아니야 이건 좀 없어보여. 막 천사도 나오고 불꽃이 어? 전갈이랑 유황이 펑펑 터지고 용도 막 날아다니고 어 기가 막혔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분명 계시야. 흠흠. 다시 써야지.
계시록 보다 후일작인 요한복음에서 사도요한의 한가지 버릇같은 습관 같은 수사적 표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을 지칭할 땐 자신 이름 요한 대신 대부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 로 쓰는데.
뭐 맘대로 자신을 표현하는거야 저자의 권리기두 하지만 예수께서 요한 자신을 가장 아끼는 제자로 봐주길 바라는 자신의 애정표현인지 모르나 어째든 계시록에서도 한 구절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볼수가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중반즘 곡과 마곡의 전쟁을 묘사할 때
주가 사랑하시는 진영과 도시를 에워쌌다란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가 사랑하시는~' 물론 여기서 표현은 요한자신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할 때 수사적 미사여구로 기존의 성경기자들에겐 흔히 볼수 없는 표현이거든요.
수사법과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표현을 흔하게 썼던 바울의 많은 서간에서도 누굴 지칭할 때 저런 표현을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 한구절만으로 확신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외 문장들의 추상적 표현들도 비슷한 색채를 띄는 부분도 보이므로 갠적으론 같은 기자의 기록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