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我)’라는 존재는 ‘순수한 나’와 누구인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게 ‘휘둘린 나’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사람이 하는, 또, 하게 될 모든 생각은 ‘순수한 나’의 생각과 ‘휘둘린 나’의 생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람은 이중에서 ‘순수한 나’의 생각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자신에게, 자신의 현실에 어울리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래서 점점 더 독립된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고 누구인가에게, 무엇인가에게 완벽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결코 완벽하게 독립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 반면, ‘휘둘린 나’의 생각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점점 더 많이 자신에게, 자신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래서 귀신들린 무당이나 철학쟁이처럼 점점 더 누구인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게 종속된 삶을 살게 된다.
갓난아기처럼, 심지어 누구인가의 보살핌을 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을 만큼.
그러니 ‘휘둘린 생각’보다 ‘순수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사람에게 훨씬 좋지만, 사실 이렇게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이 휘둘린다는 사실조차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누구인가에게, 무엇인가에게 휘둘리며, 더구나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래서 아무리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해도, 이 세상에는 감언이설이나 폭력 등의 온갖 방법으로 남을 자기의 마음대로 휘두르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워낙 많이 있다 보니.
또, 부주의해서 가로수와 부딪히는 등, 사람 스스로 무엇인가에게 휘둘릴 때 역시 워낙 많이 있다 보니.
그런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자신에게, 자신의 현실에 어울리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즉, ‘순수한 나’의 생각을 그만큼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사람은 먼저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다시 그에 앞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하니.
따라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나(我)’가 ‘나(我)’답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으며, 오직 하나뿐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