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와 『금강경』
1999년 종말론이 한참 열을 올려가던 즈음 ‘컴퓨터 회로망’, 내지 ‘자궁子宮’을 뜻하는
<매트릭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1994년 <리틀부다>에서 주인공인 싯다르타 역을 했던 키아누-리브스가 주연을 맡고,
1996년 <바운트>를 통해서 주목받은 바 있는 워쇼스키 형제에 의해
2199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내용인 즉은, 인류에 의해서 발전하게 되는 로봇들이 결국 인류를 노예화하여
전력생산을 위한 배터리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 중 일부의
인류들만이 깨어있는 현실 속에서 이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 초에 관심을 끈 것은 일차적으로 카메라 120대를 활용한
현란한 카메라 기법과 이를 통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 이 영화는 이러한 특수기법을 통해서 흥행에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하여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로 인해 이 영화의 시각에 관한 철학적 측면들이 다루어진
다수의 책들이 출판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중 몇 권은 상당수 이상의 판매를 올리기도 하였다.
즉 <매트릭스>는 기존의 단순히 흥행에 성공한 오락영화들과는
달리 나름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매트릭스>는 1편이 1999년 5월에 개봉되어 크게 흥행한 것에
힘입어 2003년 5월에는 2편인 <매트릭스-리로디드>가 개봉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에는 에피소드들을 다룬 <에니 매트릭스>가 발매되었고,
마지막으로 11월에는 3편으로 <매트릭스-레볼루션>이 개봉되면서
전편을 완성하게 된다.
<매트릭스>는 이렇게 총 4편에 걸친 구성 속에서
방대한 사고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매트릭스>에서 구조화되고 있는 관점들이 과연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
상호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느냐에 관한 것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매트릭스>가 다루고 있는 현실과 꿈의 이중적인 구조와
복합성에 관한 것으로 우리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이 있다.
장자가 하루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다가 깨어서 생각해 보니,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의 보다 심층적인 것으로는 인도신화에 있어
창조주 브라흐만이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가 된다는 것.
그리고 브라흐만은 그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꿈의 복잡성과 관련된 것으로
2010년 <인셉션>이 개봉되기도 한다.
중국철학적인 입장에서 현실과 꿈의 미분리는
그리 많이 나타나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인도철학에 있어서 현실은 단지 허상일 뿐이라는 인식은
언제나 중심 주제를 차지해 왔다.
이는 인도철학이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인식론의 범주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철학적인 특성의 연장선상에
대승불교의 『금강경』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경』은 공空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공에 관한 철학을 논변하는 대단히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공이라는 것은 내용적으로는 초기불교의 무상과 무아를
본체론적인 관점에서 구조화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일체가 가상공간인 허상일 뿐이며,
그렇게 인식하는 것만이 진실한 실체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금강경』은 <매트릭스>와 대단히
유사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혹자는 <매트릭스>의 관점이 기독교의 메시아관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메시아는 외부적인 신神적 존재인데 반해서,
네오는 내부적인 자각의 인간이라는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동일성은 성립될 수 없다.
또 <에니 매트릭스>에서 살펴지는 일본의 선사상적인 측면이나,
<매트릭스> 2편에 나타나는 인과법에 대한 내용 등은
이 영화가 불교적 영향에 의지해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매트릭스>의 관점들 역시 『금강경』의 문제의식과
직결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즉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는 『금강경』에 있어서의 수보리와 같은 환상을
직시하는 공의 체득자인 것이다.
다수의 불교영화들이 불교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한결같이 철학적 측면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마치 『금강경』이 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공의 철학을 드러내듯이,
표면적으로는 불교를 드러내고 있지 않으면서
불교적인 관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즉 『금강경』이 공을 말하지 않는 가운데 공을 드러내듯이,
<매트릭스>는 불교를 표방하지 않는 불교적 인식의 영화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