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물을 감각(즉 오감)을 통해 지각하며 경험합니다
다만 이게 지각되고 경험으로 전개될 수 있는 인간의 기반이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 앞에 향기롭고 매우 단 사과가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그것을 앞에 두고 그 사과에 대해서 머릿속에 떠올리겠죠
그것을 표상이라고 하는데,
한번쯤 여기서 우리의 오감을 하나씩 지워봅시다
그 사과를 볼 수 없고,
그 사과의 향을 맡을 수 없으며,
그 사과의 맛을 볼 수 없고
그 사과와 관련한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 사과를 만질수도 없다 따라해 봅시다
그렇다면 내 앞에 그 사과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느낌상.. 뭔가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는 잔재같은게 느껴질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표상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이름의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오감을 지운다해서 '그것이 그때 있었다'가 지워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적어도 포유류라면 이건 공통적인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그 기반을 구체화 한다면 공간과 시간이라는 표상의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 가능한것이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표상이 가능할까요?
내 짧은 대가리론 뭐든 그 바탕 하가 아니라면
그런 대상에 대한 표상을 갖는게 불가능하다 봅니다
보편적 인간의 사고는 한 시점에 두개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게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이 공간과 시간 저 공간과 시간을 빠르게 왔다리 갔다리만 가능하죠
*이걸 속칭 멀티태스킹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전제의 설명에 동의한다면
종교의 '계시'라는 것은
최소한 그 자신에게 타당하려면
본인이 이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지각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신내림이나 정신분열로 인한 이중인격, 혹은 이종의 괴리 같은게 해당되겠지요
그들에게야말로 그들 자신에겐 동시에 두 개 이상의
공간과 시간을 바탕으로한 지각이 가능할테니까요
만약 이것이 전혀 다른 타인에게
객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타인과도 타당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우린 당연히 그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할겁니다
그러나 우린 그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사를
소위 '접신' 한 경우 외엔 전혀 접하지 못합니다.
그저 후천적 지식인 '성경'이나 '교리'만을 토대로
그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만을 인식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성경이나 교리를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의 법칙인
이치로 관조했을 때 불명료성, 모순성, 자연초월성, 비인과성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종교의 실재성에 대한 기대되는 바가 없어지는 것이죠
이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전개인데 왜 자연스럽게 반대의 대상들은 해소를 못 해줄까요?
얘기하자면 깁니다만 오늘은 이정도까지만 술김에 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