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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13 08:17
8. 대학지도(본심본태양)
 글쓴이 : 공무도하
조회 : 710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더불어 도(道)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대학(大學)의 대학지도(大學之道)이다.

 

대학(大學)은 공자가 전하였다고 한다.

 

대학(大學)을 공자가 전하였다는 것은

대학(大學)을 공자가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전해져 오던 성현의 말씀을 공자가 전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나는 공자를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진리를 왜곡시킨 사람으로 보고 있다.

 

공자는 대학지도를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至於止善)이라 전하였다.

(대학지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들과 친함에 있고, 지극한선에 머무름에 있다.)

 

이 문장에 따르면 공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황극(皇極)에 있다.

황극이란 황제가 덕을 이룬 상태를 말하며 황제가 덕을 이루면 태평성대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처자식과 부모를 버리고 모든 이가 산으로 들어간다면 누가 있어 늙으신 부모님을 보살피고 나라를 지키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치를 대하는 공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즉, 공자는 순리로서의 삶에서 최고의 상태를 지향한다.

 

따라서

대학지도(大學之道)는 명명덕(明明德)이라 하여

“대학지도(大學之道)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다”라고 전한 것이다.

 

전제적 존재의 이유는 “존재하라”라는데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공자의 주장은 이러한 전제적 존재의 이유에 해당한다.

 

태평성대 속에서 살아가든 부패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든 살기위해 산다는 것, 존재하기위해 존재한다는 것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좀 더 양호한 존재상태를 유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궁극적 존재의 이유가 또는 궁극적 진리가 또는 궁극적 도가 위와 같은 이유로 감추어지고 소멸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역리로서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극소수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만이 역리로서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는 주어진 삶의 단계가 있는 것이며

궁극의 진리를 이해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순리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역리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순리로서의 삶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여 역리로서의 길 자체를 부정하였고 왜곡 소멸 시켜버렸다.

 

유교에는 공(功)과 과(過)가 있는데,


유교의 공(功)은

황극에 이르기까지의 이치를 잘 정립시켜 놓은 것이다.


유교의 과(過)는

황극(皇極) 너머에서 펼쳐지는 무극(無極)과 허극(虛極)에까지 이르는 이치를 모두 황극(皇極)에 적용시켜 왜곡 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이제 수 천 년 간 왜곡되어 전해져 내려오던 대학지도의 이치를 바로 잡고자 한다.

 

 

대학지도(大學之道)는 명명(明明)이요,

대학지덕(大學之德)은 친(親)이요,

대학지민(大學之民)은 지어지선(至於止善)이라.

 

일단 이치를 설명하기 전에 경전의 이름인 대학(大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중용에서 이르기를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하늘의 명령을 성(性)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性)을 아는 사람을 대인(大人)이라하였고, 성(性)을 모르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이란 천명(天命), 즉 성(性)을 아는 대인(大人)들의 학문이 대학인 것이다.

 

 

이에

대학지민(大學之民)부터 살펴보자면,

대학지민(大學之民) 지어지선(至於止善)이란

 

성(性)을 알고 성(性)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백성으로서의 삶이란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는데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들과 대부분의 종교들은 착하게 살 것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왜 선(善)에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정확히 선(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악(惡)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에, 선(善)과 악(惡)의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악(惡)이란

순수한 악(惡)이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마음이다.

 

선(善)이란

순수한 선(善)이란

자기 이외의 다른 대상만을 위하는 마음이다.

 

천부경을 보면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천부경 연구자들은 본심본태양을 “인간의 마음은 태양과 같은 밝음을 근본으로 한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으로

본심본태양에서 태양(太陽)이 의미하는 것은 태양의 밝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심본태양에서 태양(太陽)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이루어진 사상(四象)에서의 태양(太陽)을 말하는 것이다.

 

굳이 사상(四象)이란 개념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

달이 음(陰)을 의미하듯, 태양(太陽)은 양(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심본태양에서의 태양(太陽)은 음양에서 양(陽)을 의미하는 것이니

마음이 태양(太陽)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은

마음이 양(陽)의 속성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며

마음이 양(陽)의 속성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은

마음이 선(善)과 악(惡) 중에서 악(惡)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맹자와 순자가 주장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성(性)에 대하여 선과 악을 논하고 있는 것인데

성(性)은 선(善)이나 악(惡)으로 정의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논의 자체에 오류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성(性)이 아닌 마음(心)에 대하여 논한다면

천부경에서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 하였으니

천부경은 심악설(心惡說)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부경은 왜 마음의 근본은 악(惡)을 근본으로 하여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약 마음이 선(善)을 근본으로 한다면

즉 본심본태음(本心本太陰)이라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앞에서 선(善)이란 자기 이외의 다른 대상만을 위하는 마음이라 하였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마음이 선(善)에서 시작한다면

호랑이가 어떻게 토끼를 잡아먹을 수 있겠는가?

호랑이의 마음이 선(善)으로 가득 차 있다면 호랑이에게는 나를 위한 마음은 없고 토끼를 위하는 마음만 있을 것이므로 자신을 위하여 토끼를 잡아먹는 일은 일어 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호랑이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토끼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호랑이와 토끼는 공멸하게 될 것이다.

 

 

반면,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즉, 마음이 악(惡)을 근본으로 하여 삶이 시작된다면,

호랑이의 마음이 악(惡)에서 시작된다면,

호랑이는 토끼의 고통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토끼를 사냥할 것이며, 토끼 역시 호랑이의 굶주림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망 다닐 것이다.

 

그 결과 생태계는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된다.

 

모든 생명의 마음이 선(善)에서 시작한다면 생명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하게 될 것이나, 생명의 마음이 악(惡)에서 시작한다면 생태계는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존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하라.”라는 전제적 존재의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명의 마음은 악(惡)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마음들이 선(善)으로 가득 차 있으면 존재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나,

반면,

생명의 마음들이 악(惡)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세상은 잔혹해 지지만 존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악(惡)이라 하여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며, 선(善)이라 하여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 역시 악(惡)에서 시작한다 하였으니 인간 역시 짐승들과 똑같이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창조의 목적은 단지 존재를 존재시키려 함에 있지 않다.

창조의 목적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창조주의 의문에 있는 것이고

이러한 창조의 목적을 달성해야할 궁극적 존재는 인간이다.

우주상의 모든 존재는 인간을 존재시키기 위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등과는 달리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과 같이 악(惡)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자신만을 위하는 마음 즉 악(惡)을 발동시키는 근원은 몸에 있고,

자신 이외의 다른 대상만을 위하는 마음 즉 선(善)을 발동시키는 근원은 영혼에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영혼이라고 하자. 정확히 한다면 기(氣)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창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궁극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의 근본이 악(惡)을 근본으로 한다는 겻은

인간이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할 때까지만 유효하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피곤함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배고프다 느끼면 새벽 3시라도 있는 힘껏 울어 댄다.

만약 어린아이가 이러한 것까지 고려한다면 어린아이의 생존 확률은 지극히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점차 성장하여 독재적인 생존이 가능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서 선(善)을 담당하고 있는 영혼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시기를 대계 사춘기라 한다.

 

영혼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는 악(惡)이 우리의 마음을 전부 차지하는 것도 아니요, 선(善)이 우리의 마음을 전부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영혼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는 선과 악이 또는 음과 양이 우리의 마음에서 균형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 악(惡)을 근본으로 하여 시작되니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으로서 선악의 균형, 또는 음양의 균형을 이루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지민(大學之民)이 지어지선(至於止善)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모든 선지자, 또는 종교에서 선(善)을 강조하는 것이다.

 

 

몸은 전능함을 근원으로 하고, 영혼은 전지함을 근원으로 한다.

 

 

 

 

다음으로

“대학지덕(大學之德)은 친(親)이다.”에 대하여 살펴보자.

 

대학지덕이 어찌하여 친(親)인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덕(德)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에, 덕(德)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하자면,

 

덕(德)이란,

나를 위하여 한 일이 다른 이에게도 이롭게  작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나를 위하여 내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운 것인데 그 덕분에 내 집 앞을 지나가던 행인이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나의 덕 때문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덕을 이루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공자는 황제가 덕을 이룬 상태를 황극으로 보았고, 황극을 이치의 최고의 경지로 보았다.

황제가 덕을 이루게 된다면

황제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던 간에 황제의 덕이 백성들에게 미쳐 백성들을 이롭게 하게 될 것이므로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극(皇極)은 황제만의 전유물도 아닐뿐더러 이치의 최고 경지도 아니다.

황극(皇極) 너머에는 무극(無極)이 있고 무극(無極) 너머에는 허극(虛極)이 있다.

 

 

어쨌든

대학지덕은 친(親)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친(親)이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말은 부자지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자지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아버지가 열심히 번 돈으로 자기 자식을 위하여 등록금으로 내주어도 그것이 자기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도 부모와 친함이 있으면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정성껏 병수발을 하여도 그것이 부모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부자간에 친함이 있고 친지간에 친함이 있고 마을사람들 간에 친함이 있고 지역 사람들 간에 친함이 있고 나라 백성들 간에 친함이 있고 왕과 신하와 백성들 간에 친함이 있으면 온 나라가 덕(德)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와같이 자기를 위함이 타인을 위함이 된다는 것은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며, 음양이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덕을 이루어 음양의 균형을 이루어 내게 되면, 지구가 황극의 상태에 이르게 되므로 이를 천국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대학지덕이 친(親)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지도(大學之道)는 명명(明明)이다.”에 대하여 살펴보자.

 

“대학지도는 명명(明明)이다”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대학지도는 밝음을 밝히는데 있다”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대학지도 명명(明明)에서 뒤에 명사로 쓰여 진 명(明)자는 밝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명(明)자는 날 일(日)자와 달 월(月)자로 이루어 져 있으며

날 일(日)자가 의미하는 것은 양(陽)이요, 달 월(月)자가 의미하는 것은 음(陰)이다.

 

그러므로

“대학지도는 명명(明明)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대학지도는 음양의 이치를 밝힘에 있다”라는 것이다.

 

덕을 이루어 황극에 이르렀다면 황극너머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역리로서의 음양의 이치, 또는, 궁극적인 음양의 이치를 밝히라는 것이다.

 

 

중용에서 요순이 이르기를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라 하였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의 뜻은

“인심(人心)은 위태로움에 있고, 도심(道心)은 미묘함에 있다”라는 것이다.

 

인심(人心), 즉 인간의 마음이 위태로움에 있다는 것은

인간이 마음을 악하게만 쓰기 때문에 위태로움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어느 부분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는 더없이 선할 것이다.

또한 당신은 어느 부분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는 더없이 악할 것이다.

 

순임금이 말한 “인심은 위태로움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은 선과 악이 또는 음과 양이 끊임없이 파도치듯 요동치고 있기에

인심은 위태로움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심(道心)은 미묘함에 있다.

 

도(道)의 마음은 음(陰)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도(道)의 마음은 음양의 균형에 있기 때문이다.

 

일(一)자를 그려놓고 한 쪽 끝을 양(陽)이라 하고 한 쪽 끝은 음(陰)이라 한다면 도심은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중심점에 있다.

하나 그 균형을 이룬 중심점을 크게 확대 한다면 그 안에는 또 다른 중심점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온 또 다른 중심점을 확대 하면 그 안에 또 다른 중심점이 나올 것이고 이런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결국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한 점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심(道心)은 미묘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윤집궐중(允執闕中)하라.

그러하기에 “진실로 그 중(中)을 꽉 잡고 놓지 말라”라고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진리를 전한 것이다.

 

유정유일(惟精惟一)은 인심(人心)을 도심(道心)에 이르도록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선지자로서의 길이라 한다면 유정유일(惟精惟一)은 선각자로서의 길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자.

 

 

人心惟危(인심유위)하고

道心惟微(도심유미)하니

惟精惟一(유정유일)이라야

允執闕中(윤집궐중)하라.

 

인심은 위태로움에 있고

도심은 미묘함에 있으니

정밀하게 하고 한 결 같이 한 이후에라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아라.

 

 

 

지난 수 천 년 간 인류의 역사를 거대한 순환 속에서 보면 여름의 시기에 해당된다.

환인과 환웅의 시기가 봄의 시기에 해당되고, 단군이후의 시기는 여름의 시기에 해당된다.

여름의 시기에 있어서 여름의 도(道)는 분열과 성장에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수 천 년 간 인류는 끊임없이 분열하였고 끊임없이 성장하였다.

 

여름의 시기에는 충분히 분열하고 충분히 성장하여야 하는데

이 시기에 진리가 펼쳐지게 되면 충분한 분열과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따라서

여름의 시기에는 진리가 왜곡되고 소멸되는 것이며 이 또한 이치에 따른 것이다.

 

이 시기에는 진리가 등장하더라도 “천기누설”이라 하여 하늘이 막아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가을은 충분이 분열하고 성장한 곡식을 열매 맺게 하고 수확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가을의 시기에는 열매 맺게 하기 위하여 소멸되었던 이치가 다시금 펼쳐지게 된다.

 

“천기누설”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하늘의 근심은 인간들이 도를 알지 못함에 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기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49일간 또 다른 명상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명상이었다.

 

그만큼 이치는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치는 묘(妙)하기 때문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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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종프렌치 16-09-13 09:55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 짐작이 가는데, 이런 뒤죽박죽, 개허접한 수준의 교리를 가르치는 단체라면 한 눈에 봐도 사이비이니 신세망치기 전에 발빼시는게 좋으실 듯 함..

대순진리회 에서 떠드는 헛소리보다 더 뒤죽박죽이니.....
저건 어디 개코딱지만큼이라도 아는 넘이 쓴 교리가 아님...대학도, 중용도, 주역도, 황극경세서도 한번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수준의 애들이 이거 저거 ,여기 저기서 그냥 이해도 못하고 막 베껴서 그저 뒤죽박죽 개밥 비벼놓은 소리지.....
레종프렌치 16-09-13 10:01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에서 갑자기 이게 황극이다 라는 것도 개소리고,

황극이 황제의 덕이라는 소리는 더 개소리고...

그게 둘 다 임금 황皇자를 쓴다고 황극이 황제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음? ㅋㅋㅋㅋ
레종프렌치 16-09-13 10:35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더불어 도(道)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대학(大學)의 대학지도(大學之道)이다.'

ㅋㅋㅋㅋㅋ 이것도 참...도가도 비상도에서 말하는 도와 대학지도에서 도는 전혀 다른 것임..도가도에서 도는 진리, 본체 이런 의미라면 대학경일장의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에서 대학지도의 도는 목표, 지향점, 요체, 방향이라는 의미임

대학을 배우는 목표(요체, 지향점)는 명덕을 밝히는데 있고, 친민함에 있고, 지극한 선에 이르게 함에 있다.

그게 글자가 같은 道를 쓴다고  같은 도가 아님....ㅋㅋㅋ 님은 48번 국도(國道)에서 道도를 보고 도가도 비상도의 도인줄 아심? 道라는 글자의 의미가 엄청 많은데 그저 대학지도 그러니 무슨 도가도 비상도에서 도와 같은 줄 아는거지..
레종프렌치 16-09-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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