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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1 08:24
불교가...
 글쓴이 : 하이1004
조회 : 1,172  

종교라는게 어느때부터 돼었지요... 이게 파고 들면 들수록 불교는 종교가 아닌거 같은데 ... 불교를 깔려고 쑤글이 아니라 제가 아는 종교는 기독교 같은걸 뜻 합니다 어떤 절대자를 섬기는? 그 말을 따르는? 머랄까 그런 종류 그런데 불교는 글쎄요 왠지 그런거 보다도 그냥 섬긴더 보다는 보다 옛날 개념에 가까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쯤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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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수 17-01-01 08:50
 
불교는 크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있는 것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보통 현대의 종교개념과 비슷한 불교는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는 싯다르타가 타계한 후 700년 정도가 흐른 기원후 2세기 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승불교는 개인 수양의 차원에서 머물렀지만, 대승불교가 되면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면서 지금 말씀하신 종교의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체크무늬 17-01-01 15:09
 
불경에는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이 있는데, 초기경전은 부처님이 생전에 설하신 말씀을 적어놓은 경전이고, 대승경전은 부처님 열반후 인도와 중국등을 거치며 생겨난 경전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초기불교가 번역되어 전해지면서, 현재는 소승, 대승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소승과 대승이란 단어에서 차별적 늬앙스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런 구분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대승불교가 발생된 것은 부처님 열반후에 베트남, 스리랑카, 미얀마등의 남방으로 전파되면서 각국의 문화적 차이와 관습등으로 인해 교단내에서 부처님이 설한 내용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생기며 의견이 나누어지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여러개의 부파들이 형성됩니다.

이를 부파불교시대라 하는데, 각 부파가 주장하는 내용은 실질적으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과 큰 틀에서는 차이는 없으나, 각 부파마다 중요시 여기는 것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전파가 중국 티베트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에 이르러서는 대승불교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에 맞춰서 우리에게 친숙한 대승 사상에 맞는 다양한 경전이 편찬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야심경도 반야부에 포함된 수천개의 짧은 경중에 하나일 뿐이고,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등도 대부분이 이시기에 편찬된 것 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초기 모습을 두고 개인수양 차원이라고 하셨는데, 부처님이 직접 법을 설하시던 bc 500년(2500년 전) 당시에도 '승가'라고 명칭하는 지금의 절과 스님들의 모습을 한 수백명이 모여서 수행하던 집합체가 있었습니다.

흔히 기원정사로 불리는 기수급고독원과 같은 곳에서 이미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종교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죠.

참고로 현재에도 불교에서는 부처님,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 그리고 이를 믿고 따르며 지키는 승가를 두고 세가지 보물로 칭하여 삼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이1004 17-01-01 18:28
 
저는 그 부처님 말씀이 그냥 우리 스승님이 말 하는데 이거는 이렇게 하고 그거는 이렇게 하라고 했어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보는거거 든요 딱히 신의 말씀이 아니라요 애초에 불교의 최고봉은 결국 윤회 벗어 던지고 열반에 드는거라고 봐서요 어려운 사람 돕는다 던가 그런 사람 구제도 그런 과정의 일환으로 보는것이고요
               
노파랑 17-01-06 11:22
 
조금 잘 못된 생각입니다.
석가모니란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있었는데 군계일학, 잘나 보이고 뽐나 보였던 것이고요.
스승이라 칭한다면 그래서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뜻을 품음, 하고자 함과 실현에서 뿅간 점도 있었던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남? 고통에서의 해탈? 열반....이런 단어가 있는데
사실은.... 있고 없고한, 그렇게 있는 세상, 있는 그대로에서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고 깊게 하여 벗어난 것 같고, 해결한 것 같다. 편한 것 같다.
이렇게 주로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돕는다던가? 구제도 복을 짓는다, 만든다 하는 카테고리로부터 하여 앎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본연의 카테고리나 더 큰 카테고리(?)는 사기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뽀대나고 멋지게 보였는데... 그러한 앎을 얻으려 함이라 생각됩니다.
헬로가생 17-01-01 08:58
 
종교란 원래 불교 용업니다.
기독교는 원래 종교라 불리울 수준의 것이 아니죠.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신앙"이라 부르는 게 옳습니다.
깨닳음이나 앎이 아닌 의심을 악으로 보고 맹신을 추구하는 "종교"니까요.
시골가생 17-01-01 11:48
 
초기불교에는 신이라는 개념이 없고 따라서 종교가 아닙니다.
대승불교에는 수많은 보살들과 부처(신)가 등장하는데 대승불교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믿음과 신앙의 대상이 아닌 우주가 원리원칙대로 돌아가는 법칙 자체를 말하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인간에게는 불성(진아, 열반, 참나, 본성)이라는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며,
초기불교에서는 그것을 얻고 깨달으면 그것으로 게임오버, 즉 열반에 들고 해탈하여 다시 환생하지
않으므로 이 세상에서의 남은 삶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대승불교는 접근법이 좀 다르죠.
     
체크무늬 17-01-01 15:44
 
초기불교에도 신의 개념이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에서 말하는 그런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신이 아닐 뿐이지요.
불교에서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 또한 유한한 존재이고, 업에 따라 윤회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에 대해 이야기할 뿐, 진아나 참나 혹은 본성등과 같은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열반과 해탈의 방법으로 부처님은 지계- 선정- 지혜를 통한 해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고집멸도 사성제와 도성제를 위한 팔정도, 그리고 십이연기로 풀어 설명할 수 있을겁니다.
 
더 이야기 하면, 흔히 천국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도 비슷한 이미지의 천상이란 곳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뉘어지고, 이를 삼계라고 하는데, 자세히 구분하면 33단계로 나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중 인간은 하위로 구분되는 욕계에 속해 있고, 욕계는 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 인간 욕계천상으로 구분됩니다.
즉, 욕계 천상에는 신들이 살고, 이들 역시 유한한 존재로서 업이 다하면 윤회한다는 것이지요.

즉,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동안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천상에서 태어나고,
살생을 많이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등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지옥이나 아귀 축생등으로 환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확률은, 망망대해에 구멍 뚫린 통나무하나가 떠다니는데,
어떤 한 거북이가 바닷속에서 헤엄치다가 호흡하려고 수면에 머리를 내밀었는데,
그 통나무 구멍에 머리가 들어갈 확률이라고 비유하는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하이1004 17-01-01 18:32
 
글쎄요 보통 지금의 종교는 신을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고 신을 따른다 라는게 종교 라고 보면 결국 불교는 종교인가 아닌가가 의문점 이라는 거지요...
기독교가 설령 다른 뜻이 있을 지언정 예수를 죽여라 라는 말은 내뱉지는 않지요 그런 신성 불가침이 랄수 있는게 신 그자체에 있는게 아니라는 거지요 불교는
               
헬로가생 17-01-01 22:57
 
신이 있기에 "종교"고 없으니 "종교"가 아니다라구 말하는 게
서구적, 중동적 하류미신의 영향이죠.
그리고 님 말씀처럼 절대적 신이란 개념과 그런 신의 존재 유무가 종교의 조건이란 생각 자체도
서구적, 중동적 영향이구요.
증명도 하지 못하는 신을 두고 그걸 믿는다고 종교고 없다고 종교가 아니라 하는 것 자체가
그들 "종교"의 사고와 종교적 개념의 유아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이구요.
종교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찾는 것이죠.
신은 그 목표를 찾는 하나의 길일 수도 있지만 종교의 궁극적 최고봉이 아니죠.
심외무물 17-01-01 13:46
 
불교에서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보신 것이 정확합니다.

불교는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특별한 것은

우리들 각자 스스로 하나씩 모두 가지고 있는

불성.. 마음... 나...

이것일뿐

이것을 먼저 안사람이 뒷사람에게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심외무물 17-01-01 13:59
 
깨달음의 길에 있어 최고의 완성자인
부처의 세계- 시방세계 부처님의 수가 무량수( 셀수없이 많음)라고 합니다-는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완전히 넘은 것이기에

우리들의 논의에서 논외로 두는 것이 합리적일듯 합니다.
          
헬로가생 17-01-01 23:00
 
어느 가르침이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다 말하는 순간 그건 가르침도 아니고 그저 사기라 생각합니다.
               
심외무물 17-01-02 00:34
 
부처님의 가르침은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불교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같이

치료에 필요한 시술(가르침)에 집중하고

병에 대한 전문지식을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우선하지 않을 뿐입니다.

부처의 세계는 중생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병에 대한 전문지식을 환자에게 설명시키기 어려운 것과 비교되듯이요.

그렇지만 환자가 전문지식도 이해할수있다고 자신하고
설명해보라고 주장한다면
꺼릴 이유는 없죠.

헬로가생님이 진심으로 부처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토론을 원한다면 대환영입니다.

의사가 병에 대한 설명을 안한다고 해서 사기라고 해서는 안되듯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중요한 것이지
이해도 못할 부처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논외로 한 것을 사기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논리입니다.
                    
헬로가생 17-01-02 01:49
 
만약 제가 이해할 수준이 되고 님이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 것이 아니죠.
저도 인간이고 님도 인간이니.
높은 수준을 필요로할 망정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 건 아니잖아요?

전 님이 하신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다"는 말을 지적한 것 입니다.
님이 님의 뜻과 다르게 조금 실수해 쓴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 전 고지 곧대로 보고 지적한 것입니다.
                         
심외무물 17-01-02 06:50
 
부처의 세계는
언어와 분별을 떠나있고 시공을 초월합니다.

님이 이해할 수 없고 제가 설명이 곤란한 것이죠.

그냥 언어와 분별을 떠나있고 시공을 초월하기만 하면 이해할 수도 있을듯..

부처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다는 표현은 적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논외로 한 것인데

님이 사기라고 하니 얘기가 이어지는 것이였죠?

인간중에서 부처된 사람도 있는데
인간중에 부처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려구요..
대부분의 인간은 상상불가라는 겁니다.

어느 가-르 -침이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다 말하는 순간 그건 가르침도 아니고 그저 사기라 생각합니다
-------------------------
부처의 세계를 설명하는 걸 가르침이라 하지 않고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중생이 부처의 세계를 헤아린다는 것이 역부족이며 상상불가라는 것이고..
혹 영리한 사람에게 설명한다해도 반어법과 비유법으로 점철되어진 간접설명뿐이죠.
이걸 알아듣는 사람은 대근기이고 중생보다는 부처에 가까운 근기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부처의 세계는 높은 수준의 그무엇으로 표현하면 잘못된 표현이고
인간의 사고와 상상 수준을 넘는다고 표현해야 적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가시는가 17-01-02 09:18
 
중국에서 불교 경전을 번역할 때, 산스크리트어 '싣다아안타(siddhānta)'를 '종(宗)'으로 번역하였다. 이때 '종'은 진리의 궁극적인 경지를 뜻하며, 종교란 그러한 ‘종’에 이르도록 하는 가르침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그런의미에서 종교라고하면 불교이외에는 궁극적인 진리를 추구하는것은 없다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깨달음이라는게 궁극적인 진리를 이야기하죠. 다른종교는 걍 선지자들의 말씀대로 살거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불교는 진리를 찾아갈려고 노력합니다. 그목표가 진리죠. 다른말로는 마음, 부처님등등 입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기때문에 말로는 진리를 찾을수가 없죠... 그렇지만 깨치면 우주의 기원을 알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자체가 진리이기때문에....
재미세상 17-01-02 14:39
 
굿을 하세요..
우리나라 무당도 신을 섬김니다. 그것과 목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의 말을 전파한다고 한거랑..같은 겁니다.
물론 기독교는 자기들 신이 젤 쎄다고 하는데요 ㅋㅋ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시골가생 17-01-02 19:52
 
초기불교의 열반 해탈과 대승불교의 불성, 본성은 결국 같은 경지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참나라고 한건 어떻게 보면 이름을 잘못 붙였다고  볼수도 있는데. 묘사하는건 똑같습니다. <이건 결론이 나지않는 이야기니 사실 논쟁의
의미는 없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의 세계는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라고 보기보다는, 즉 상상 이상의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상상과
같은 우리 의식이 작동하지 않을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세계죠. 이를 멸진정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그런 상태를 몇번씩은 경험하게 마련이고 이를 찰나삼매, 찰나 견성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범부나 부처나 똑같은 경지에 있다고 봅니다.
심외무물 17-01-02 21:01
 
찰나삼매나 찰라견성은 의사삼매,의사견성으로서
결국 삼매도 견성도 아니며
수행초기에 나타나는 현상 이외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경험으로 부처나 범부가 똑같은 경지에 있다고 본다는 것은
팔정도 외우고 불교공부 끝냈다고 하는 사람과 동급일듯...

설사 멸진정 삼매에 든다해도 부처의 경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시골가생 17-01-02 22:50
 
아라한(깨달음을 얻은 수천명의 부처님의 제자들)의 깨달음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깨친후 열반에 든 상태에서는동일한 경지입니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이나 아라한들이 모두 열반에 들어 윤회하지 않는데..그분들이
해탈후 어디에 속하든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죠. 인간의 최고점이 100이라면 열반에 들면 부처님이나 부처님 이전 이후로 열반에 든 많은 사람들이 모두 100에 도달한 것이지 부처님은 100의 깨달음, 다른 아라한들은 90의 깨달음
이런건 없다는 거죠. 열반은 그 자체로 더하고 뺄게 없으므로...
시골가생 17-01-02 22:54
 
부처님이 아라한들보다 높은 경지라고 말하는 것은 열반에 든 상태가 아니라..열반에 들었다가 다시 현상계로
팅겨 나와서 생각 감정 오감에 물든 에고 상태일때를 비교하는 것이죠..
멸진정 상태에서는 에고의 생각 감정 오감이 0.1%도 작용하지 않으므로 그 상태에서는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나
같은 경지인것입니다.
     
심외무물 17-01-02 23:19
 
계율을 청정하게 지켜 한점 티클만큼의 허물도 없는 청정수행자는
부처님의 청정함과 같아서 부처님과 청정수행자는 동급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멸진정 아라한을 부처님의 대 열반적정 세계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멸진정으로 부처의 해탈열반을 이해했다면
부처의 대해탈열반의 세계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멸진.. 멸해야 할 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유의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대적 세계의 언어입니다.

菩提本無樹    보리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    명경 또한 대가 아닌데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惹塵埃    어디메서 티끌 생기랴!
 
-육조 해능대사 오도송입니다

육조의 본래무일물을 모른다면
부처의 대열반해탈 세계는 깜깜무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멸진이 아니라 본래 무진임을 깨달아야 불지를 구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파랑 17-01-06 12:20
 
제 멋대로 해석을 다시 해보면....

菩提本無樹   
보리의 나무는 본래 없고
 
明鏡亦非臺   
 맑은 거울 역시 대(鏡臺경대)가 아니다(없다)

本來無一物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   
먼지와 티끌에 이끌림은 어느 곳에서의 일인가?
시골가생 17-01-03 08:49
 
본래무일물=열반=견성=본성, 모두 같은 경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죠..
부처의 대해탈열반을 특별히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위대한 신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든 평범한 인간이든 멸진정(에고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완전 몰입상태,
우리의 신성이 온전히 드러난 상태) 상태에서는 오직 우리의 진짜 주인공만 존재하는
상태이므로 이 상태에서는 수십억의 인류가 모두 같은 신성인 것이죠..
어차피 이 신성을 체험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에고인데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이 위대한 신성을 에고(현상계)가 최대한 밝혀내고(반야)
구현해낸 데 있는 것입니다.
사후에 부처님만 특별히 높은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원성이 존재하는 색계의 인식이라고 봅니다.
     
심외무물 17-01-03 13:01
 
본래무일물=열반=견성=본성, 모두 같은 경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죠..
 ---------
단어 뜻도 모르면서 주저리주저리...


부처의 대해탈열반을 특별히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위대한 신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
바로 위에다 열반=본성이라고 적어놓고 바로 다음 문장에단 뭐라고요?


부처님이든 평범한 인간이든 멸진정(에고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완전 몰입상태,
우리의 신성이 온전히 드러난 상태) 상태에서는 오직 우리의 진짜 주인공만 존재하는
상태이므로 이 상태에서는 수십억의 인류가 모두 같은 신성인 것이죠..
.----------------------
멸진정은 현실과 단절된 우물안 개구리의 선정입니다.
오직 에고인 상태이며  애고에 의한 혼수상태라고 봐도 됩니다.
신성은 외도들이나 뭣모르고 사용하는 단어죠.. 신은 중생이고 신성=중생성입니다.




어차피 이 신성을 체험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에고인데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이 위대한 신성을 에고(현상계)가 최대한 밝혀내고(반야)
구현해낸 데 있는 것입니다.
.-------------------------
에고와 현상계는 괄호치고 동치시킬 단어가 아닙니다.
적절하지 못한 단어사용은 글쓴이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코믹한 상황이 됩니다.


사후에 부처님만 특별히 높은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원성이 존재하는 색계의 인식이라고 봅니다.
--------------------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신 후 해탈열반을 항시 수용하신 겁니다.
우리사는 세상의 실상이 해탈열반상 그자체입니다.
사후 어딜가고 자시고 하는 것이 해탈열반의 세계가 아닙니다
뭔 색계????
ㅋㅋㅋㅋㅋㅋ

잘모르겠으면 배울 자세부터 갖추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시골가생 17-01-03 14:45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쉽군요.
우리사는 세상의 실상이 해탈열반상 자체라고 하는건 초기불교
부처님의 법문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색즉시공은 부처님의 법문이지만 말씀하신 현상계=해탈열반상 은
대승불교의 사상인것이죠.
멸진정이 우물안 개구리의 선정이요 에고의 상태이며 에고에 의한 혼수상태라는 말은
어디에서든 들어본적이 없는 말이군요.
에고(생각, 감정, 오감)가 한치도 작용하지 않는 영역이 멸진정 상태인데요..
부처님도 수시로 멸진정에 드셨구요.

부처님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에고도 있고 열반자리도 있습니다.
에고를 현상계의 인격이라고 한다면 열반자리는 우리의 본질이겠죠.
이 열반자리에 들기 위해서 호흡을 통한 명상이나 (부처님이 평생 하신 위빠사나, 수식관)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열반자리 자체는 이미 완벽하게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자리이기에 그 자리에 드느냐 못드느냐의 문제이지 그 자리에 높고 낮음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열반자리와 범부의 열반자리나 다름이 없다는 겁니다.
     
심외무물 17-01-03 16:34
 
누가 열반에 높고 낮음이 있다고 했나요?

열반이 범부의 상량 밖의 단어라는 겁니다.

님이 이렇게 횡설수설하듯
열반이란 단어는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그런겁니다.

초기불교는 그때그때 불법을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설법하면서
방편을 사용한 것입니다.
실상을 설한 것이 아닙니다.
최초 설법이 고집멸도인 것처럼요.

부처님은 24시간 정각에 있는 분입니다.
부처님이 멸진정에 들면
무아즉진아인 멸진정이지만
중생이 멸진정에들면
에고가 다 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멸진에 드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멸진에 박제당해서
돌아오지 않는 산 송장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초기불교 대승불교.. 식으로 나눠서 껴맞추고 이어붙여서
불교를 이해하면
불교의 본래적인 모습을 잃기 쉽상이죠...

불교학 자체가 너무 광대해서
심오한 불교정수를 알아내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시골가생 17-01-05 03:20
 
글로 의견을 나눔에도 매너가 있음인데, 또한번 안타깝네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분명 지향하는 바가 다르죠.
티베트와 동북아시아는 주로 대승불교가, 남아시아권에서는 초기불교가 주류였는데
대승불교가 우리나라 고유의 홍익사상과 유사한 면이 많아 크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위한 출가를 말씀하셨지만 또한 현실세계에서 선악을
엄정히 구분하고 팔정도를 중요시한것은 대승불교의 육바라밀과 연결되는
면도 있죠. 반면에 부처님의 제자들은 대체로 열반에 드는것을 더 중요시하고 현실세계
에서 선과 자비를 베푸는 것을 부가적으로 여기는 면이 많아서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이는 부처님과 여실히 비교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중생이 멸진정에 들면 에고가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것은 멸진정이 아니라 사선정 중 한 경지겠죠.
멸진정 자체가 에고가 전혀 작용하지 않는 상태인걸로 아는데요..
               
심외무물 17-01-05 08:41
 
멸진...단어 자체가 에고가 묻어 있는 단어입니다.
에초에 진이 없는데 멸한다는 정에 든다는 것은...?
무색계도 중생계이며
에고가 없는듯 한지만
정각의 견성이 없이는 에고를 영제할 수 없는 겁니다.


원래 무진인데 멸진한다는 망상이 필요할까요?
해탈이란 진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진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죠.
이런 깨달음이 없이 아무리 멸진을 반복하여 영원히 진을 드러나지 않는다해도
에고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깨달음은 두루 막힘없이 소통이 되야 하는데
진과 괴리된 정에 집착을 한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에고에 의해 정에 박제된 돌아오지 않는 산송장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에고를 영제하는 것은 확철대오의 견성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에고를 긍극에 이르기까지 드러낸 것인데
소승아라한은 이부분에서 깊이가 얕아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는 수행자입니다.

부처님의 대해탈열반의 깨달음의 세계란 그래서 범부의 상상밖의 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의 세계는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라고 보기보다는, 즉 상상 이상의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상상과
같은 우리 의식이 작동하지 않을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세계죠. 이를 멸진정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그런 상태를 몇번씩은 경험하게 마련이고 이를 찰나삼매, 찰나 견성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범부나 부처나 똑같은 경지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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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세계는 님이 상상하는 멸진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이며
더욱이 부지불식간에 경험하는 찰나삼매나 찰나견성으로 부처의 경지를 논하는 것은
그냥 불랙코미디요 아재개그도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단순히 학문적인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토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실전학문입니다.
죽은 글자를 아무리 논리정연하게 한다 해도
그것은 시체가 화장하는 것과 같아서 무의미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위한 출가를 말씀하셨지만 또한 현실세계에서 선악을
엄정히 구분하고 팔정도를 중요시한것은 대승불교의 육바라밀과 연결되는
면도 있죠. 반면에 부처님의 제자들은 대체로 열반에 드는것을 더 중요시하고 현실세계
에서 선과 자비를 베푸는 것을 부가적으로 여기는 면이 많아서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이는 부처님과 여실히 비교되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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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장은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인연출세한 이유를 전혀 모르면서 멋대로 지껄인 것이네요.
배려란 글의 내용에서 성실함이 묻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배려이며 예일 것입니다.
또한 논점이 있을 때는 그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곁가지의 말을 삼가하고 논점의 해결에 필요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네요
KANGOL 17-01-03 15:16
 
정확해요  불교 기독교 등 종교는 전부 교리에 의한거지만
불교는  깨달음을 계속 적으로 추구하는  깨달음의 종교 에요
그래서 굉장히 진보적인 성향의  종교이죠  반면에 유교 같은경우는 굉장히 보수적인 교리이구요
그래서 고려말기 불교 탄압 하고 유교를 받아 들이는것을  한반도의 운명의 큰 갈림길 이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레종프렌치 17-01-08 09:48
 
현대인들은 예수교를 믿지 않아도 다소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예수교 유일신 신앙에 세뇌되어 있음.
때문에 종교에 관한 사고를 할 때 유일신앙적인 사고를 함.
이 또한 기독교의 엄청난 폐해중 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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