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열반은 죽어서 가는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사후이상세계가 천국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불교의 사후이상세계는 극락세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열반은 깨달음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써 현생의 수행자나 극락세계 중생들이
성취해서 얻는 긍극의 완성상태를 일컬으며 불교의 본래적 이상향입니다.
극락세계는 이세상의 혼탁함을 여의고 지극히 행복한 삶만 존재하는
중생계의 이상향의 하나인데
아미타 부처님의 큰서원으로 건설된 극락세계에는
지옥,아귀,축생의 세가지 악도가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안온한 극락의 삶을 영위하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환경이 조성되어 모든 극락세계 중생들이 종국에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말그대로의 극락의 세계입니다만
극락세계도 엄밀하게 말하면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속할 뿐입니다.
미륵보살신앙, 약사여래신앙,관음보살신앙 등등 많은 불보살 세계에 대한 신앙도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신앙과
같은 궤에 놓여있는 것이고요.
각각의 신앙이 사후 이상향이나 현생 수행방법의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불교의 절대불변의 원칙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
포지션닝.. 위상설정이 되어 있어야
자신의 삶과 윤회에 비로소 나침판이 장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팔정도 첫번째에 나오는 정견(깨달음에 대한 바른 견해)를 말하는 것이며
정견이 서야 제대로 된 불교신자라고 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수행을 실천할 준비가 된 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불교에서 죽음은 옷을 바꿔입는 것과 같습니다.
옷을 잘 갈아입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특별할 것이 없듯이
죽어 좋은데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는냐도 중생의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긴 하겠지만)
옷은 아무거나 편리한대로 입어도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바뀌면 옷을 입는 자세가 다르고 어떤 옷을 입어도 격이 다를 것이며
죽을 때 곱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