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문서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는 사람들이 말하듯 여호아의 아들이니 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예수는 특별한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예수가 깨우친 특별한 이치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예수의 계보를 따져보면 예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상은 수메르인 이라 하였다.
수메르인은 메소포다미아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인데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해서는 한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이를 "메소피타 문명의 수수께끼"라 한다.
"메소피타 문명의 수수께끼"란
수메르인은 도데체 어디서 왔는가이다.
여기까지만 하자. 여러분들이 스스로 그 수수께끼를 살펴보고 스스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본 주재로 돌아가서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 방식은 "너희들이 말하여 준다 한들 알겠느냐, 그냥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믿어라."이다.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말라 하는 것은 하지말라 그리하면 적어도 존재가치의 하락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글쓴이가 본 예수의 가르침 방식이다.
1+1=2 이다.
1+1이 2이라는 것을 안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것에 대하여 믿는다라는 말을 쓰기도 우스울 것이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1=2이다에 대하여 이렇게 당연하게 믿게 된 이유는 온전히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왜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그것을 억지로 믿어야 하기에 "믿습니다."를 외치는 것이다.
믿음이란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이제 석가모니의 가르침 방식을 보자.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후 또 다시 49일간의 명상에 들어갔는데 이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대중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명상이었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평생을 겯에 두고 이해시키려 하였다.
이것이 글쓴이가 본 석가모니의 가르침 방식이다.
누가 더 훌륭한가?
글쓴이가 내린 결론은 누가 더 훌륭하다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 방식에도 일장일단이 있고 석가모니의 가르침 방식에도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분류방식이긴 하지만 영혼에는
baby소울, young소울, mature소울, old소울이 있다.
베이비 소울이나 영소울은 이치를 깨달을 단계가 아니다.
적어도 매츄어소울 단계로 넘어가야만 이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예수의 가르침 방식이 타당해 보이고 석가모니의 가르침 방식은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므로 누구의 방식이 더 타탕하다 라고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의 성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깨달음을 전하려 했을까?
동양의 성인들은 궁극적인 곳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포인트만을 지적해 주셨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아무런 설명없이 "인심유위하고 도심유미하니 유정유일이라야 윤집궐중하라."라고 하셨다.
미성숙한 영혼들은 이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숙한 영혼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고민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비인부전이라.
스스로 깨우쳐 나아가라. 다만 그 중요처에대해서는 힌트를 주겠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진다.
무식이란 사과를 깎아먹어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깎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무지란 사과는 깍아 먹는 것이다 라는 것 조차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