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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6 08:29
17. 운명론과 자유의지
 글쓴이 : 공무도하
조회 : 241  



역사를 기술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정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과 실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실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란

역사서를 쓰는 이의 주관을 배제하고 역사속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조선왕조실록등이 있다.


반면

정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란

특정한 사건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모든 사건은 특정한 사건을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고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기 전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일어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는

2차세계대전은 한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일어난 것 이라고 본다면 이는 정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이다.


정사적 관점에서 서술된 대표적인 역사서로는 사마천의 사기가 있다.



글쓴이가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서론에서 역사의 기술방식에 대하여 언급하는 이유는

정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운명론적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짚고 넘어 가기 위함이다.


또한

운명론적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을 부여한 상위존재를 전제하는 것이다.


인류가 남긴 대부분의 역사서는 정사적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만약에 누군가가 올 해 여름휴가는 하와이에서 보내기로 결심을 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사람의 올 해 여름 휴가철의 운명은 결정된 것으로 보아도 되는 것인가?


물론 여러가지 상황 변동이나 천재지변으로 그 사람이 하와이를 못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위의 가정을 좀 다르게 설정해 보자.


나는 반드시 올 여름 휴가를 하와이에서 보낼 것이다.

그 어떤 상황변동이 있더라도 심지어 천재지변이 있더라도 하와이까지 헤엄쳐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올 여름 휴가를 하와이에서 보낼것이다라고  그 사람이 결심을 하였다면 그사람의 올 해 여름 휴가철에 있어서 그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위의 예에서

어떠한 사람의 결심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글쓴이가 위의 예를 통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결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즉 자유의지에 의한 결심의 강도에 비례하여 그 사람의 미래의 운명이 선명해 진다는 것이다.



물론 운명이라는 것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예를들어

내가 동양인으로 태어 난다는 것, 한국의 남자로 태어 난다는 것 등과 같이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못한 채 부여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부여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모든 상황들을

내가 태어 나기 전의 "나", 즉 상위차원에서의 나에 의한 선택이라면 어찌되는 것인가?


상위차원의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을 자유의지에 따라 계획하고 선택한 것일 것이고

상위차원의 나는 하위차원의 나보다 월등히 완벽한 존재일 것이기에 하위차원의 나는 그의 계획에 따른 선택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가정해 본다면

운명이라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 문제점은 하위차원의 나에게도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상위차원의 나는 하위차원의 나보다 월등히 우월한 존재일 것이므로 하위차원의 나는 상위차원의 나의 계획에 따른 선택에 이의 없이 순응하면 될 것인데 문제는 하위차원의 나에게도 자유의지가 주어짐으로써 상위차원의 나의 선택에 반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하위차원의 나는 상위차원의 나의 선택에 따른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겠지만...


따라서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진 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위차원의 나를 어떠한 지점까지 이동시키는 것이 하위차원의 나를 통하여 이루어 낼 상위차원의 나의 목적의 전부라면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진 것은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은

상위차원의 나가 하위차원의 나를 통하여 이루려 하는 것이 하위차원의 나를 단순히 어느 지점까지 이동시키려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위차원의 나가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써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정속에서의 체험과 그 체험을 통하여 얻게 되는 "느낌"에 있다.


하위차원인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런 고민없이 주어진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신이 우리에게서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신이 우리에게서 바라는 것은 그 과정 속에서의 느낌들 이다.


절대적 존재인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전제적으로는 상대적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상대적 존재에게 있어서 나(신)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글쓴이의 존재의 이유라는 글을 통하여 알아보기 바란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하위차원의 나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어진 길을 걸어 갈 때 그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고민들, 기쁨들, 고통들, 쾌락들... 이 모든 느낌들을 수집하는 것이 상위차원의 나의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가학자인가? 


그가 간접체험자라면 그를 가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간접체험자가 아닌 직접 체험자이다.


직접 체험이어야만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을 가학자라 말 할 수는 없다.




글쓴이는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 한 "하늘에 기댄다"라는 표현을 무척 좋아한다.


이는 하늘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다가 힘들 때 하늘에 기대어 잠시 쉬어 간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고단한 삶 속에서 하늘이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용에서는

그것을 알고 삶을 살아가는 이를 대인(大人)이라하였고

그것을 모르고 삶을 살아가는 이를 소인(小人)이라 하였다.


주어진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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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at69 17-07-16 09:02
 
물리학적으로 보면 운명론과 자유의지를 분리하면 안됩니다
확률 위에서는 내가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어느정도 그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수있는 어느정도의 의지를 거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상위차원 하위차원으로 나눌수 없는것이 슈레딩거의 고양이 실험으로 나타납니다
변화는 언제나 큰것이 작은변화를 이꾸는것 뿐만 아니라 작은변화가 큰변화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는것이 이 실험의 결과죠
진리는 세상은 큰것과 작은것으로 느린것과 빠른것으로 순서가 정해지지 않고 서실 둘의 구분이 없다는 겁니다
극과 극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우주의 실체죠
     
공무도하 17-07-16 09:19
 
윗 글에서 운명과 자유의지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운명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윗 글에서 상위차원과 하위차원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위차원안에 상위차원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변화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실들은 계속해서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과학으로 발견한 것들은 또다른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과학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로니모 17-07-16 11:28
 
제 생각은 음...하밧님 얘긴, 이 분이 말하고자하는 거와 다른 차원, 방향 얘기 같군요.  ㅎㅎ

이분은 단지 신학적 얘길 형이상하학적 철학적 원론으로 개념을 설명하구 있을 뿐, 평행우주론이나 다세계이론 같은 현상론적 세계에서 인과론이나 결정론을 구분지어 말하고 있는건 아니라구 봅니다.

뭐 자유의지와 운명은 서로 대립된 개념이지 어떤 구체적 현상에서 나타난 간섭을 각각의 순수한 성분으로 분리 분석한 거완 다른 관점이란거쥬.
우왕 17-07-16 11:00
 
어느 종단에서 오셨습니까?
도덕경에서 자유의지까지
모 해석이야 각자 자유라지만 어휘나 관점이 특이하시네요
     
공무도하 17-07-16 11:11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었습니다.
          
우왕 17-07-16 11:15
 
그래서 단어나 생각이 짬뽕이 되어있군요
헬로가생 17-07-16 22:47
 
글이 경인선을 타고 서울로 잘 가다가 갑자기 옆에 가던 차가 툭 하고 쳐서 중앙선을 넘더니
국도를 타고 강원도를 향하다가 또 갑자기 덜컹하더니 덜덜덜 굴러서
경부선에 다다라 부산을 향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로니모 17-07-17 09:41
 
어떤 책내용의 글인가봅니다?
 
음... 신학적, 철학적으론 매우 가치있는 주제이긴한데...
적어도 기독신학면에선 좀 부실한 인식이 엿보이네요.

일단, 자유의지에 관한 설명과 대전제를 정하지않고 적용시키구있기에 대전제에 있어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밝혀둡니다.

자유의지라함은 일반적으론 글자그대로의 의미로는 그 어떤 상위 지배자의 간섭에서 벗어나 완전 독립된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 의지를 말하죠.

그러므로 님의 글에 나오는 접근 방식을 빌려 기독교식 적용으로 표현하자면,

상위차원의 자아를 전지전능 혹은 절대주권의 신으로 정의하고 이 절대자의 의지는 글자그대로 자유의지라 말할 수 있죠.
하지만, 하위차원의 자아인 물리적 나란 존재에게 부여된 의지는 상위차원과 같은 말인 자유의지라구 부를 수 없단 얘깁니다.

진보적 신학에선 일반적으론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고 종속의지가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하위차원 그러니깐 연약한 존재인 물리적 나는 완전한 자유란게 없다는게 맞죠.
당장 지구를 떠나면 숨쉴 수도 없고 중력에 매여 지구란 땅으로부터 떨어져 살 수 없으며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두 그 인식과 활동폭의 테두리만 조금씩 넓혀질 뿐, 무한의 미지 영역 속에 갖힌 한계인이니깐요.

신의 관점론으로 볼 때두 모순입니다.

상위차원 신이라함은 절대주권자입니다. 절대자라함은 오직 하나이고 같은 지위를 허락치않는 온전히 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의지자죠. 하지만 상대자(하위차원 나)는 그렇지않습니다. 상위차원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그게 바로 운명) 상태죠.

그러므로 동시에 절대자의 주권 즉 자유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할 순 없다는 겝니다. 완전 말자체가 논리 모순이죠.
모순의 한자유래를 아신다면 말이죠.

그러므로 본문 식대로 표현을 빌려 대전제를 수정하면, 상위차원의 자아는 자유의지를, 하위차원의 나는 종속의지를 가진다구 설명하면되겠습니다.

물론 혹자는 지구안에서. 혹은 더 좁게 풀장안에서,  혹은 머리속 사고로라두 자유함을 가질 수 있으니 그건 자유가 아니냐라구 반문할 순 있겠죠. 하지만 그 역시 지구안에서, 풀장내에서, 머리속에서 제한된 자유함일 수 밖엔 없으므로 종속되거나 제한된 자유함인겁니다.

또 위 본문서는 상위차원의 자아가 하위차원에게 부여한 자유(종속)의지는 하위차원의 느낌을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위차원인 신이 하위차원의 나를 주어진 길과 목적지 범주 안에서 행동하게 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부여한것만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 문장은 대체로 동의합니다만 신이 인간의 제한된 자유속에서의 발버둥치며 노력하여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두 바꿔보려는 그 종속된 인간의 처절한 느낌을 위해 종속의지를 부여했다? ㅋ

그건 넌센스 같습니다. 왜냐 전지전능의 신이 아무리 상대적 존재라지만 상대자 피조물들의 느낌 따위를 위한다? 글구 그 느낌을 모른다? 전지전능자가 어떻게 모를 수 있답니까? ㅋ
그리구 신이 하위차원의 종속의지를 통한 그 느낌을 직접체험한 가학자는 아니란 말씀하시면서도 그 종속의지를 가진 인간의 느낌을 모를 수 있나요? 이 얘기두 모순된 거죠.

그렇담, 그저 하위차원 인간들이 종속의지를 통해 운명을 바꿔보고 개척해나가려 고민하고 아파하는 그런 노력들의 느낌을 스스로 알게하기위해 종속의지를 부여했다? ㅎ 글쎄요. 그럴지두 모르겠군요.

그러나 완벽한 기획자 신이라면 마치 그냥 그의 계획대로 설계되어 그냥 바다에 띄워놓은 돗단배마냥 멀리서 관찰할 뿐일 거라는 지극히 합리적 신론인 이신론적 관점이 맞을 지두 모릅니다.

그러므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그 자유의지 아니 종속의지죠. 이 종속의지는 반드시 목적 경로 내에서 활동하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그 경로내에서 제한된 자유함일 뿐, 바로 완전히 신으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선택권리가 아니란걸 뜻합니다.

암튼 글의 결론이 영 맘엔 들진 않네요.

도덕경을 인용한 마지막 부분을 보니 결국 글이 말하고자하는 제언 요지는 이렇군요.
상위차원 신이 하위 인간 나에게 부여한 종속의지로 부터는 인간 숙명, 운명은 결론적으론 어쩔 수 없으니 그 제한된 범주 내에서 부여받은 자유함으로 방법과 과정에서 좀씩 달리하며 나름 제한된 자유함이라도 의미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라.
그러면서 운명을 개척하려 노력하다 힘들면 때론 가끔 하늘, 상위차원에게 기대어 마음을 달래며 쉬어가면서... 노장사상 비스무리 귀결되는... ㅋㅋ

뭐 대강 이런 맥락이네요? 그죠? ㅎ
근데 대부분 다 그 정도로 살지않나요?

글 방향은 좋았는 디... 좀 아쉬움이 남는군유.
     
공무도하 17-07-17 12:16
 
긴 댓글 잘 읽었습니다.
이치에 대해 토론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밤새도록 토론해도 시간가는 줄 모를 것입니다.

일단 제가 쓴 모든 글은 제가 고민하여 이해한 것들이지 남의 글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짚어 둡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란 제한된 자유의지라는 것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제한된 자유의지가 종속의지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아래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한된 자유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종속된 자유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놀아라 라고 하였다면 이것이 종속된 자유인지 제한된 자유인지...
짧은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하고 싶군요.

다음으로
절대자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제한된 자유의지가 공존할수 없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면,

절대자의 자유의지를 인간이 절대적으로 느낄수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발동시킬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자의 자유의지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이 있다, 없다가 불명확한 것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신을 명확하게 느끼지 못하고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
이또한 신의 의도 입니다.

인간이 신을 명확하게 느낀다면 인간은 신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은 자신의 종, 노예가 필요해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부분은 존재의 이유 창조의 이유에 대한 글을 읽어 보시면 되겠습니다.)

인간이 절대자의 의지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동되고 공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절대자가 피조물의 느낌 따위를 알지 못하면 어찌 전지전능한 절대자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부분도 존재의 이유 창조의 이유를 읽어 보시면 논리를 이해 할 것인데
짧게 설명해보자면
절대계라는 것은 홀로 존재하는 계를 말함니다.
상대적 존재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계에 있는 존재가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상대적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 존재란 무엇인가?
상대적 존재에게 있어 나(신)는 무엇인가?
이것이 창조의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적 존재가 무엇인가를 가장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절대적 존재가 상대적 존재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감각과 느낌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

그런데 이러한 상태에서 하위존재 즉 상대적 존재에게 자유의지가 아닌 종속의지만 주어져 있다면 상대적 존재의 진면목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설명이 너무 장황해지니 글쓴이가 쓴 존재의 이유과 창조의 이유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님의 의문에 대한 답은 다 그 글들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쓴이가 결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피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과정들을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 하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잠시 하늘에 기대어 쉬어가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이기에..
지금은 인간의 몸을 취함으로써 그 기억을 잃어 버렸지만 이모든 과정은 내가 신이었을때 모두 내가 계획한 것이기에 상대적 존재인 나의 자유의지 역시 절대적 존재의 자유의지와 다르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상위차원의 나와 하위차원의 나로 표현한 것입니다.
          
제로니모 17-07-19 11:59
 
그러니깐 님이 제시한 글의 결론이란게 통상 세상속의 자아와 그 존재 이유를 고민한 자들이 알고 있는 통상적 수사일 뿐이란겁니다.

님의 결론은 그저 계속 고민하는거 빼곤 특별히 진전된 제언이 없었기에, 그러니 그게 아쉽다고 한거죠.

또, 상대계가 절대계의 손아귀 혹은 제어권에서 벗어난다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땐 절대계가 더이상 절대계가 아닐 뿐 아니라 또한 기존 절대계의 제어권을 벗어난 또다른 절대계가 생겨났다는 말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하늘아래 두개의 별(왕)이 존재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듯, 절대주권 하를 벗어난 자유함이란 있을 수 없다는걸 의미하고 용어가 잘못되었기에 인간에 부여된건 종속의지로 바꿔 쓰야한다는 거구요.
님 얘긴 결국 절대계 내에서 한정된 범위안에서도 미시적 무한 자유도(micronic degree of freedom infinite)가 존재함을 강조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치더라도 신의 컨트롤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엔 없습니다.

그리구 한가지만 더하자면...

절대계의 존재가 상대계의 피조물인 하위차원의 나를 통해 그 느낌들을 간접이 아닌 직접체험한다라구 말하셨거든요.

이 부분에서 님 얘길 다시 정리하면, 절대계 신이 상대계와 인간을 만들어 신이 만든 바운더리안에서 제한된 종속의지를 부여한건 인간마음속에 들어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직접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그건 전지전능자가 아닌거죠.
전지가 뭔가요? 소설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면 상대를 첨보면서도 상대의 속마음까지 다 알고 그 느낌의 풀이 까지 하죠.

그러므로 절대자가 상대계를 만들거나 한계인인 피조물에게 작은 자유함이라두 준건 상대계나 혹은 피조물의 생각과 행동 양식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정보수집을 위해, 또는 심하게 말해서 실험하기 위함이란건 데, 이건 말두 안되는 넌센스입니다.

또, 님은 세상 만물 안에 각기 피조물의 자아와 연합된 절대적 능력이 존재하여 각자 모두 초인이나 신이며 내가 보고 느끼는 게 곧 신이 보고 느끼는 것이란 마치 스피노자와 같은 범신론자(pantheist)적 관점으로 바라보려하는 거 같은데요.
그건 갠적 독트린이니 사상의 자유범주에 일이니 존중합니다만.

몰라, 신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상대계와 구성원들을 창조하여 최소한의 룰, 즉 자연법칙 같은 거죠. 태초에 그런 자연법칙의 룰만 던져주고 신계와 인간계가 거의 철저히 단절, 격리되어 있는 신관인 초자연적 유신론이나 이신론적 세계관으로 보자면, 인간계에 대해 다알수 있고 또는 다알지만 대부분 인간계에 관계, 간섭, 개입하지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구요.
(일절 관계하지않는다는 이신론에 비해 초자연적 유신론은 지극히 이따금씩 일어나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의 경울 신의 개입으로 보죠)

한편, 신약성경에서 말하고 있고 신관을 보면, 이 역시 이원론적으로 신과 이 세상이 격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세상과 인간 마음안에도 들어와 연합되어 적극적 개입하는 신(성령)으로 보는 범재신론자(panentheist)입장이라면, 인간을 통해 인간 마음도 세상일도 다알지만 모른척 간과하고 관찰하거나 시험하며 인간과 세상을 통해 신 자신의 절대성과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세상을 만들고 종속의지를 부여했다라구 봅니다.

이외에, 영지주의(gnosticism)나 유,무신론적 불가지론(agnosticism)적 관점으로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공무도하 17-07-19 13:01
 
이유를 알고 고민하는 것과 이유를 모르고 고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를 모르고 고민하는 것은 답을 얻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유를 알고 답을 구할 때에는 답을 얻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다음으로 전지전능이라는 것과 느낌이라는 것에 대해 짧게 설명해보자면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계(界)내에서의 전지전능을 말합니다.
이부분에 대해 설명하자면 매우 길어지므로 다음에 발제글로 올릴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느낌이라는 것에 대해 살펴보죠
느낌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합니다.
전지하여 모든 것을 안다하여도 지(知)로 아는 것과 각(覺)으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불이 뜨겁다라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체험하여 느낌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느낌을 얻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합니다.
몸이 필요한 것이죠.
상대적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상대적 존재는 이러한 존재이다 라고 머리로 아는 것과 상대적 존재에 직접 들어가서 느낌으로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우주를 만들기 전의 계(界)
즉 절대계를 상정해서 창조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이해하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그러한 말을 하였지요.
석가모니가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죽기 직전까지 갔을때에 깨달음 즉 각(覺)을 얻기 위해선 몸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인지하고 몸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지요.

몸은 전능하나 전지하지 못하고 영혼은 전지하나 전능하지 못하니
몸은 영혼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것이고
영혼은 몸을 통하여 이루려 하는것.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 짧은 본문안에 모든 것을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천히 하나하나 써 나아갈 예정입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제로니모 17-07-19 13:47
 
그러니깐 님 얘긴 비유하자면, 절대자가 이미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느낌을 현실로 증명하기 위해 실험용 마루타가 필요했고 그래서 상대적 존재인 만물을 만들고 특히 인간에게 의지를 부여한것이다? ㅋ

참... 뭐라구 답하기가 힘들구료.

동양 철학에서 도가와 유가를 거쳐 불가에 까지 두루 왔다갔다 고민하려고 몸부림치시는건 알겠는데, 한군데서 좀 깊이 고민해보시구려.

적어도 기독교 관점으로 봐도 말이 안되죠.

신이 무슨 3차원의 유물사관적 존재인줄 아슈? 아님 이론만 알고 있어서 실험 입증이 필요한 이공계 실험실 원생인 줄 아슈?

이 물질세계의 존재들이 어디서 왔을까요? 그건 굳이 기독교만 아니라 절대자를 숭배하는 대부분의 종교들두 인정하듯 신에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죠.

그 얘긴 결국 만물은 신에게 났단 말입니다.
기독교는 특히 신에 나서 신으로 되돌아간다구하죠.

그럼 만물의 본질, 본성은? 신의 일부분이죠.
특히 기독교는 신은 3차원의 decay되는 물질이 아닌 더 고차원의 존재인 4차원 이상의 영적 존재, 영의 영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신의 logos(작정,혹은 말씀)으로 고차원의 영의 일부가 변해 3차원적 만물을 탄생시켰거든요.

둘은 차원만 다르지 본질은 같은 존재거든요.
그리구 인간 같이 이론만으로 부족해서 실습으로 증명하는 불완전한 인간 이성적 판단으로 똑같이 신두 그럴것으로 예상하여 실험을 위해 세상을 지었다고 결론내리는건 너무도 알미니언적 관점이구 신의 정확성과 능력을 인간의 레버리지로써 과소평가하는 거죠.

글구 플라톤을 좀만 아신다면, 이 현실세계가 실상이 아님을 알겁니다. 그렇담, 신이 실상도 아닌 이 허상인 현실 세계의 느낌을 위해 인간에게 의지를 주고 실험했다?  불교는 잘 모르지만 역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열반 넘어의 세상을 실체라구 하지않나요. 암튼...

어찌보면, 이 세계가 허상이요 저 세상이 실상, 실체인데. 이 허상인 세상으로 실험하는 게 무얼 위해?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마치 신이 증강현실을 보여주는 3차원 고글을 끼구 가상현실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실험하는 셈인데 웃기지않습니까? 결국 님 말은 신을 인간의 지적수준에서 보고 판단하여 내린 결론과도 같은겁니다.

신이 자신의 구상을 사이버공간에서 구현하여 재미를 즐기는 거로 해석될 수 밖엔 없죠.
                         
공무도하 17-07-19 14:03
 
한가지만 짚어 드리고 싶군요.
실험이 아니라 직접 체험이라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입니다.
                    
제로니모 17-07-19 14:15
 
ㅋㅇㅋ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 세상은 변질되어 죽어 사라져가는 물질로 가득찬 가상현실인데,

님 표현대로라면 결국 죄다 가상체험일뿐이죠. ㅋㅋ

그니 그게 가상실험으로 표현하나 가상체험으로나. ㅎ
                         
공무도하 17-07-19 14:30
 
이 세상이 가상인가요?
플라톤이 가상이라고 하면 이 세상이 가상이 되는 것인가요?
직접체험이든 간접체험이든 무슨 의미가 있냐니요.
^^
이정도에서 그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로니모 17-07-19 14:48
 
플라톤만 그럽디까?
2천년간 기독교 신학 프레임의 원천이 바로 이원론적 세계관이었구요.
실제 여기의 형이상학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하고 있구요.

기독교 뿐만아니라 타종교에서도 비슷한데유? 이후 서양철학에서도 관념철학의 기준점으로 인용되구 있죠.

 님아! 강을 건너지마오!
이내 그만 건너시는구료.
이후 연은 비극적이라.

시처럼 넘 멀리 건너가지 마소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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