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을 보면 남의 일로 벌어지던 피범벅 살인 사건이 자기 딸에게 벌어지면서 경찰관인 곽도원은 혼자서 온갖 망상과 착각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단순한 버섯중독으로 인한 환각 살인 상황 이상 아님. 그런데 그게 타인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되어버리자 곽도원은 정보의 인식 단계에서부터 왜곡이 발생함. 여기서 부터 그는 이상한 세계에 빠져들어갑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랑 달리 사건 내부의 시선(곽도원의 시선)에서 사건을 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면 종국에는 악마 따위와 만나게 될 수 밖에 없음. 물론 신을 만날 수도 있겠죠.
곽도원은 '병원에서 치료하겠다' 라는 상식적인 해법으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곽도원이 자신, 내부의 시선 속에서 해법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럼 본질적으로, 어떤 사건에 대해서, 이 세계에 대한 바깥의 시선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지금은 그나마 기록과 영상저장장치 같은 것이 있지만 과거에는 모든 것이 사람의 감각에 의한 해석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이 접하는 사건들은 인간의 사고와 감각이라는 내부의 시각에서 해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습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이 될 뿐임. 왜곡된 인식의 틀을 시작점으로 삼아 자기 관점에서 본 세계를 해석하여 기록하고 또 다시 그걸 받아들이는 악순환의 고리지만, 본인이 마냥 만족을 한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근원적인 모순을 불쑥 불쑥 만나게 됩니다. 인간은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게되면 합리화를 하려합니다. 마치 '발가락이 닮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불구임을 부정하려하듯.
이럴 때 소크라테스같은 사람은 질문을 하나 툭 던집니다.
그 질문을 되짚어가다보면 처음 답했던 답변과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게 됨. 고대에는 그렇게 철학이라는 것을 시작했었고. 이것은 사실, 귀류법이랑 같습니다. 잘못된 가정을 세우고 논리적 결론이 거짓으로 나올 때 가정이 맞음을 입증하는 방법임.
고대에는 자신이 세웠던 세계에 대한 가정을 부정해가며 맞는 것들을 찾아왔었습니다....
(철학은 그러했지만 삶이나 인생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이런 질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자기 부정이 됩니다. 그러기에 발가락이 닮았다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을 구원하려 함. 요즘은 유전자 검사로 친자확인을 해보면 되죠. 친자 확인 검사가 가능했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당사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우리는 그에게 친자확인 검사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발가락이 닮았다는 그의 관점은 자기 기망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구원인데. 여기서 사회와 종교가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하게 됨.)
아래에 너무 종교적인 이야기만 있어서 인류가 어떻게 종교와 어울리며, 또는 벗어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