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3강령 7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격물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그 7조목이다.
위의 7조목 중에서 특히 격물치지가 중요한데
그 이유는 격물치지만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평천하까지 이를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격물치지라는 기차에 오르기만 하면 평천하라는 종착역까지 자연스럽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주자의 격물치지와 왕양명의 격물치지이다.
이 두 학자의 격물치지론을 간단히 살펴본 후 성인들이 남기신 격물치지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자는 격(格)을 꿰뚫다로 보고 물(物)을 사물의 이치로 보았다.
이에 주자의 격물치지는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지식을 새롭게 하는것 이라 할 수 있겠다.
왕양명은 격(格)을 물리쳐서 바로잡다로 보고 물(物)을 물욕 또는 욕(欲)으로 보았다.
이에 왕양명의 격물치지는
마음의 욕을 물리치고 바로잡아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두 학자의 격물치지론을 간단히 살펴본 것이니 관심있는 이들은 따로 살펴보길 권한다.)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격물치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물(物)이다.
물(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물(物)자를 보면 자연물, 인조물, 물건 등과 같이 "만들어 진 것" 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글쓴이는 이 물(物)자 역시 음양의 결합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천부경과 더불어 민족의 2대 경전인 삼일신고를 보면 수행법으로 지감 조식 금촉을 말하고 있다.
삼일신고의 수행법인 지감 조식 금촉에 대하여 글쓴이는
조식과 금촉은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감에 대해서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느낌을 멈추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다시 격물치지를 살펴보자.
물(物)이라는 것이 음양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마음에서의 느낌이라는 것 역시 마음에서의 음양의 결합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어떤이가 이유없이 나를 향해 인상을 쓴다면 마음속 감정은 출렁거릴 것이다.
스님들은 이러한 마음 속 감정의 찌꺼기들을 마치 낙엽을 끊임없이 쓸어내는 것에 비유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지감(止感)은 이러한 마음속의 감정이 생기는 그 근원 자체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거둬들이고, 조용히 앉아, 정을 기를 뿐이다."라는
어떤 선비가 남겻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윗 구절에서 세상의 번잡함을 모두 거둬들였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지감(止感)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님들이 속세를 떠나 수행을 하는 것이다.
격물이 의미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격(格)을 물리치다로 해석하고 물(物)을 음양의 결합물로 해석하면
격물의 뜻은 모든 음양의 결합물을 물리쳐라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물(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물(物)이 의미하는 것이 모든 음양의 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음양의 결합물을 특정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물리쳐야할 것의 대상이 아니므로 물리쳐야 할 것의 대상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음양의 결합물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격물치지를 해석해보자면
인간사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음양의 결합물 또는 느낌, 감정들을 물리치고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새롭게 하라라는 뜻이 되겠다.
치지(致知)에서 지식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궁구하여 계(界)를 깨뜨림으로써 새롭게 깨닫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추궁해야할 지식의 대상은 음양의 이치를 말한다.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음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공자가 말한 그 하나는 음중양으로 이루어진 삼태극을 말하는 것이며 궁극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 이렇게 격물치지가 이루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의(誠意)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성의란 뜻이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말한다.
성의있게 일하라 라는 것은
열심히 하겠다는 뜻이 밖으로 드러나게 일하라라는 것이다.
성의가 이루어지면 정심(正心)의 단계로 넘어간다.
정심이란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는 것으로 마음에서 음양의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단계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서 수신(修身)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 많은 수행자들은 격물치지 성의 정심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행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행은 평생을 한다 하더라고 각(覺)을 이룰수 없다.
지(知)가 선행된 후에 수행에 들어야 각(覺)을 이룰수 있다.
예수가 평생을 수행하였는가? 석가모니가 평생을 수행하였는가?
그렇지않다.
지(知)가 선행되어 있다면 정작 수행에 필요한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않다.
수신에 들어가면 제가(齊家)가 이루어진다.
제가(齊家)는 우리 몸 속의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가가 이루어지면 치국(治國)에 들어간다.
치국(治國)은 우리 머리속 생각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치국이 이루어지면 평천하(平天下)를 이룰 수 있게된다.
평천하는 온 몸을 평정했다는 뜻으로 각(覺)을 이루었음을 말한다.
지난 수 천년동안 대학의 7조목은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은 성인들께서 천하를 평정하는 법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이해하기 쉽게 예를들면
석가모니나 예수가 어떻게하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않다.
대학 3강령 7조목은 동방의 성인들께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대하여 전하여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