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의라 함은
결론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그 사회 공동체(국가 공동체나 국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의 의무를 갖지 못하면
정의를 논할 수 없다.
즉, 소속감과 연대의 의무로서, 공동체를
위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바르고 긍정적인 일들을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정의롭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를 위한 정의가 공의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간단한 예를 들어, 자신이 조금 위험하더라도, 공동체를 위한 행위로서,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도망가는 도둑이나 강도를 잡은 사람을 우리는 정의롭다고 말한다..
이를 행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동체 사회에 소속감과 연대의 의무로, 그 사람의 공익을 위한 배려와 희생
그리도 더 나아가서는, 그 사회 조직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또 다른 생각으로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
및 가족도, 다른 정의로운 사람들로 인해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공의적 생각 또한 가질 수 있다..
또한, 이런 정의는 사회 이념과 사상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어 오기도
했다..
요즘처럼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한 국가의 정의와 함께 국제적인 정의 또한 중요시 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공동체적 정의로운 일이며 공의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우리가 한 집단이 자신들만의 정의라는 주장이나 목적을, 공공을 위한 바른 정의와 비교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가 빈약한 관념으로, 조폭/회사/국가의 이념이나, 목적이나, 목표를, 정의라 엉뚱한 주장을 하는 모습에 한심한 웃음만 나온다..
정말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야훼마저 창피할 정도의 수준으로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보편적인 바른 정의를 기반으로, 야훼나 기독교가 주장하는 정의란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자..
- 다양성 종교와 사상의 사회에서,
일개 종교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유일신 사상을 부르짖고, 그 편파적 주장으로 믿는 자, 안 믿는 자 구분하는 병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이 사회에서 정의나
공의가 될 수 있을까?
- 합리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다음
세대에 현재의 바른 지식과 상식을 전해줄 의무가 있는 현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발전하는 과학과 교육에, 저들의 가당치도 않는 논리로 방해를 놓는 것이 정의고 공의란 말인가?
- 못되어 먹은 목사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인간들인 상대에게 법적/도덕적인 피해를 입히고,
뻔뻔하게 야훼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저들만의 이기적인 주장으로,
이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들이 필히 공유해야 할 도덕과 법등 윤리성마저 말아먹는 것이 정의고 공의란 말인가?
- 아무리 사회정의와 공의를 지키며 바르게 살아도, 저를 안 믿으면 지옥에 보낸다는 이런 이기적이고 못되어 먹은 사상의 야훼가 정의고 공의로운가?
이런 행태를 보이면서, 정의라 주장하는 것이 바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일개 종교의 억지들이고,
이런 야훼를 ‘정의롭다 공의의 신이다.’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볼 때 마다,
야훼는 문제가 많은 억지를 정의로 잘못 세뇌시킨 환자들을 양성하고,
도리어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해치는 사회 부적응자들을 생성해 내는,
악의 축임을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