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글로 뭔가를 쓰는게 귀찮아서 댓글만 썼더니 불교 알기를 간장 종지만큼의 주워들은 지식으로 비판하려는 중생이 있어서 좀 길게 써보려합니다. 이미 업식이 그러하니 이 글에도 붙어서 장문으로 주절댈껄 알지만 더 이상의 답은 없을테니, 자기 무식한거 알면 다행이고 모르면 그냥 그렇게 사는것 뿐이지요.
불교의 궁극적 가르침이 행복이라고했더니 고작 그게 뭐냐고 비웃네요? 행복이 뭔지나 알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마다 끙끙대며 장문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글을 끄적댈 때, 행복했을까요? 사념과 아집으로 분노에 휩싸여 글 쓰는 것이 행복하다 여긴다면 평생 그리 살면되겠지만 말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행복, 더 정확히는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말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죽어서 하느님 곁에가서 뭘 얻죠? 예, 행복입니다. 힌두교가 명상으로 아트만을 갈고닦아 브라흐만과 합일되면 뭘 얻죠? 네, 행복입니다. 이슬람은요? 똑 같습니다. 절대적인 존재를 읻음으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자는게 종교입니다. 어려울거 없죠.
그런데, 불교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행복을 말하지 않아요. 대뜸 괴로움을 말합니다. 불교의 진리가 있어요.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형성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소멸에 이르는 도닦음이다 ...이렇게 네가집니다. 팔만사천경의 그 어마어마한 글들이 모두 저걸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괴로움이 소멸되면 뭐가 될까요? 네, 바로 궁극적 행복입니다. 지복이라고도 하죠. 참, 내가 사용하는 말과 내용은 모두 경전에 있는 말이니 의심되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불교는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중 유일하게 괴로움으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자, 더 살펴보죠.
괴로움이 뭔가요? 좋은 사람과는 이별하고, 미운 놈은 만나야하고, 육체도 아프고 등등 정신,육체의 모든 괴로움을 오취온고라고 통칭합니다.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럼 '나'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냐에대해 궁금하겠지요? 부처님이 보니까 나라 할것이 없더라시더군요. 왜 없다고하시는지 함 봅시다.
나라고 여기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몸? 마음? 네, 맞습니다. 몸과 마음을 우리는 나라고 여기며삽니다. 그걸 다섯 무더기로 분해해서 살펴봅니다. 색수상행식 다섯가집니다. 그걸 알아보는 과정은 궁금하시면 각자 공부해보세요.ㅎㅎ 어쨋든 그 무더기들은 모두 변하지않는 그 무엇이랏날 실재가 없는 것으로 결론납니다. 불교를 깔려면 실재가 있다는 반증을 하면됩니다. 그러면 불교는 사라집니다.
색불이공...어쩌구 하는 반야심경의 구절입니다. 정확히는 색불이공...수불이공..상불이공...행불이공...식불이공... 을 줄여서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상이나 행, 식같은건 마음으로 형체가 없으니 공이라는 것과 매칭하기도 쉽지요. 그런데, 색은 물질이잖아요? 물질이 공이라니 말도 안되잖아요? 그렇습니다. 물질이 무 일리가 없지요. 물질 세게는 사대를 비롯한 구경법과 그 이외의 물질들로 파생된 것들이니 없을리가 없지요. 그렇게 말해줘도 이미 지 마음 속에 물질이 없다니 구라다라는 망상을 일으켜놓고선 비난을 해댑니다. 무식이 넘치는거죠.
공은 말입니다, 없음이 아닙니다. 궁극적 실재라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매순간 생겨나고 머물렀다가 소멸되는 변화로 '무상'함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항상함이 없어서 무상하니, 공하고, 궁극적실재라할 '아'가 없어서 무아입니다. 공은 없는거 아닙니다! 없는거란 생각은 니 깜냥일 뿐이고 알음알이일 뿐이니 니꺼 니만 고이 간직하지 바깥으로 내놓지 마세요.
자, 그렇게 이차저차해서 괴로움이 소멸된 도를 얻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깨달음이 없기에 그 성스러운 마음을 본 적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경전의 말씀대로 말합니다. 금강경은 얼핏 보면 모순투성입니다. 이래서 중생인데, 실제로 중생이라할 것이 없어서 그 이름을 중생이라한다...이런 식입니다. 정신 이상자 만들기 딱 좋습니다. 가장 난해한 경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깨달은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랍니다. 수보리 존자가 그러하옵니다하고 동조를 하시지요. 설명을 굳이 하자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버리라는 구절을 힌트삼아 사유해보시면됩니다. 證悟하시면 저한테도 좀 나눠 주십시오. ㅎㅎ
초전법륜에서 괴로움을 떠나고 즐거움도 떠나라는 말로 중도를 설명하시지요. 그 중도는 바로 팔정도입니다. 경전에 나오니 태클 걸지 마세요. 그 중도는 그래서 가운데가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 중생이 지가 아는 중도를 끌어와 불교의 중도를 찝적대네요.ㅎㅎ 참 나..
불교의 중도는 양극단의 중간이 아니라 양극단을 떠난데 있습니다. 그래서 있느냐? 아니다, 없느냐? 아니다라고 말해줬는데도 알아들을 턱이 없겠지요. 중이니 중간이어야하니까요. 사념에 사로잡히면 약도 없습니다. 그저 깜냥대로 찧고빻지요. 중도란 말을 썼더니 원불교 믿냡니다.ㅎㅎ....초전법륜의 부처님 믿는다, 왜? ㅎㅎ
쓸려고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정도만하겠습니다. 내가 이 게시판에 존중하는 분이 딱 두분정도 계신데, 한분은 불교신자고 한분은 아닙니다. 존중하는 이유는 정확히 자신이 아는 것에대해서만 이야기하기때문입니다. 설혹 그 내용이 틀렸을지라도 그만큼 공부했으니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깔려면 그냥 냅다 믿으면되는 신자들보다 열배는 더 공부해야지요.
제가 타종교에대해 언급을 안하는 이유도 전에 어떤 댓글에서 말했지만 첫번째 이유가 잘 모르기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타종교의 교리에대해 무식함을 잘 압니다. 그래서 언급 자체를 안합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들이대다간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밖에 더 듣겠습니까?
모르면....그냥 정중히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