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보면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 을 만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도 안통한다' 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성적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는 경우가 자주 목격됩니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대응은 '단절' 입니다.
'아~ 안믿어요~', '그만해요~' 등의 형태로 단절을 표현하죠
그러나 만약 그들이 내 가족이라면..
혹은 멀리할 수 없는 관계의 사람들이라면..
'단절'은 미봉책이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단절' 은 원치 않았던 불행한 결과의 '씨앗'이 되기 쉽습니다
이 해결이 쉬울리는 없지만 그래도 해결되면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좋은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기에 노력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2. 그들은 누구이며 왜 말이 안통할까?
이걸 해결하는건 쉬운일이 아니기에 이문제를 어떻게 접근할지
범위를 특정하는게 문제에 집중하기 유리합니다
보통 종교인들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성적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경우가 자주 목격됩니다.
무신론자라해서 예외는 아닙니다만 범위를 정하려는 겁니다
종교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들이 있겠지만,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제 나름대로 이렇게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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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론자 - '닥치고 믿어, 성경은 진리다'라는 식의 맹신적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
이신론자 - '신이 저 당시에 왜 그런 말을 남겼나'라는 식의 이성으로 신의 진의를 찾으려는 사람들
무신론자 - '알수 없는 존재를 왜 아는척 하는가'라는 식의 신의 무가치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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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는 모든 태도를 취하는게 가능해서 논외로 합니다
이들 중 무신론자와 이신론자는 서로 이성적인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맹신론자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뿐
이성의 방식은 사용하지 않음으로 이성적 소통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중에 대표적인 계층이 맹신론자들이고,
한국의 '개신교도' 들이 그런 모습을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보여줍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이성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 을 평생 함께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불안을 해소해 줄것으로 기대되는 뭔가에
의지하고 싶은 '의지거리'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걸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기대되는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것은 '믿음' 일수도 있고 어떤 태도나 사람 등
다양한 형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정궤도 이상의 지식이나 교육, 사유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이 '의지거리'를 찾는데 사유를 필요로하지 않는 종교가 있다면
그보다 편리한게 현실적으로 있을까요?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뭔가 믿으면 그보다 편한게 없을겁니다
믿음은 판단을 위탁하는 역할을 하기에 내가 뭘 골치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신 믿음의 시간과 정도가 커질수록 판단력을 키우는 이성은 성장하기 어려워집니다
되리어 퇴화될 가능성까지 갖게 됩니다
특히 개신교의 방식을 살펴보면
이성의 주체, 판단의 주체가 본인이 아니라 '신'이거나 '신의 대리자'임을 부각시킵니다
여기에 완전하게 현실을 무시하고 '신의 노예'가 되지 못하는
신도들은 자신을 '신실하지 못한 부족함'으로 여기는 경우도 발견하기 쉽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만끽할 수 있다고 보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나 이성적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중
맹신적 개신교도로 논의의 범위를 특정하는게 적합하다고 봅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 안통하는 대상으로선 더할 나위 없다고 봅니다
3. 어떻게 해야 말이 통할까?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도들에게 판단의 주체로서
이성적 이치로 타당한 합의를 시도하지만,
적지 않은 개신교도들은 흥분하며 거부하거나
본인의 흥분을 인내하며 회피하는 반응을 보여줍니다
남들에게 교리를 전도할 정도면 이미 오랜시간 그곳에 몸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들의 맹신과 감정이 융합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결국 본인의 의지거리이고 지켜야할 대상이기에
타인에 의해 맹신이 부정되는건 그들의 분노나 슬픔만 야기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간은 감정에 빠지면 반대의 이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시도했던 이성적 이치로 합의가
감정적 대응만 끌어내기 적합해져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들과 단절되는 지점을 이루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성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단절'이 아닌
이성적 해결책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에 대한 제 단서는
감정에 빠진 사람이 이성적 이치를 무시하듯,
감정에 빠진 사람은 맹신적 이치도 무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맹신적 이치를 무시할수 있는 심리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심리학을 포함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학문을 도입해서라도
맹신적 이치를 무시할 수 있는 심리 설계의 확보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