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의 색에서 한번 출발해 보겠습니다.
오온의 색수상핵식 중에 몸과 관련된 것이 색이고 마음에 관련된 것이 수상행식이라고 알게 됬네요.
그 중 색이란 몸이니, 물질계를 대표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시 사대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부처님이 설하신 듯합니다. 지수화풍이 사대라더군요. 지:경도(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정도), 수:형태를 유지하는 구속력(중력이나 자기력 등), 화:온도(덥거나 차가운 정도), 풍:운동성?(관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을 듯) 정도로 정리해 봅니다. 그리스의 물질 분석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나는 봅니다. 이 대목에서 붓다에 대한 경외감을 개인적으로 크게 느끼게 되었지요. 물질계에 물리적인 모든 것들을 담아서 가르치시려 했었던 듯하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부처님같은 완벽주의자를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해 봅니다. 통제할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란 거죠. 그래서 '나'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아란다....
인도 힌두교의 아트만이란 실체가 없음을 말씀하셨던 걸로 생각합니다.
무아란 개념에 몸을 맡기며 살다 보면 긍정적인 경우도 좀 있었습니다. 특히 성냄에 대해서는 내가 발딛고 사는 현실에서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극한의 분노에 휩싸일 경우(흔히 눈이 뒤집히는..)에 전생의 과업들로 떡칠이 된 쓰레기 더미(오'온'이겠지요)에서 온갖 잡된 냄새를 풍기며 결코 달라지지 않는 징그러운 나의 본질을 끊임없이 반복해가면서 사는 것을 인지하느냐 뭇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애매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으면서 짐짓 나 자신은 이미 그 단계는 벗어났다고 과신과 착각과 위안 사이에서 또 다른 혼돈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도 하고...하면서 의사 결정에 사심을 녹여 버리게 되더군요...후회와 책임회피로 피곤해지지 않으면서 분노를 한발 뒤로 물러선 상태에서 바라보면서 주위 사람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전 보단 한결 나은 의사 결정이 가능해 졌다는 점입니다. 내 근기가 이 수준이라 분노에 대한 이런 새로운 경험은 조금 많이 놀라왔던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무아'의 생활형 실제가 아닐지...
음..햐햐 아님 말고요...
담번엔 가생이 눈팅족이 될 수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