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도통(道通)은 크게 이통(理通), 심통(心通), 신통(神通)으로 나눌 수 있다.
이통(理通)의 대표적 인물이 공자(孔子)이고,
심통(心通)의 대표적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그리고, 신통(神通)의 대표적인 세계가 선(仙)의 세계이다.
유교(儒敎)의 진리는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궁리진성(窮理盡性)이 대표적이다.
불교(佛敎)의 진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우주와 만물의 이치(理致)에 통달하여 이통(理通)을 하면, 마음의 세계가 투명하게 훤히 열리는 심통心通) 경계가 열린다. 그것을 선지후각(先知後覺)이라고 한다.
이통(理通)과 심통(心通)의 경계를 넘어서면, 신(神)의 세계에 넘나드는 신통(神通)이 열린다.
유교(儒敎)는 명덕(明德) 즉 밝은 덕德을 갖추는 게 목적이다.
사물의 이치를 알아야 사리분별事理分別이 생기고 덕(德)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뭘 알아야 덕(德)을 펼 수가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은 덕(德)을 펴기 위해서이다.
불교(佛敎)는 관음觀音 즉 만유생명의 조화(造化)소리를 보고 듣는 것이다.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하여 만유생명의 조화소리를 보고 듣는 것이다.
선교(仙敎)는 팔음팔양八陰八陽, 즉 팔방(八方)의 천지天地 변화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조화 세계가 율려(律呂)이며, 율려는 음양陰陽의 동정動靜 상태가 율동(律動)과 여정(呂靜)으로 나타난 것이다. 율려는 우주의 무궁한 조화가 일어나는 바탕자리이다.
수행(修行)의 목적은 건강을 되찾고 자기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도를 통해서 제대로 보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거짓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수행을 해서 도道를 통通하면, 사물 속의 정수(精髓)와 그 사물의 마음까지 읽고, 모든 일들의 진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도통(道通)을 “총명도통(聰明道通)”이라고 한다.
귀 밝을 총(聰), 눈 밝을 명(明)이다. 귀로는 소리없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대광명(大光明)을 보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 살다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버리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 본래의 생명(命)은 영원하다. 그 불멸의 생명력이 내 몸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게 수행이다.
불교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명(命)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생명을 말한다. 명命은 목숨이요, 생명이요, 천명天命이며, 궁극으로는 조물주의 생명(命)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유교의 목적도 성(性)과 명(命)을 닦는 것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우리 본래 마음. 본성(性)이다.
내 마음의 본성(性)은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행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수기(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수기(水氣)가 순환(循環)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水氣가 올라오면서 기혈(氣血)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그리고 무형인 정신은 ‘망형망재(忘形忘在)’가 된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명(光明)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경계까지 들어간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간혹 수행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喎斜) 같은 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조상에서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해서 보복하려는 그런 크고 작은 척신(隻神)들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수 년 전, 1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한 5일쯤 돼서 초통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닫아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그런데 박선경이 수도가 어느정도 되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