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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8 02:23
보조국사 지눌 수심결(3)
 글쓴이 : 시골가생
조회 : 387  

마찬가지로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허공과 같지 허공은 아닙니다. 허공은 못 알아차리니까요. 여러분, 공간이 알아차릴 수는 없죠.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다 그러면 어떤 공간 같은 것으로, 진공상태 같은 게 아닐까 라고 상상은 하실 수 있지만, 그 상상 자체가 방편으로 도움은 되지만, 진짜 진공은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허공과 같다는 말에도 속으시면 안 되는 게, 허공과 같다는 말만 상상하시고, 여러분 마음 안에서 텅빈 허공을 찾으시면 안 돼요.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가 그냥 허공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알아차리는 자리는 육근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렸죠. 육근의 작용을 알아차리는 자가 참나니까, 육근하고 또 아주 떨어진 것도 아니에요. 실제로는. 보고 듣고 기쁘고 슬프고 하는 그 육근의 작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데, 뭐가 있어서 내가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지? 그러면 또 분리가 됩니다만, 작동할 때는 함께 작동하니까 우리가 “꼭 육신에 도가 있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육근 자체가 도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리되지도 않지만, 또 섞이지도 않는. 뭔가가 있다. 요것을 잘 찾아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허공과 같다라고 할 때는 육근에서 좀 떠나라고 하는 얘기지, 진짜 허공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단절되는 법도 없고 변화되는 법도 없다. 자, 왜 그러냐? 큰 하나의 대세계에서 쪼개진 소의 세계가 나옵니다. 큰 나에서 작은 나가 나옵니다. 법신불에서 천지만물, 천지 만물은 다 쪼개져 있죠. 

지금 여러분이 눈뜨고 보시면 보이는 모두가 소의 세계입니다. 형형색색 다 찢어져 있죠. 각각의 작용을 다 각자대로 하고 있죠. 펜은 펜대로 일하고 있고, 나무는 나무대로, 의자는 의자대로 다 일하고 있죠.

각자 따로 노는데, 그럼 각자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따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이게 다 각자 자성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만법에 자성이 없다. 이 말은요, 전체가 알아차리는 나의 작용이다 라고 이해해 버리시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갑자기.

소의 세계가 대로부터 나왔구나. 하는 것을 지금 바로 실감하셔야 되요. 지금 눈뜨고 보이시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기만 하시고 끌려가지 않으시면서. 적당히 몰라 해 주면서, 아주 몰라 하면 시공을 초월해 버리니까, 이 대상을 알아차리면서도 모르겠다. 하고 판단중지만 하시고 알아 치리시다 보면, “요놈과 이게 다 내 마음이고, 요놈과 내 알아차리는 나가 둘이 아니게 굴러가면서 이렇게 펼쳐지고 있구나.”하는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은 명상만 중요한 게 아니구요, 현상계랑 만나면서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도 대게 중요합니다. 적절한 판단 중지 속에서 분멸한 하지 말구요, 이게 뭐다. 이게 뭐다. 하지 말고 보이고 들리는 거, 육근 작용을 열어놓고, 육근 작용을 굴러가게 해 놓고, 육근 작용을 알아차리고 계시다보면요, 알아차리면 분리가 일어납니다.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도 함께 돌아가요. 자, 내가 괴롭다. 감정이죠. 괴롭다. 괴롭다. 강의 듣다보니 힘들다. 힘들다 하시는데, 내가 힘들다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으시면 힘들다는 아닌 거예요. 함께 돌아가는. 힘들다라고 하는 놈을 알아서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로 존재하시면 육근과 함께 구르면서도 육근과 분리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육근은 생멸인데 요놈은 알아차리고. 이 자리는 절대 단절되는 법도 없고 변화되는 것도 없구나.” 이것도 아실 수 있어요. 육근하고 함께 공부하는. 육근 버려 볼께요. 육근 일체를 모르겠다. 몰라를 세게 써서요, 일체를 언어명상을 다 놔버리고 눈감고 정신만 붙잡고 계시면 알아차리고만 있어요. 그때도 한번 실험해 보세요. 이 자리가 변하나? 변하는 자리인가? 끊어짐이 있는 자리인가?

사실은요, 여러분, 알아차리고만 계시면요, 육근작용을 모른다하고 알아차리고만 계시면 여러분 나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 영원한 자리라서 항상 그 자리이기 때문에 여러분 10대 때도 그 자리였고, 지금도 그 자리에요.

그러니까 눈 감고 ‘모른다’ 하고 
공적영지만 느끼고 계시면 
사실 나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눈떠야 나이가 보여요. 
눈떠야 내가 늙었네. 나이가 들었네. 남자였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거기는 알 수가 없어요. 공적영지인 상태에서는 남녀도, 어떤 대상도, 어떤 형상도 있을 수가 없어요. 알아차리고만 있어요. 그러니까 허공과 같다고 하는 겁니다. 육근의 전혀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실험을 통해서 참나는 변치 않는 물건이구나. 죽는 물건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 내냐 하면요, 육근의 속성은 변화하는 자리이고, 태어나서 죽는 자리인데, 육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시고 나면,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차원은 생멸의 차원하고 다른 차원이구나.” 라고 아시면, 단절되는 법도 없고, 변화되는 법도 없다. 이 얘기는 생멸이 없구나하는 것을 아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영적 실험을 통해서 알아내실 수밖에 없어요. 이것을 남의 말 듣고 믿으신 것은 사상누각이라, 누가 강력하게 아니라고 하면 흔들려요. “그런가?” 또 저쪽 가서 “그렇다” 그러면 “그런가?” 당신은 원래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불생불멸합니다. 그러면 “내가 안 죽는다고? 좋네.” 하고 있다가, 집에 가면 “썩어죽을 몸 가지고 뭐 그래?” 그러면 “그런가?” 이게 일반적입니다. 그때 그때 기분 따라 변하시는데, 견성을 딱 하시면요, 안 흔들려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육근 작용의 마음을 말하는 거고 
변치 않는 자리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지금 내 안에서 난 알아차리고 있다. 
알아차리고 있는 이 자리는 안 변해. 
요거 자각하시면 돈오입니다. 
돈오의 체험이 오신 거예요. 

딱, 그 실감나는 펙트, 체험과 정확한 개념이해, 
이 두 개가 합쳐지면 돈오에요.

돈오는 정혜가 함께 갑니다. 정혜쌍수라고 하는 게 선정만으로는 돈오 못해요. 선정과 정확한 이해가 합쳐지면 돈오고 깨달았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 그때 깨달음의 내용은 이겁니다. 일체가 유심이네.

선정을 통해서 참나 상태에 들어가서 현상계를 바라보시면 지혜가 나옵니다. “오, 다 참나 작용이네. 육근이 나랑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함께 있으면서 물들지 않는 그런 관계였네. 참나의 나툼이면서 또 참나랑은 다르네. 그런데도 참나에서 나왔네. 이게 정확하게 보이셔야 되요. 두 개가 속성이 다르면서. 

“유와 무가 다르면서도 함께 굴러가네.” 딱 보이셔야 되요. 그러면 뭐가 될까요? 함께 굴러간다는, 이 전체가 실상인 거예요. 법신불의 본체만 실성이 아니구요, 전체가 우주의 진리인 거예요. 불생불멸하면서 한편으로는 생장수장을 거치는 게 진리라는 거예요. 

“아, 진리는 불생불멸하구나. 그러면서 끝없이 우주를 낳고, 부수고 하는구나.” 전체가 진리구나하고 큰 진리, 그래서 법계라고 하는 겁니다. 큰 진리를 내 마음에서, “내 마음이 하나의 진리의 세계였구나.” 하는 것을 그대로 아시는 거예요.

“중생의 탐진치 뿐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내 안에 이런 게 있었구나.”하는 것을 깨달으시면 돈오, 확실히 하시는 겁니다. 이 법대로 사시면 성불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진리를 정확히 아십니다. 견성을 하면. 

그래서 단절되는 법도 없고 변화되는 법도 없다. 이 참마음은. 이것을 깨달으시면 돈오구요. 그래서 이르기를 예전어른들이 뭐라고 했냐? 사람이 죽어 온갖 뼈마디가 모두 무너지고 흩어지면, 죽어서 뼈도 다 부서지죠. 그럼 어디로 돌아갑니까? 열기는 불로 돌아가고, 여러분 몸 안에 있는 지수화풍의 요소들이 각자 자기 자리 찾아간다는 거예요.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여러분 안에 있는 바람의 요소는 바람으로 돌아가고, 불의 요소는 불로 돌아가고, 물의 요소는 액체가 되어서 물로 돌아가더라. 그런데 지수화풍이 다 자연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 물건이 있는데, 이 참마음만은 영원히 신령스러워서, 여긴 차원이 다르니까, 생겨난 적이 없기 때문에 소멸된 적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는 영원히 알아차리고만 있는 자리에요. 현상계 안에서 안 보여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상계가 다 그 자리로 인해서 굴러가고 있어요. 그 자리에서 나온 진리대로 굴러가고 있어요. 이게 신비입니다. 법신불이 이래라 저래라 안하는데, 우주는 법신불을 북극성으로 해서 돌고 있어요. 예전 어른들이 북극성을 가지고 많이 설명한 이유가, 북극성 본체는 안 움직이죠. 그런데 옆에 있는 별들이 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죠.

법신불이 뭘 하는 거 같지가 않아요. 현상계에서 볼 때는. 현상계에서 볼 때 얘깁니다. 안 보여요 작용이. 그런데 천지만물이 다 법신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지금 여러분도 생각감정오감으로만 살아가는 것 같아요. 
참나는 안 보여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알아차리는 나로 인해서 
생각감정오감이 존재했던 거예요.

그리고 생각감정오감이 일어나고 사라지면 
어떤 생각은 선한 생각이고, 어떤 생각은 악한 생각이 되어서 
인과응보가 정확히 펼쳐지는지 
모두 이 알아차리는 참나에 의해서 집행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모르고 살았던 거죠. 
요런 정도의 지금 깨달음이 확고하게 나타나야 돈오라고 합니다.

첫 체험이라 하더라도, 잠깐의 체험이라 하더라도 이런 진리가 통으로 옵니다. 그리고 이게 안착이 되면 그 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요, 이런 진리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요. 기억해서 품는 게 아니라. 자, 여러분 제가 중력의 법칙을 기억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이런데 가서 서면 안 되는데. 기억 못하면 서겠죠. 벼랑에 서 있겠죠. 벼랑에서 한번 다리도 내밀어 보겠죠. 

“이게 떨어진다고 했던가? 내가 교과서에서 배워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중력이 있다고 했던가? 없다고 했던가?” 하면서 발 내밀어봅니다. 떨어지면 죽죠. 그런데 우리 그런 얘기는 한번 들으면 몸에 딱 각인이 되요. 아마 술 드셔도 근처 가다가 벼랑에서는 조심해서 걸어가실 겁니다. 휘청휘청 하다가. 예전 TV보니까 개그내용인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막 술 취해서 소리 지르고 가다가 깡패 앞에서는 조심해서 갑니다. 또 지가가면 막 소리 질러요. 알아요. 본능적으로. “이걸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죠. 

자, 우리가 이런 일체유심조의 도리, 만법이 내 참나의 작용이라는 도리를요, 늘 기억해서 아시고 있는 단계는 인간적인 지혜이지, 자성의 지혜는 아닙니다.

견성을 하시고 나면요, 본능적으로 알게 되요. 그 얘기를. 직관으로.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선정이 짧으니까 고 지혜도 금방 날아가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딱 들어앉았다는 것은 

견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건요, 
늘 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뭔 일이 생기면 금방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지 하고, 처리해 버립니다.
자동으로 탁 튀어나와요. 상황이 되면 튀어나와요. 

여러분이 벼랑가에 가까이 갈수록 경고가 오죠. “떨어진다. 떨어진다.” 경고가 오듯이, 여러분이 뭔가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해도 경고가 옵니다. 내면에서. 이미 알아 버렸기 때문에. 

지금 법공, 법공, 만법이 공하다가 이게 불교에서는 법공사상이라고 그래요. 만법이 공함. 만법은 참나의 작용. “너무 집착하고 있음. 너무 집착하고 있음.” 이게 벼랑에 가까이 가는 것처럼 신호가 와요. 조심하라고. “삼학으로 해결할 것. 삼학으로 해결 할 것.” 이게 옵니다. 견성을 해 놓으면 성불이 보인다는 게 견성이 성불은 아니지만, 견성을 해 놓으면 어떻게 하면 부처되는지 자기가 알아요.

“내면에서 오는 명령만 따르고 살면 부처되겠구나.” 공부가 수월해지죠. 그러면 그때부터는 성불이 보이는 거죠. 견성을 해야 성불이 보입니다, 그래서. 견성 전에는 열심히 공은 들이는데 소통이 안 되니까, 자기 안에서, 자기가 기억해야만 알지 잠깐 정신 놓으면 경계에 끌려가고 있는 거죠. 내면에서 법신불이 여러분을 인도해주는 힘이 약하다. 내공부가 약해서 그렇게 된 거죠. 

법신불이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은혜를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은혜는 넘치게 주는데, 우리 그릇이 작아서 못 받아먹는 겁니다. 그런데 견성을 하면 그릇이 커지는 거예요. 평소에 못 받아먹던 것까지 받아먹게 되요. 소화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소식이 내 얘기가 되요. 이게 지금 남 얘기죠. 글로 배울 때는 남 얘긴데, 이게 본인 얘기이신 분들도 여기 계실 거예요. “그렇지.”하게 됩니다. “저렇지” 

한 마음은 영원히 신령스러워서, 이 자리는 차원이 다르지. 생멸의 세계가 아니라 대의 세계, 위대한 진리의 세계거든. 이렇게 여러분이 이해하시게 됩니다, 스스로. 이 얘기까지 이해하시면. 예전 어른들 말씀을 참으로 좋은데 이런 얘기를 꼭 해요. 

하늘을 돕고 땅을 덮는다. 그 자리가. 여기서 또 따라가기 힘들거든요. 천지를 그 자리가 덮는다. 그러면요, “아, 저건 또 뭔 소리야?” 뭔 얘기일까요? 아까 제가 다 얘기 드렸는데. 천지를 여러분이 만드셨다는 거 아시겠어요? 지금? 여러분 눈에 보이는 천지는 여러분 참나의 작용입니다. 그 얘기를 해 놓은 거예요. 엄청 친절하신 거예요. 

여기까지만 이해해서는 안 돼. 그 자리가 참 신령스러워. 그러면 뭐라고 할까요? “아, 그 자리 들어가서 영원히 살아야지. 열반에 들어야지.” 그럴까봐 거기서 우주가 나왔지. 이 얘기를 꼭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도 기어 나와. 열반에 들어앉아 있지 말고 기어 나와. 천지를 나투는 자리를 얻었는데 왜 천지를 두려워하죠? 숲에 가서 숨어 있죠? 좀 이상하지 않아요? 천지가 나로부터 나왔느니라 하는 분이 왜 숲에 가서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자.”하고 있을까요? 말이 안 되죠. 

지금 밖에 나가서 하늘을 한번 보시구요, 저 하늘도 알아차리는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그래야 이 한 물건이 천지를 덮는 자리구나. 하는 것을 아실 수 있어요. 요 글로 읽은 내용이 여러분 마음에서 그대로 실감나게 구현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요 그림을 꼭 기억해 두시면 여러분이 마음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과거와 현재, 저 자리에는 단절이 없고 끊어짐이 없다는 것을 좀 보여드리려고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변하죠. 자, 마음과 몸을 뭐라고 합니까? 육근이요. 육근.

몸뚱이가 하는 오감의 작용과, 마음이 하는 생각감정, 저는 생각감정오감 육근을 이렇게 부릅니다. 제식으로. 생각감정오감 그러면 우주의 3차원, 생각의 차원, 감정의 차원, 오감의 차원을 설명하기도 좋고, 생각감정은 의근이고, 오감은 육근 중에 오근에 해당되니까, 합치면 육근이 되죠. 

자, 육근은 변합니다. 몸과 마음은 변해요. 그런데 마음 중에 안변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게 참마음이죠. 참마음. 그래서 그 참마음이 납니다, 사실은. 

여러분,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공적영지에요. 

우리가 어제랑 나랑을 비교할 때 보세요. 과거와 현재, 어제와 나를 비교해 볼게요. 어제의 몸과 마음, 오늘이 몸과 마음, 다르죠. 어제의 육근 작용과 오늘의 육근작용은 다르죠. 1시간 전의 육근 작용과 지금의 육근 작용은 다르죠. 계속해서 오감 작용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잖아요. 변하면서. 생각감정도 계속 변하고 계시잖아요. 무상합니다. 

그런데 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다고 생각하실까요? 
다 바뀌고 있는데. 실제 우리 세포도 바뀌고 있는데. 

생각도 바뀌고, 세포도 바뀌고, 오감도 바뀌고 다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어제의 나를 당당히 나라고 생각합니다.

왜? 저게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라는 존재감, 공적영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지만물이 나의 작용이다. 이 말까지는 몰라도요,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육근의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나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 거예요.

이것을 에고나 작은 나의 그런 개념으로 생각하시고 비방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나’라는 존재 그것도 에고 아니야? 에고 아닙니다. 여러분 알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법신불이 시공과 육근을 나투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육근이 바뀌어도 내 존재가 바뀌었다고 생각 안하시는 거예요.

뿌리는 하나라고 생각하시니까 옷만 바뀌었지, 내 몸이 통일하면 옷을 바꿔 입어도 같은 사람이죠. 마찬가지로 육근은 계속 바뀌는데 “나는 나야.” 라는 게 있습니다. 저게 대게 중요한 힌트에요. 

변치 않는 나 
텅 빈 알아차림 
‘나’라는 존재감. 

요 단어들을 여러분이 실감나게 느껴보시면 
일생을 통해 불변하는 참나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심결은 계속해서 여러분을 견성으로 유도할 겁니다. 어디까지 버티시나 보겠습니다. 지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계속해서 여러분의 참나를 직시하게 도와줄 겁니다. 이 수심결 강의 전체가. 이 강의만 들으셔도 계속해서 ‘이 뭐꼬’ 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은. ‘난 누구지? 난 누구지?’ 관심이 다른 데로 못 나가게, 계속해서 이 경의 말씀들을 여러분 번뇌 망상을 치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라고 계속 주문할 거예요.

정리하고 갈까요? 수심결 진도 나가기 전에 정리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참나와 에고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가운데가 참나, 바깥의 원이 에고입니다. 참나는 불변하는 자리, 에고는 만변하는 자리.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는데, 요 참나와 에고를 정확히 이해 못하면 견성했다고 못해요. 

견성은 참나를 알았다는 거거든요. 에고는 여러분이 알고 사는 여러분의 현재의 의식입니다. 에고도 나죠. 참나도 나에요. 에고를 ‘가짜 나’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가짜 나’라고는 안 부릅니다. 참나의 작용으로서의 나죠. 법신불의 은혜로 이루어진 나를 ‘가짜 나’라고 하면 그렇잖아요. 나는 나인데, ‘덜 참나’죠. 덜 참나. 

그래서 ‘참나’와 ‘덜 참나’로 구분하시는 게 좋다. 이것을 ‘거짓 나’라고 표현하다보면 참 거짓, 이름은 편안한데, 거짓은 부정해야 되요. 그럼 에고를 부정해야 되면 ‘거짓 나’라고 해버리면 우리는 소승을 지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언어 하나도 신경 써서 쓰시면 좋겠다. 참나와 에고. 어떤 분이 왜 참나니, 에고니, 이거 우리 말 아닌 거 같은데 에고라는 말 쓰세요? 하면 사실 둘 다 나에요. 우리말로. 나 나. 나. 그냥 나입니다. 큰 나, 작은 나 이래도 되고 나에요. 그냥 나라서 구분해주려고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만 방편이구요, 

에고는요, 조건에 제약된 나구요. 시공간 안에. 자, 뭐가 에고냐? 여러분 태어난 적 있으시죠. 그럼 그 에고가 말하는 겁니다. 에고는 태어난 적이 있어요. 소멸된 시간도 올 거구요, 그 안에서 에고는 아와 비아의 투쟁, 나와 남의 끝없는 투쟁 속에 살아갑니다. 나와 타자들이 있어요. 나 아닌 존재. 그럼 그 나는 제약된 나에요. 

참나는요, 반대겠죠. 시공을 넘어서 있구요, 나와 남의 구분도 넘어서 있어요. 그냥 나에요. 시공을 초월한 나에요. 그래서 한번 구별해 볼게요. 

에고는 참나의 시공내의 나툼이다. 그런데 법신불은 왜 이런 중생심을 만드셨을까요? 법신불의 왜 은덕으로 이 중생심이 펼쳐졌을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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