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목적도 성(性)과 명(命)을 닦는 것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우리 본래 마음. 본성(性)이다.
내 마음의 본성(性)은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인 해석을 한 인물이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李嵒,1297∼1364)선생이다.
그는『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신(神)의 3가지 본성이 바로 조화신(造化神),교화신(敎化神),치화신(治化神),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라고 했다.
즉 신神은 창조적 손길로 만물을 끊임없이 지어내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낳아놓고 가르치는 교화신(敎化神),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치화신(治化神)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조화지신(造化之神)은 강위아성(降爲我性)하고,
교화지신(敎化之神)은 어머니의 이 지구의 신성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명(命)이 됐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선사상仙思想이라는 것은 바로 성명정(性命精)에서 이 지구의 어머니의 신성을 근본으로 해서 선도仙道가 나왔다.
그다음에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은 바로 우리 몸에 들어와서 정(精)이 됐다.
이것을 성명정(性命精).
하늘의 조화신(性),
땅의 교화신(命),
사람의 치화신(精). 사람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있는 3가지의 참된 것.
이것을 하나님의 마음(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동력원 정기(精)를 서양 사람들은 essence로 번역하는데 우리가 의학으로 보면 신장(腎腸)의 정수(精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장(腎腸)의 정수를 축적해서 그걸 굳히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수도공부의 핵심인데,
지금은 남녀가 정(精)을 성을 즐기는데 쓰고 그러니까. 대부분 소멸당하는 것이다.
천지일월이 나를 만들어주고,
나에게 생명을 내주는 그 모든 열매가 정(精)이다.
정기를 잘 간직해야 여기서 힘도 나오고, 생명력도, 지혜도 나온다.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정(精)이다. 그런데 지금의 음란문화는 인간의 정(精)을 파괴하고 분열시킨다.
수행의 근본은 정(精)을 굳히고 맑히는 가의 문제로 떨어진다.
정(精)을 순화해야만 공부가 된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