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님이 무시하는 음양오행은 한의학의 기초가 되어 수천년간 병도 고치고, 주역으로 길흉화복을 점쳐보기도 하지만,
너님이 신봉하는 불교는 병든 사람을 고치기를 하니? 길흉화복을 판단할수가 있니?
백해무익하지......600년전에 정도전 선생이 한 말임...
맨날 삼라만상이 空하네 무상하네, 내세에 왕후장상으로 태어나자는 허황된 교리만 찾는 것들이 더 한심하지.....허공에 발딛고 사는 새끼들이라 현실세계에서는 아무 도움이 안됨.....밥만 축내는 밥버러지들이지..윤회와 내세 강조하는 종교 중에 제대로된 종교 있는 줄 아나......
"너님이 신봉하는 불교는 병든 사람을 고치기를 하니?"
=> 뭘 안 고치는데? 돈 내고 굿이나 하시지요! 돈 내셨지요?
미래 길흉화복을(어떤 재료, 어떤 생각의 작용) 그런 돈으로 득탬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석가모니가 백해무익 한 것은 님이 다른 사람들과의 일에서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발 디딤? 그럼 디디고 있는 불교를 보세요! 얼만큼 디디고 있는지...
불교가 사기꾼?
알지도 못하면서 잘 난 척 하지 마시고, 쪼매 정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그걸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수행으로, 어떤 사람은 철학으로, 어떤 사람은 종교적으로 또는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가장 기초적인 '기'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군요. 가장 기본인 '기'를 모르는분이니 축기니 음양오행까지 갈것도 없고...
뭐, 불교경전이 중국에 유입되며 도교경전인 '도장'이 만들어지는건 사실이지만 그런 종교적인 성립이 되기 수백년전에도 이미 '기'와 '음양오행'등의 사상은 존재했죠. 그걸 인도등에서 온 불교사상과 이전의 북방의 우리민족에서 넘어간 신선사상, 중원 한족 특유의 민간신앙등이 결합되며 종교로 성립되는게 도교일뿐이지...
음양오행이야 이론이지만 기, 프라나, 단전, 차크라 같은 건 이론이 아니라
수행하다보면 저절로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실제로 있는 겁니다. 님의 수행이
부족해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님의 아이디처럼 사마타
수행을 해서 선정(사마타)의 초선 즉, 첫 번째 선정이라도 경험해봤으면
이런 의심도 아닌, 부정을 하는 글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님의 말은 마음이 없다거나 물질이 없다거나 하는 소리와 똑같은 거에요.
그냥 한심하네요. 머리에 똥만 집어넣지 말고 실제로 수행을 해보세요.
헐...식에대한 이야기가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ㅎㅎ;;
심지어 유식론으로 한 종파까지 생겼을 정도니까요.
복잡하게 말하자면 한도 없고, 게다가 나도 확실히 말할 정도의 능력도 안됩니다. 간단하게 알음알이 정도로만 이해하시면되는데...그마저도 좀 설명이 필요하네요.
우선, 불교에서 마음,즉 마노라고하는 것은 대상을 그저 아는 것일 뿐입니다. 오온 십이처 십팔계 중 의계, 즉 마노의 요소는 오문전향과 받아들이는 마음 두가지라고 정의합니다. 즉, 무언가 눈앞에 있으니 그쪽으로 향하고 과보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 할뿐 그것이 무언지 알아차리는 정도는 아니란겁니다. 눈,코,귀,입,몸 다섯 문으로 전향하고 받아들일뿐이지요.
그런데, 전향 후에 그것을 대략 무엇이라 분별하는 것들이 바로 뒤따릅니다. 그걸 식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각 문마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등이라 부릅니다. 전오식이라하지요. 그것 다음에 좀전에 말한 받아들이는 마음이 받아들이고 이어 조사하는 마음-요건 또 마노의 알음알이, 즉 의식-이 대상에대해 조사합니다. 이후 속행, 등록 등을 반복하며 대상을 뚜렷하게 인식하게된다고 말합니다.
따분하고 골치 아픕니다. ㅡ.ㅡ
어쨋든 대상에대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이다라고 분별하는 마음이 식인데, 그게 과보의 마음, 즉 이전 전생이나 현생 과거에 기반하여 이미 형성된 것들이라서 대상에대해 동일한 분별을 일으키게한다는 겁니다. 습관과 비슷하지요? 또 이미 의도로인해 형성되어진 것들이라서 업이라는 의미로 업식이라고 흔히 말하기도합니다.
즉, 생각을 자유의지로 내가 한다고 하지만,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저 물질덩어리와 정신덩어리 중에서 그저 과보로 형성된 마음에 끄달려갈 뿐인데도 마치 내가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는거라고하는거지요. 아이고 헥 헥...
쓰고나서 다시봐도 나조차 헷갈리고 이게 정확한 건지도 자신이 없네요. 암튼 크게 틀린건 없을겁니다. 생각의 습관...식과 개념이 유사하지요?ㅎ
참, 말나식이니 아뢰야식이니 하는 것은 본적이 없어서 모릅니다. 그거 알 정도의 공력은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흔히 지은대로 받는다고 말할 때 받는것이 과보에해당됩니다. 결과와 유사하지요. 인과법으로 설명하자면요.
그런데 꼭 현상적인 결과만 과보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질때 그것의 결과로 과보의 마음이 생긴다는겁니다. 최초 어떤 대상과 접촉했을 때, 우리는 그게 무언지 판단하고 그후 좋아서 갖고싶거나 싫어서 피하고픈 의도를 만들게됩니다. 행동으로 꼭 나타나야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는 갖고픈데 참아야하기에 참더라도 이미 그 대상은 갖고싶은 것이란 과보의 마음으로 저장됩니다.아마 뇌의 해마 부위에 저장되겠지요? ㅎㅎ
그 이후엔 그 대상과 만나면 그 과보의 마음이 떠오르게됩니다. 반복해서 갖고싶다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과보로 일어나는 마음은 선한 것도 불선한 것도 아닌 무기의 마음에 해당됩니다. 지자신도 어찌할 수없는 것이라고봅니다.
굳이 기억으로 최초의 사건을 알지 못해도 그 마응은 항상 일어나지요. 심지어 전생에서 업으로 형성된 과보도 이 생에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니 기억하느냐 마느냐는 거의 상관없는 셈입니다.
최초로 술이 맛있다고 여겨진 때는 기억 못해도 티비에서 술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급술 땡기는 것처럼요.ㅎㅎ
삶을 통해
막대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의 영향과
신체적,정서적,논리적 요소와 같은 것들의 영향에
휩쓸려가긴 합니다만
어떤 방향에 의해서든 선택을 하니 그토록
다양한 종의 정신세계를 갖춘 사람들이 있는 것이겠죠
그 지향을 본인이 인식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며
이조차 변질되는 순환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불러야할까요?
깊은 의미의 "내적외력" 만으로
수많은 종의 인간이 살아가는건 아닐 듯 합니다
전 자유의지와 내적외력이 둘 다 있다고 보는지라
지향적 판단력이든 목적적 판단력이든
그리고 성향적 판단력이든 미감적 판단력이든
다양한 종으로서의 판단력의 합의나 편중이
선택을.. 그리고 의지로 진행된다고 보는지라
이 선택을 결정하는 깊은 의미의 자유의지도 있어보인다고 봅니다
다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적외력에 휩쓸려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긴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없어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있어보인다는게 자유의지에 대한 제 판단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사실 무척 조심스럽고 부담스런 주젭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전 지식으로 답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ㅎ
참, 후천적이라는 말때문에 참고하시라고 한 말씀드립니다. 좀 전에 업과 과보의 마음을 말씀드렸는데 그건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기억 못하는 전생의 과보로 그런 식이 생겨났더라도 이 순간 다른 의도를 낼 수있다면 그 업과 과보는 변합니다.늘 고정된 것이라면 그것이 자아이고, 수행같은 것으로 벗어날 수없기때문입니다.
과보의 마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좋은 업과 과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불교 수행의 일부분입니다.
과거 조사들중 한분은 절터를 잡을 때 교전에 뛰어난 납자에게 맡기곤 하였습니다 여기서 교전이란 동양철학에서 언급하는 풍수 한의학 성명학 명리 그리고 천문등입니다 동앙철학의 근간은 역학입니다 필자가 비구승과 역학을 공부한적이 있는데 같은 불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물어본적이 있습니다
스님 왜 이것을 배웁니까? 라고 물으니 웃으며 말씀하시길 ᆢ
이것은 학문이기에 학문을 알고자하는건 크게 잘못된길이라고 하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참고로 한암조사께선 제자 중 한분인 탄허어게 참선과는 인연이 없으니 교전을 공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탄허선사는 간화선과는 거리가 있지민 교전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어 많은 이들은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교전이란 불경과 역학입니다
글쎄요? 왜 웃으며 답을 했을까? 제가 스님의 마음을 모르니 그 뜻을 짐작하겠습니까 마는 불경에 가르침에는 도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면 불퇴전이란 초발심이 필요한데 불퇴전이란 나가 떠난 측흔지심입니다 가깝게는 사랑하는 가족 주변에는 불쌍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발심이 시작하면 피우올랐으면 올랐지 꺼지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일례로 한 승려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왜냐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걸 마련하고 터젼을 잡이 쉬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악착 같이 금전을 모우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세간에선 땡중이라 놀리고 사이비라 놀렸습니다 허나 이 승려는 아무상관도 하지 않고 열심히 모울뿐이였습니다 이것이 곧 불퇴전입니다 이분이 숭산선사께서 가르친 수많은 푸룬 눈의 제자들 중 한분입니다 이와 깉은 뜻으로 필자는 비구승이 답을 했다고 저의 주관으로 판단합니다 ^^
마음은 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오고 감이 자유롭다
자기 관찰이 수승하다면 타인의 마음 또한 자유롭다는걸 관조하며
마음의 주인 됨을 안다면 왜 마음을 안으로 돌려라 하였는지를 깨달을 터 안에서 분노가 일어나는가? 안에서 마음의 주인이 오고감이 자유로운 마음을 쓰는가? 분노가 허망하게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