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2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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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그리다 진짜 예수 믿게 됐습네다”
北 미술인 외화벌이에 끌려갔던 실력파 탈북화가
김씨가 2000년대 중반 유럽의 한 교회 주문으로 그린 마리아 모사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그리다 예수님을 그리게 된 탈북 화가가 있다. 신앙의 자유가 박탈된 북한에서 손꼽히는 화가였으나 세계를 돌며 예수를 그렸다. 예수를 그리면 그릴수록 살아계신 예수를 깨닫게 되고 영접하게 됐다.24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탈북자 김지한(가명·50대)씨는 김 위원장을 그릴 수 있는 ‘1호 화가’였다. 북한 미술계의 거장인 김성민 홍춘웅 화백을 사사(私事)했고 평양미술대 회화학부를 졸업했다. 북한 내 권위 있는 대회인 ‘국가미술전시회’에서 수차례 수상했으니 비슷한 연령의 화가 중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할 만했다.김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을 보위부원의 감시 아래 다니며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절반 이상은 기독교 그림이었다. 돈을 내고 큰 그림을 요청하는 고객 대부분이 교회였기 때문이다.“첫 그림은 예수님 심장에서 빛이 퍼져 나오는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었지만 감동을 받았어요. 아, 이래서 하나님을 믿는구나 싶은 성스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유럽의 한 교회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그리던 때를 김씨는 또렷이 기억했다. 가로 2.5m, 세로 4.5m인 예수님 전신화였다. 샘플이 담긴 카탈로그를 들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주문을 받았다.첫 교회를 시작으로 입소문이 나자 여러 교회에서 작업 요청이 왔다. 작업비도 3.3㎡(1평)당 200달러로 꽤 저렴했다. 한 교회에서는 그림 스무 점을 한꺼번에 부탁하기도 했다. 열두 제자와 함께 있는 예수, 양을 안고 있는 예수, 성경의 주요 장면 등을 거침없이 그렸다.김씨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숙소와 작업장만 오가며 지내야 했다. 교회에서 식사로 주는 빵과 과일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개인적으로 쓰지는 못했다. 1년에 벌어들인 수십만 달러 중 생활비 2000달러를 제외하고는 북한 정권에 보내야 했다.김씨는 더 사실적인 그림을 위해 성경을 읽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 진짜 신은 성경 속에 있으며 그분은 사랑과 평등, 자유를 말씀하는데 왜 자신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지 화가 났다. 그때 교회를 찾은 이방인 성도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식이 아니었다. 보위부원의 눈을 피해 두 손 모아 기도라는 것을 드려봤다.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넓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가는 날, 그는 예수님 앞에서 속죄하며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 이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높이 7m가 넘는 대형 그림에서부터 부조 벽화, 조각까지 예수님을 그리며 예수님을 알아갔다. 그러던 지난해 탈북, 한국으로 왔다.지금도 유럽 여러 곳 미술관에서 김씨의 그림 여러 점이 순회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철저히 이름을 숨기고 산다. 그러기에 작가로서의 활동을 아직 알리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좌절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타국에 버려졌을 때도 실력으로 인정받았던 저입니다. 제 작품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습니다. 자유로운 한국에서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겨뤄 인정받겠습니다.”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39074&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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