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모양이 없어서 우주를 관통하니
눈은 보고 귀는들으며 코는 냄새를 밑으며
입은 말을 하고 손은 쥐고 펴며 발은 걷는다고 한다
본래 한개의 깨끗하고 밝은것이 18계의 경험세계를 이루므로
그 처마다 이루는 하나의 마음조차 없다면 이르는 곳마다
모든것이 해탈이다
그 뜻이 어디에 있던가?
중생은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고
옛 사람의 부질없는 인연과 경계를 숭상하기 때문이니라
부처의 견처는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를 자르며
십지보살과 천박한것을 동일하게 관조하며
아라한과 벽지불을 변소간의 똥으로 여기며
깨달음과 열반은 나귀매는 말뚝과 같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이와같은가?
그대들이 3승의 아승기겁 동안 참으로 공에 통달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장애가 있는것이다
만약 참된 도인이라면 결코 이와 같지 않아서
인연따라 오래된 업을 녹여 없애고 자재하게 옷을 입으며
가고자 하면 가고 앉고자 하면 앉을뿐
한 생각이라도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
왜 그러한가? 옛사람이 말하길
"만약 업을 지어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가 곧 생사의 씨앗
이라고 한 뜻이다
오직 하나의 마음이 있을 뿐이지
그 어떤것도 존재치 않는다
눈앞에 나타나는 그 모든경계는 한 마음이 나타내는 변화일뿐
그 어떤것도 없다
이 하나의 마음은 이름만이 있을 뿐 정해진 모양이 없으니
마음이란 이름조차 허망한 것이다
허나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 마음이며 이 고정적이지 않은곳에서
그 모든 인연법이 나오나니 마음이 허망하다고 할수 없는 것이니라
그래서 진실한 실재가 곧 마음인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파악하고 알아차리는 방법은 눈으로 보며 귀로 들으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피부의 감촉으로 판단하니 감각으로 관념과 욕망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외 같이 알아차리는 것들은 서로서로 구별되는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다른 이름이 붙어 있으니
이러한 것들 모양과 이름을 실재라고 여기고 이름과 모양을 벗어난 그 무엇을 말하면 그것을 관념적이고 허망한 것이라고 여긴다
참으로 지혜의 정견으로 관조하면 이름과 모양이야 말로
이름없고 모양없는 거의 활동이니 순간 순간 고정불변의 유동적임을 관조할것이다
즉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이름과 모양의 경계는 생멸의 반복만이
존재할뿐 생멸의 반복이 없다면 이름과 모양은 참실상이 아닌것이다
일체 삼라만상의 이름과 모양의 활동은 바로 지금 그대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고 이 활동의 이름과 모양은 고정된 이름이나 모양이라고 지을수 없으니 진실한 이름과 모양으로 구별될수가 없느니라
이름과 모양으로 구별될수없으니 활동만으로 본다면 전체가 하나로서 분리될수 없다
오직 실재하는것은 이 활동 뿐이며
이 활동만이 존재할뿐 이름과 모양은 환인것이다
이것은 물과 물결의 이치이니
물결은 오직 물의 움직임잂뿐 달리 어떤 존재도 아니니라
그러나 중생은 물을 보는것이 아닌 물결을 본다
참으로 공부를 하고 마음을 깨닫고자 한다면 이름과 모양으로
구분되는 경계가 아니라 지금 이러한 경계를 나타내는 움직임을
알아야 할것이니라
ㅡ임제선사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