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26장 36~46절
이 내용은 최후의 만찬 이후, 예수가 잡혀가기 이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간단히 요약을 하면,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제자들이 쳐자빠져 자고 있음. 예수가 세번 기도하고 나서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제자들과 일어나며 끝나는 에피소드
그런데 제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기독교에서 바이블이 쓰여진 방식을 가지고 크게 둘로 나뉘어집니다. 기계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은 사람을 도구로 써서 성령이 직접 사건을 기술했다는 것, 즉 바이블 저작자는 기계처럼 명령에 의해 사건을 기술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며, 유기적 영감설은 저작자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자기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 내에서 사건을 기술했다는 주장입니다.
여러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바이블은 모순이 엄청나게 많은 책입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계에서는 기계적 영감설은 제쳐두고,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나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사건은 유기적 영감설과 정면배치합니다.
예수와 함께 있었던 세 인물, 베드로, 요한, 야고보(세베데의 두 아들)은 현장에서 너무나도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기도를 끝내는 그 순간까지.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은 더 가관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기도내용은 동일하고, 천사가 내려오고, 예수의 간절함 때문에 땀이 핏방울 같이 되었다는 세세한 묘사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목격자는 없음!!!
같이 있던 자들은 다 쳐자빠져 자고 있음.
그럼 이 겟세마네 동산의 에피소드는 누가 보고 기록을 하였을까요?
기계적 영감설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지적 작가시점의 성령이 인간을 사용해서 썼다'고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유기적 영감설이라면? 본 사람이 없는데, 사실처럼 기록해놓았음.
그렇다고 다시 기계적 영감설을 따르자니, 다른 부분에서 모순이 너무 많아서 대책이 안서짐...
거짓말을 거짓말로 때우려다보니 대책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