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종교의 발생원인을 자연에서 찾지만 사실 자연은 꿈도 희망도 없는 냉혹한 세계입니다. 인간을 자연에 대한 관찰자로 두고 종교를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보는 게 타당한가?란 의문에 저는 보통 아니라고 말합니다.
비슷한 지능을 가졌다고 해도 네안데르탈인은 매장의식 같은 종교관념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이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있어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이죠. 결국 종교의 탄생은 그 근본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현대에 과학이 발달해도 그 과학을 기반으로 사이언톨로지나 라엘리언 무브먼트같은 SF같은 종교가 탄생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단순하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궁금해해서 종교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만 말한다면 종교는 도구입니다. 인간의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열망을 해결할 방법으로 선택한 도구....
그 근본적인 열망을 불교에서는 번뇌에서의 해탈, 극락왕생, 기독교에서는 죄의 해결, 천국과 영생으로 말하며 근본적으로 종교가 달성해야할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현대에 나타난 종교들도 이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선하게 사는 것, 신을 믿는 것, 율법을 따르는 것 등의 모든 행동원칙이 단일한 목표에서 파생됩니다. 만일 이 행동원칙이 목표보다 우선한다면 그것은 매너리즘? 혹은 맹목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겠죠. 성경에는 유대교 교파 중 부유층들이 대다수였던 사두개파가 나옵니다. 부활도 영생도 천사도 없다는 현실안주 교리가 비판을 받았죠.
어떻게 보면 이단, 사이비들이 더 종교적인 목표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기를 당할 수는 있어도 맹목적인 사람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기존 교단의 부패가 심한 경우 이단, 사이비가 많아지는 이유는 근본적인 목적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죠.
사망이나 고통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진 두려움이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종교가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가 후진국에 많고 빈민층에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그렇지요. 만약 사람이 영생하고 죽을 위협이 없다면 종교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