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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1 01:57
종교의 변화
 글쓴이 : 국밥햄
조회 : 1,041  

이전에 종교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 것에 이어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사람은 천국과 영생같은 것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열망이 있고, 그것이 이전 원시인류와는 다르게 인류를 종교로 이끌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흔히 종교를 고리타분하고 잘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역사를 찬찬히 보면 종교만큼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도 잘 없습니다. 보통은 한시대를 풍미한 다음 급작스런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유는 역시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대다수의 종교는 고대에 신화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인물들은 수명이 기본 수백~수천년입니다. 성경은 천년 안쪽이지만 이집트를 더불어 중동의 전설적인 왕들은 수천년이고 중국은 뻥튀기가 심해서인지 삼천 갑자도 튀어나오죠. 단군도 2000년 통치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니 만국공통의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실제인지 아닌지는 논쟁은 뒤로 미뤄둡시다.)

왜 신화는 이런 인물을 소개하는가?
보다보면 원피스가 아닌가 합니다.
 "영생?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라. 이 세상의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 "

경전이란 비약적으로 말해 이 보물찾기 텍스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렵게 쓰여있으나 초점은 인간의 열망에 있죠. 이런 걸 보면서 세계관을 구축하고 설정풀이를 하는 건 의도에 어긋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경전이란 책은 속한 장르가 없으니 뭐 그렇게 봐도 강요는 않겠습니다만....)

흔히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이 보물을 발견하는 길찾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과학으로도 추구하는 일을 인류는 시초부터 지금까지 해왔단 말입니다. 과학처럼 다양한 시도를 했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수백년을 해보고 모순이 나오면 엎어지고...

물론 종교계는 매우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나 가끔은 그 과정에서 매우 천재적인 인물도 나옵니다. 이런 인물은 수백~수천년을 해온 일을 뒤엎곤 하지요.

일례로 바울은 유대교의 속죄제에 대해 죄를 씻고 율법대로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왜 또 해마다 속죄제를 지낼 필요가 있는가 지적했고, 실제로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하여 기독교에선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골자는 영생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건 그런 방식으로 매년해도 영생은 커녕 사망의 원인인 죄조차 해결 못한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교리는 개혁이 되어왔고, 선각자들은 집단린치를 당해 순교자가 되어버렸죠. 기독교가 유독 요란스러워서 그렇지 비단 기독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란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재과학자들이 당시대 과학자들에게 린치를 당하던 상황이 종교계에도 똑같이 발생하거든요.)


뒤돌아보면 수천년 전의 다신교들은 힌두교 외엔 거의 사라졌고 요란한 제사와 의식도 많이 사라졌지요.

결국, 종교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이상세계와 영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종교의 변화도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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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1 19-02-11 16:01
 
종교 내용이나 개념 등의 변화에서 인간의 사기가 빠지면 안 됩니다.
그 인간들의 정의?

묻겠습니다. 인간이 신이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인간이 말하는 예수조차 반신반인이었습니다.
영화에 보면 반신반인은 많은데....  사람들이 그 반신반인에게 돈 내고 합니까?

인간 얘기인 것이라 생각 하는데... 똑똑함과 명석함이 있는 일이며 정직하라!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미? 사기에 휘말려서 그랬었던 것이나 인과는? 저는 잘 모름 그 것은 아닐까요? 사기 조장하는 인간들에게 상상하지 못 할 만큼 밝힌 것 그 내용 들이 있었습니다.

영생 어쩌구보다 님이 사기치려 함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쩌구 어쩌구 하면 어떻게 되어야 함에서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 보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약탈자?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ps- 참고로 별자리. 천기. 날짜? 등을 보아서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연관성을 생각했었는데... 신종현 무리? 그 오류와 사실이 아님을 생각 했었습니다. 생각 합니다. 누가 거짓말을 했었고. 누가 능력이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했었을까요?
태지1 19-02-11 16:48
 
저는 여러분이 관련성에 대한 이해를 해 보셨으면 합니다.
신종현이하고 달덩이를 살이고 싶습니다. 했던 짓에서 이런 개 쓰래기? 이런 인간들?
     
국밥햄 19-02-11 17:49
 
과격한 표현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종교가 행한 시도가 과학이 했던 시행착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용입니다.

종교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여태까지 종교가 진리였던 적이 있다면 종교가 이렇게나 다른 모습으로 계속해서 변화했을까요?

그것을 진리라고 믿고 안주한다면 당연히 사기를 당한 기분일 겁니다. 이건 정통이나 이단이나 사이비에게나 공통이란 이야기죠. 제 추천으로는 그냥 종교는 많이 겪어보되 물질적인 것을 원할 시엔 그냥 관둬라 입니다. 돈따위 하찮을 정도로 높은 이상을 추구하면서 그런 것에 연연하는 게 글러먹은 거니까요.
          
태지1 19-02-12 02:18
 
1. 의=하고 싶어 함,에 원함에.. 사기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석가모니 사기와의 비교가 있고 한 것인데
이 사기를 자신과 타인이 있는데 어떤 목적. 그 인간이 어떠한 것인가? 한 얘기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며 뭘 위해서 했었냐? 하는 것입니다.

2. "그것을 진리라고 믿고 안주한다면 당연히 사기를 당한 기분일 겁니다. 이건 정통이나 이단이나 사이비에게나 공통이란 이야기죠."
=> 레벨과 차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공통이 아니라! 다름과 있는 것을 보려 함 레벨 차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주? 사람이 늙어서 죽습니다. 그 와중에 안주도 합니다. 그런데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안주하지 않음으로 말 할 수 있다 생각 하십니까? 다구리 당하는 것이 닿은 일일까요? 님이 말한 내용에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까?
잘나고 싶다! 하는데 돈 받치면서 신을 숭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종현이 기감 보내는 것을 받고 뿅가서 돈을 주고 피곤해님은 잘 난 것이 없는데 종교를 만들고. 돈을 받았다 합니다....

그럼 이해를 제가 한 말에 대하여 님이 한번 해 보세요.
작용하는 실체? 님이 말 하시려 하는 것 같은데 아주 맘에 듭니다.
               
국밥햄 19-02-12 12:31
 
제가 말하려는 건 의도가 어떻건 사기건 아니건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전제부터가 다른 듯하군요.

예전에 주식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블루홀이 장외주식일 때 사기꾼에 혹해서 블루홀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죠. 그런데 그 블루홀이 지금와서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하고 그 사기꾼 말대로 엄청나게 올라갔단 말입니다. 그럼 이걸 주식투자 사기로 봐야할까요?

님의 말은 의도가 사기였다는 말이죠? 하지만 종교에서는 일어난 실제 앞에서 사기라 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종교의 길은 근원적인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길은 그 열망 앞에서 합당한지 아닌지로 판가름 됩니다.


블루홀 주식사기와 같은 사례로 성경에 요셉이 말하는 선이 있죠.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로 죽을 뻔했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하지만 역으로 요셉은 노예출신에서 이집트 총리까지 올라가죠. 훗날 형제들에게 요셉이 이에 대해 말한 대목입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수도 사랑하라'라는 강령도 이와 맥락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마음으로는 어떻게 나오는지 사람의 속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고찰하고 드러난 진리가 무엇이고 합당한지의 판단이 필요하죠.
                    
태지1 19-02-13 11:18
 
"예전에 주식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블루홀이 장외주식일 때 사기꾼에 혹해서 블루홀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죠. 그런데 그 블루홀이 지금와서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하고 그 사기꾼 말대로 엄청나게 올라갔단 말입니다. 그럼 이걸 주식투자 사기로 봐야할까요? "
=> 의도에서 남을 속이려 하였고 돈도 먹고 하였고 앎이라는 것이 고작 그 것이었는데.... 사기를 친 것이었는데...  주식에서 돈을 벌었고,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회비용? 돈을 벌었다? 거짓말을 다른 사람들이 하고 그러한 것을 용인 할 수 있다? 등의 말인 거에요?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사기처서 돈 버는 것 문제 없다?
지청수 19-02-12 12:47
 
사람은 천국과 영생같은 것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열망이 있고, 그것이 이전 원시인류와는 다르게 인류를 종교로 이끌었다

-> 첫 문장부터 수긍이 되질 않습니다.
영생을 추구하지 않은 반례가 되는 종교들이 꽤 되거든요.

1.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명계를 하데스로 통일하였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영웅, 선인들이 악인들과 같이 공존했습니다.
나중에 타나토스와 엘리시움으로 나뉘며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초창기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죠.
일리아스의 영웅들도, 오르페우스의 아내도 다 이 하데스에 있는 걸로 나옵니다.

명계에서의 삶도 영생과 연관시킨다면 그들은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갈망할 필요가 없고, 이승에서의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죽어서 하데스에 간다는 교리는 영생과는 무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로마 역시 매우 현실적이고, 현세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지녔죠.

2.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에 오염되기 전의 유대교의 명계는 스올이 유일합니다.
그곳은 그냥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유대교는 사후세계는 별다른 관심이 없고, 지극히 현세지향적인 종교입니다.
바이블만 보더라도 복의 내용이 땅에 번성하고, 재산을 뿔리고, 자손을 많이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유대교는 내세에 대한 교리가 자세히 있지 않습니다.

그러던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에 물들면서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등이 세분화되며 기독교로 계승되었습니다.

3. 아즈텍 종교
그들 역시 현세구복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에서는 주변 부족들을 사로잡아서 태양신에게 인신공양을 드렸는데, 목적은 영생이 아니라 풍년이었습니다. 영화 아포칼립스를 보면 잠깐 나오는데, 기우제 대신 인신공양 제사를 했지요.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제의 겸 스포츠가 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돌공을 엉덩이로 굴려서 골대에 넣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이 경기는 승자독식으로 이긴 팀이 모든 재물을 다 가져가고, 진 팀은 선수들 전원이 제사의 제물로 바쳐지는 끔찍한 스포츠였습니다. 여기서도 해당 종교가 물질적인 것과 관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불교
불교는 생로병사에서 시작된 종교라고 하셨지만, 불교 이전에 윤회란 영생 시스템이 있었고, 정확히는 생로병사가 아닌 '고'의 해결이 주목적인 종교였습니다. 모든 고통은 욕심에서 나오고,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이란것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영생 따위의 허망한 욕심이 자리잡을 구석이 없는 종교지요.
극락왕생, 서방정토도 죽지않는 천국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이상향을 가리키고 있고요.
여기서도 불교는 영생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신적 존재들, 영웅들의 영생과 장수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그들은 매우 특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일반인들과는 구별된 신적 존재들이었죠. 그들을 보고 일반인들도 영생을 갈망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너무 나가신 것 같습니다.
     
국밥햄 19-02-12 15:01
 
이것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원시종교들은 명복보다 현세의 천국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본능적으로 1차적인 욕구 충족이 먼저이기 때문이죠. 물론 인류의 시초부터 매장의식으로 보아 사후세계의 개념은 있어도 의식이 거기서 확장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종교들은 의식이 확장되면서 현세의 물질적인 천국에 머물지 않고 더 근원적인 열망을 추구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예를 들면 성경에 아브라함이 신을 믿게된 건 불임 때문으로 시작한 거고, 이후 가나안 땅이란 현세의 천국을 추구해서 유대교가 시작한 것과 거기에 확장해 영생을 추구한 것으로 기독교가 시작한 것으로 발전사를 말할 수 있죠. 그리스신화가 사장된 이유도 갖은 철학을 더해봐야 근원적인 열망을 충족하는데 기독교가 더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어느 정도 문명에 이르러 본능이 충족되고 나면 그제서야 영생을 갈망하는 인간이 역사에 나타난 건 실제 역사에도 나타나죠. 길가메시나 진시황이 대표적인 인물이고요.

말씀하신대로 신화 속 영생과 장수한 존재들은 특별한 인간입니다. 일반적인, 자연적인 것으로는 영생에 이르지 못함을 생각한 거죠. 때문에 종교에 신이란 초월적인 존재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영웅과 신성도 그와 함께 생각하며, 추구하는 길이 된 거죠.
     
국밥햄 19-02-12 15:54
 
이전에 이야기한 근원적인 열망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글은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https://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religion&wr_id=47139&sca=&sfl=&stx=&spt=0&page=0
          
확증편향 19-02-12 19:08
 
게시자분이 작성하신 예전 댓글을 일부 발췌해보자면,

국밥햄 19-02-08 03:34 
"아쉽게도 제 글에는 종교란 오버클럭이지 게임사양을 낮추는 법이 아닙니다."

종교라는 말씀이 너무 포괄적이라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그것을 지적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지청수님께서는 영생추구를 하지않는 종교에대해 언급하신 것 같네요.

반박을 하시려면 상기 4가지의 종교가 영생을 추구했다는 근거를 가져오시거나, 말씀하시는 종교를 특정한 단체로 국소시키고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밥햄 19-02-12 21:13
 
글쎄요. 고대종교들에 대해 왈가불가 하기엔 그 시대 종교들이 추구하던 이상에 대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단 영생에 대해 저는 다른 개념으로 말씀드리죠. 가장 직관적으로 말해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겠습니다.



1. 그리스신화에서 보면 하데스라는 명계를 당연스레 삶의 연속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예시하신 오르페우스의 아내 편은 실질적으로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삶의 지속과 부활의 개념이 나타나죠.

또한 그리스신화에선 헤라클레스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를 별자리로 올리며 올림포스의 일원으로 영원히 빛나게 합니다. 천국과 영원의 이상과 별다를 바 없다고 보이고, 역사적으로 신을 위한 제전인 올림픽 경기에선 다치고 기권하는 자보다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정도로 명예를 중시했죠.


2. 유대교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말씀드리면, 시편 90편이 모세의 노래인데 죄로 인한 죽음을 한탄하고 70, 80년 되는 수명도 먼지같이 날아간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창세기에 있는 장수했던 선조에 대한 인식? 혹은 영원한 신에 비한 것이 큽니다.

유대교 초기부터 이런 표현이 나오고 후기에는 예언서가 나올 때는 구절 하나로도 표현이 가능합니다.

(사65:20~21)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3. 아즈텍의 종교는 문자 해독이 20%미만에다 파괴된 것이 많아 거의 종말론 밖에 남지 않았군요. 검색해보니 인신공양이 풍년기원만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게 있으면 각각의 신전에서 제사하고, 주목적으로 태양이 꺼지고 세상이 멸망하는 걸 막는 이유라고 나옵니다.

 자료가 부족한 것을 굳이 말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그들이 세계를 지속시키려 국력을 소모하며 인신공양을 한 걸 생각할 때 멸망하는 세상(죽음)을 피하려 했단 거만은 알겠습니다.


4. 불교에 대해선 제가 아는 사실이 별로 없어 조심하겠지만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죠.

윤회가 과연 긍적적이고 영생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어쨌거나 죽음을 반복하는 시스템입니다. 죽음이 유발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니죠. 부처가 되어 벗어나려는 것 아니었나요?


중요한 건 문제의식입니다. 고대인들이 죽음 후 세계를 영생으로 인식했는지 모르겠고, 종교에서 사후세계는 죽음이란 상태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성경에서도 순교한 상태를 잔다고 표현(부활을 염두한 표현)하지 살았다고 쓰질 않습니다.

반대로 '죽음이 있다'가 문제인 거죠.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종교는 많습니다만 죽고 싶지는 않고 죽음을 피하는 레퍼토리가 신으로 귀결되는 것은 많더군요.
                    
확증편향 19-02-12 22:05
 
저에게 지적하신 예전 답변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국밥햄 19-02-08 03:34 
이미 스스로에게 다른 전제를 정해 놓았는데 뭘 더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국밥햄 19-02-12 22:21
 
그래서 부족한 자료 내에서만 답했습니다.

저 분도 부족한 자료 내에서 남이 그럴 거라고 써놓은 걸 말하시더군요. 현대인의 시각으로 사후세계도 영생으로 추론하시기에 답을 안하고 싶어도 하게 되더군요.

굳이 답을 하자면 저 역시 신화의 내용과 경전에서 제 주장에 근거가 될 것들을 발췌할 뿐입니다.

전제라고 하기엔 실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청수 19-02-13 00:08
 
님 역시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기록도 없는 먼 과거의 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나마 내려오는 기록을 통해서 추론할 뿐이고, 제 결론은 님의 주장과 정 반대일 뿐입니다.
                         
확증편향 19-02-13 00:39
 
국밥햄 19-02-08 03:34 
"이미 스스로에게 다른 전제를 정해 놓았는데 뭘 더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진리란 없다. 신은 없다를 전제로 깔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자연현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죽음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 슬퍼할 필요가 없는 네안데르탈인에겐 종교관념이 없었다고 이전에 다른 분께 댓글을 달았습니다.

반면 종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으로 인해 나타났다고 본문에 설명했습니다. 종교란 그 열망을 해결하기 위한 진리추구라고 할 수 있는데, 열망을 낮추거나 버린 경우는 오히려 인간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뭐 네안데르탈인이 인류보다 행복했을 수는 있습니다. 저도 더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고사양 게임을 돌리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교체하거나 오버클럭하는 방법을 찾는 중에 게임프로그램 자체를 최적화하고 사양을 낮추자는 논의로 빠지는 것처럼 방향성이 다릅니다.

아쉽게도 『제 글에는 종교란 오버클럭이지 게임사양을 낮추는 법이 아닙니다.』 제가 불교에 대해 오해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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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님이 말하는 건 종교의 일반화가 아닐까요? 저번 글에도 그걸 말했는데 본인 사고를 고수할 것만 생각하시네요.
                    
베이컨칩 19-02-12 23:51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세기 28:12 KRV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찌니라

출애굽기 25:40 KRV


세상의 모든 풍부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시편 22:29 KRV


※ 여기도 있지요 천사는 가브리엘이라고 다니엘에도 나오지요
                    
지청수 19-02-13 00:06
 
우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영생에 대한 갈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만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초등학생 시절에 죽음과 고문,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당시에 다미선교회가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말세론이 유행했었고, 7년 대환란이니 666이니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듣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무서워하곤 했습니다.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배울 때에도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이 잡혀서 고문당하는 것을 가만히 듣지 못하고 나라면 고문이 무서워서 독립운동 못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도 없이 단순히 죽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영생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짧고 굵게' 살고 싶다는 소원은 있었고, 장수와 영생은 바라지도 않았고, 지금도 영생은 바라지 않습니다. 적당히 살다가 삶이 곤궁해지면 고대 로마귀족들처럼 곡기를 끊고 깨끗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지요.

말이 길었는데요, 어린 시절의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었지만 영생에 대한 갈망은 없었습니다. 즉,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영생에 대한 갈망과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둘이 같은 의미는 아니란 것입니다.

1.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명계에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인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것에 대한 슬픔과 다시 보고 싶은 간절함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정작 명계에 있다가 페르세포네의 설득과 하데스의 선처로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오르페우스의 아내는 지상을 향해 올라오는 그 순간까지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인기척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라갔지요.
결과는 알다시피 지상을 한 발자국 앞에 둔 상황에서 오르페우스가 아내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계로 빨려들어갑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부활이나 영생에 대한 어떤 갈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오르페우스가 겪은 이별의 슬픔이 주된 주제이죠.
아내를 다시 빼앗긴 오르페우스는 평생동안 슬픈 노래만을 부르며 여자를 멀리하며 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의 주제가 부활이 아닌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 시편 90편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편은 영생을 누리고 싶다거나 창세기의 인물들처럼 영원에 가까운 오랜 시간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신의 영원(신의 영원한 시간과 능력)에 대비되는 인간의 유한함을 노래한 것입니다.
되려 시편 90편 14절과 15절을 보면 영생과 장수보다는 삶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이사야서

"누가 이사야서를 기록했는가?"에 대해 기원전 8세기 어간에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의 저작이라는 견해가 역사-비평적 신학이 발흥하기 전까지 전체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유럽에 불어닥친 계몽사상의 여파로 성서를 고문헌으로 이해하는 비평적 성서 읽기를 생각하면서, 이사야 외 제2 이사야, 제3 이사야라는 학설 즉, 이사야 예언서의 저자를 복수로 보는 해석이 등장하게 되었다. 1775년 되덜라인(J. C. Döderlein)은 그의 "이사야"란 (Esaias) 저작에서 이사야서는 두 개의 다른 작품들의 합성이라 주장하고, 아이히혼(J. G. Eichhorn)은 "구약 서론"이란 책에서(Eichhorn, 1780-1783) 사 40-66장은 이사야의 작품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사야서에 대한 비평적 가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게 베른하르트 둠(Bernhard Duhm)의 이사야서 주석(Das Buch Jesaja, 1872)이었다. 둠에 의하면, 이사야서는 원-이사야서 (Proto-Isaiah), 제2 이사야서 (40-55장), 제3 이사야서 (56-66장) 등으로 구분되는데, 소위 제2 이사야서는 기원전 538년 바벨론에 거주하던 추방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어떤 무명의 예언자에 의해 기록되었고, 소위 제3 이사야서는 추방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후에 어떤 무명의 또 다른 예언자가 기록한 책이며, 소위 원-이사야서는 기원전 2세기 마카비 시대까지도 계속 진화 중에 있던 가장 늦게 산출된 문헌이라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2%AC%EC%95%BC%EC%84%9C

이사야서의 저자는 이사야 본인에 의한 완결된 책이 아니라 여러 저자들에 의해 릴레이로 작성된 책이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위에 언급하신 이사야서 65장은 제3이사야서로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에 오염이 된 이후에 쓰여진 내용이기 때문에 유대교의 전통적인 내세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3. 아즈텍 종교
아즈텍 종교에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옅볼 수는 있으나, 이 글의 처음에 쓴 것처럼 종말, 혹은 죽음에의 두려움이 영생의 갈망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되려 가뭄등의 천재지변이 지속되면 왕과 왕비가 신의 제물로 바쳐지기까지 하였고, 아즈텍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없고,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일종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스페인 병사들에게 사로잡혔을 때 차라리 영광스럽게 신의 제물이 되고 싶다는 증언)으로 보아, 세상의 종말을 막는 것이 개인의 영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지속시키려 국력을 소모'하였다는 것돠 사실과 다른데, 아즈텍 제국은 웬만해서는 자신들의 제국민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인근 부족들을 공격하고 젊은 장정들을 '약탈'하여 제물로 썼습니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에즈텍 제국에 입성하였을 때에도 주변에 수십개의 부족들이 있었지만, 아즈텍 제국에 제대로 반기조차 들지 못했을 정도로 국력의 차이가 상당했었죠.
물론 아즈텍 내부에서도 고귀한 피, 젊고 강한 피가 제물로써 더욱 가치가 있다고 믿어졌고,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 일종의 영광으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에 자국의 젊은 청년들이나 귀족들이 자진해서 제물이 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말씀하신 것처럼 국력을 소모할 정도의 희생은 아니었으며, 여기서도 그들이 영생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지금은 불교와 윤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초기 불교는 윤회와 거리가 있었습니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브라만교와 카스트 제도에서는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를 서로 뗄 수없는 관계로 보아서 브라흐만 안에서 참나(영원초월적인 자아)인 아트만들이 서로 합일된다는 범아일여 사상을 주장했는데요. 석가모니는 이를 뒤집고 범아가 아닌 무아를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왕족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상인출신들로부터 후원을 받게 됩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통치시스템인 카스트 제도를 뒤엎으려는 석가모니의 사상이 매우 위험한 이단사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당시에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윤회란 것을 차용하여 설법을 펴긴 하였으나, 윤회 자체를 긍정하거나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윤회를 업에 의한 숙명론 정도로 여겨졌고, 자신이 하류층인 것은 전생의 악업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통치수단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부처는 그 숙명론을 깨뜨려버리죠. 현실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체념하지 말고 극복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위에도 썼듯이 고통은 욕심에서 나오고,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석가모니는 무아를 주장하면서 영혼을 실어나르며 윤회를 반복하게 하는 고정불변한 영원한 자아를 부정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보면 윤회 자체도 부정했을 법 하지만, 정작 윤회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영원한 자아는 부정했지만 진아란 개념을 또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진아(참나)는 자아와는 또 다른 개념인데, 불교에 대한 지식이 짧은 저로서는 설명해드리기가 힘드네요. 머릿속에서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입 밖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그런 상태입니다.

또한 윤회의 핵심은 죽음의 고통이나 죽음의 반복이 아니라 업입니다. 이런 해석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끼워맞추기식 해석입니다.


번외
죽음을 피하는 레퍼토리가 신으로 귀결된다고 하셨는데, 고대인들에게 신이란 존재는 현재 우리가 소설이나 영상매체, 게임에서 접하는 신처럼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영험한 무기를 들고 가서 때려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 설사 악신이라고 할 지라도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초월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거나 죽음을 극복하는 신화의 인물들을 보면 일반인들이 없습니다. 다들 출생의 비밀이나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는 평범한 인물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죽음을 보지 않네요. 에녹, 엘리야, 우트나피쉬팀 정도?
                         
국밥햄 19-02-14 00:53
 
얼마나 사셨는지는 몰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겪어봤다고 영생에 대한 욕구까지 부정하긴 어렵다고 보네요.

1차적인 인간의 본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본능적인 욕구가 어느정도 해결되어서야 영생에 대한 욕구가 드러난다고 보거든요.

성직은 옛부터 고위층의 전유물이고, 영생을 추구하던 역사적 인물이 왕같은 고위층이란 것도 사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생에 미치는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본래 인간에게 내재된 욕구라 생각하는 거고요.

저도 불가촉 천민이라 아직은 그런 생각 못해본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노동없이 먹고 살만한 세상이면 영생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쓰시는 글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데 현대인의 시각에서, 또는 비종교인의 시각에서 신화와 경전을 보는 느낌이 자꾸 드는군요.


1. 오르페우스 신화의 주제를 사랑으로 단정하고 그에 맞춰 해석하시는데 그게 그런 이야기 같아 보여도 전설도 민담도 아닌 '신화'입니다.

마치 용비어천가를 내용만 빼서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느낌이랄까요? 용비어천가의 가치는 한글에 중점을 둬야하고 그렇게 쓰인 배경이 더 중요한 가치인데 말이죠

오르페우스는 신화고 당연히 고대인의 세계관에 맞춰 이야기한 것으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죽은 자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은연 중 녹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던 이유가 뭘까요? 죽은 자니까요. 만약 명계가 생의 연속이라 생각했다면 오르페우스도 죽어서 아내를 찾으면 끝인 문제입니다. 그러질 못하는 건 죽음이란 상태가 소리도 인기척도 저런 상태란 걸 반영하고 있죠. 이런 거 고대철학자들에게 덕질 당하는 요소죠.

게다가 죽은 자를 살리는데 신이 개입한 것과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까지 우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초점을 사랑에만 맞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종교적 표현이고, 의도적으로 비유한 거라 못보실 순 있는데 의미없듯이 단정하는 건 종교를 단순 문학과 예술 정도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2. 유대교에 대한 내용도 단정적이라는 느낌인 게 시편 90편도 인간의 유한함을 표현한 단순 문학으로 말하고 계시죠. 전혀 종교적인 시각으로는 생각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찬찬히 보면 창세기 1장부터 내용이 시간순으로 모두 비유해서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이 구절은 아담에게 죽음의 저주를 주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했던 말을 표현한 겁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이런 표현도 아담 이후 최고 오래살아봐야 천념이 못된 900년 이상을 산 선조의 기록에 대한 비유이며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900년 600년 200년 이런 식으로 선조들의 수명이 줄어 모세시대 70,80되는 수명이 된 창세기 내용 반영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
신이 자신들을 떠나 생긴 일이란 문제의식도 나타나고, 더욱이 문맥상 신이 돌아오면 무엇이 해결될 것 같습니까?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모세 때가 아담으로부터 거의 2500년 후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이사야65:22에서 나온 나무의 수한이 되리라는 예언과도 맥이 같습니다.

참고로 신이 내리는 복이 영생이란 구절을 첨부하지요. 모세부터 다윗, 이사야 시대까지가 모두 일맥으로 통합니다.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경전이 뭐가 섞이건 저자가 여러명이건 맥이 같군요.


사실상 종말론 밖에 안남은 아즈텍의 종교를 예시로 두기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 같고, 불교는 님도 세계관을 설명하기 힘든 거 같으니 관두죠. 솔직히 불교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불멸자다 필멸자다 저도 이해 못하겠고 어떻게 이야기 못하시는 것 같으니....


번외

제 이야기는 신이 아니고서는 죽음 못피한다고 말한 겁니다.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 그만큼이나 신이 무거운 존재라고요.

왜 종교에 신이 필요한 것일까?
이 역시 종교적 의문인데 신화의 결론은 이 역시 우의적으로 다루죠.

신에게 신급으로 인정받거나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죽음 못피하는 게 신화의 결론입니다.

평범한 3인? 이것들도 전부 신이 관여했죠.
에녹: 신과 동행한 자
엘리야: 신의 충실한 제사장
우트나피쉬팀: 혹은 지우수드라, 신에게 인정받아 홍수에서 구원받은 자, 성경에선 노아로 신과 동행한 자로 나옴
                         
국밥햄 19-02-14 01:16
 
같은 것을 보고도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로 보여서 의견을 좁히긴 힘들듯 합니다.

저 역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현대인일 수 밖에 없는 걸 인정하죠. 아는 척해봐야 그 종교의 심도있는 교의(미스테리아)를 모르는 현대인일 뿐이죠. 그저 주장일 뿐 납득이 될만큼의 근거가 못되는 거 같아 한계를 느낍니다.

종교 텍스트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문화충격이군요.
                         
확증편향 19-02-14 01:31
 
그럼 종교의 시작은 비종교인이었을텐데, 종교의 탄생, 변화가 인간의 영생에대한 열망으로 나타난다면서요. 그럼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쓰지 종교인입장에서 써야할까요.
그리고 그게 핵심이 아니라 영생에대한 열망이 종교에 나타나는게 아니라고 말하는데 자꾸 말만 돌리고 같은말만 되풀이하시는데
종교관에 입각해서 썼다해도, 유대교나 개신교 바이블내용 복붙하시고 잘 아시는거보니
님 종교관은 기독교나 개신교 같은데, 그럼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 혹은 개신교 관점에서 본 영생의 욕구라고해야지요.
불교는 모른다면서요. 그리고 종교의미를 자기가 정해놓고 멀쩡히 "종교"라고만 써놓고 타인이 이해하길 바란다는 식으로 쓰는 말장난이 어디있습니까?
같은 말 몇번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돌려말하다가 도저히안되서 대놓고 말합니다.
                         
지청수 19-02-14 13:34
 
관점의 차이도 근거가 명확해야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지, 근거가 빈약하다면 떼쓰는 것 밖에 안됩니다.

제가 얼마나 살았는지 궁금하십니까?
지금 아프리카에 가면 노인 소리 듣고, 애들로부터 할아버지 소리 들을 나이입니다.
비종교인의 시각이라고 하셨는데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30년 정도 교회를 다녔고, 심지어는 신학대학교에 가서 신학 공부하는 건 어떠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교회 내에서도 촉망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유년부 시절은 기억이 없음)에서 회장단에서 이름이 빠진 적이 없었고, 교회에서 사역을 했던 교역자들 중 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교회 내에서도 인지도 있었고요.

누가복음에서 12살이 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랍비들과 문답을 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도사들, 신학대학생들과 바이블에 대해 논하며 바이블공부를 하던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신학대 1,2학년 학생들이 저에게 풀이와 역사적 해석을 부탁하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젊은 시절을 교회에서 보내서 사고 자체가 기독교 중심적이 되었습니다. 그걸 많이 떨쳐내려고 했지만, 아직도 다 떨쳐내지 못하고 군데군데 썩어빠진 사막잡신교 사상에 오염되어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비종교인의 시각이라니...

그리고 님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생에 미치는인물들이 나왔다고 했는데, 진시황이나 길가메시 말고는 예로 든 사람이 없네요? 도대체 또 누가 있다는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왔다는데, 왜 둘 밖에 예를 안들어요?

그리고 님이 불가촉천민이건 수드라 계층이건 상관 안하지만, 전 그래도 부족함 없이 자랐고, 좋은 대학 나와서 손에 기름 안뭍히고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가다란 건 대학교 때 학교 선배가 인생경험하자며 데려간 적과 인테리어하는 형이 자기 일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적 빼곤 없습니다. 금수저, 은수저는 못되더라도 동수저 정도는 되는데 영생에 대한 갈망이 없어요. 불가능한 꿈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20대 초반의 육체로 돌아가는 정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적당히 늙으면 골골대며 살지 말고 깨끗하게 죽자는 주의입니다. 전 지금까지 살면서 부족함 없고,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왜 영생을 바라지 않을까요? 아직 금수저까지 못가서 그런가요?

아는 형이 있습니다. 본가가 강남이고, 소위 강남좌파라고 불리던 형인데, 기독교와 관련해서 영생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대화 중에서 했던 말이,
"영원히 살아서 뭐할건데? 100년은 역사학 연구하고, 100년은 물리학 연구하고, 100년은 수학연구하고 살았다고 하자.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는데, 도대체 뭐하고 살건데?"

영생해봤자 부질없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말인데, 이런 말은 고대의 철학자들도 많이 남겼습니다. 세네카는 헛되이 쓰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라. 잠은 죽어서 영원히 잘 수 있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몸이 죽는다고 죽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 비로소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영웅들은 영원히 산다. 에피쿠로스는 자기 비문에 이렇게 적으며 죽음 뒤를 걱정하지 않음을 나타냈습니다. '나는 없었다. 나는 있어왔다. 나는 없다. 나는 마음 쓰지 않는다.' 키케로는 노화가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인정했으며, 변할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짧은 인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솔로몬도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도서에 적혀있지요.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반지의 제왕인가 하이엘프의 숲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엘프가 인간 주인공에게 말하길, '너희 인간의 시간은 짧다. 그래서 너희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다. 우리 엘프들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펼쳐져있기 때문에 너희만큼 치열하게 살지 못하며, 지금처럼 점점 도태되는 중이다.'

그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부터 현대 소설작가들까지 인생의 유한함이 주는 행복을 이야기했는데, 뭐가 아쉬워서 영생을 구할까요?
잘사는 집안 자제들이 마약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흥청망청 돈 쓰며 즐기는 인생이 지겹거든요. 더 자극적이고, 저 화끈한 놀이를 찾다가 마약에까지 손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끝엔 허무 밖에 남지 않아요. 그런 허무를 맛본 사람들이 영생을 구할까요? 영원한 허무를???
진시황은 49년을 살다 갔고, 서른 살 즈음에 전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세우고, 죽기 직전까지 제도를 정비하고 정복한 영토를 순시하는 것으로 바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단 한가지 소망은 자기가 만든 통일제국이 영원하길 바랐고, 그 영원한 제국을 위해 황제 자신도 영생하기를 바라며 수은을 쭉쭉 빨아마셨죠. 만약 그가 치열한 삶이 아니라 왕좌에서 농땡이만 치고, 궁녀들과 밤낮으로 즐기는 허무한 쾌락을 쫓았어도 영생을 추구했을까요?


1.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신화 맞습니다. 그리스 신화.
'죽은 자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그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어떻게 살렸는지 아세요?
리라 연주로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마음을 녹여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겁니다.
아, 그럼 악기 연주를 잘하면 죽은 자도 부활시킬 수 있겠구나!

이게 그 신화의 핵심일까요?ㅋㅋㅋㅋㅋㅋ
전혀 아니죠. 파가니니가 부활해서 멋드러진 바이올린 연주를 해줘도 죽음은 못 막아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위에 말했듯이 이별의 슬픔과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하나 있고, 다른 여자는 바라보지도 않고 죽은 아내만 그리워하면서 슬픈 음악만 연주하며 살았는데, 그런 오르페우스에게 고백을 했다가 냉정하게 거절당한 한 여자가 거절당한 사실에 모멸감을 품고 오르페우스를 계략에 빠뜨려 사지를 찢어죽었다는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즉 전체 이야기의 구성이 사랑-사별-상실감-죽음인데, 여기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죽은 자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은연 중 녹아있다고요?

심지어 후대의 추가본에서는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가 엘리시움에서 재회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막까지 내려주는데...

'죽음이란 상태가 소리도 인기척도 저런 상태란 걸 반영하고 있죠'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못낸다는 건 아주 당연한 거에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여기서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대 그리스건 현대 한국이건 죽은 자는 좀비 빼고 다 저 상태인 건 아주 당연한 걸로 '인식'하는 겁니다. 저기에 무슨 철학적 의미가 담겨져있다는 거지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불알이 다 닳아 없어지겠습니다.


2-1. 동양에서는 100이 완전한 수였습니다. 100은 모든 것을 뜻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을 백성(百姓)이라고 했고, 수많은 학자나 학파를 백가(百家)라고 했으며, 백과사전, 백화점도 같은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온갖(온 가지), 온 세상 등에서 쓰이는 온도 백의 순 우리말로 '모든' 것을 뜻하는 표현이었고요.

이 100의 의미가 서양에서는 1,000에서 쓰이고, 그 뿌리는 헤브라이즘입니다.
유대교, 즉 히브리족들은 숫자마다 뜻을 부여했는데, 그 중 3은 하늘의 완전수, 4는 땅의 완전수이며 3+4=7이 세상의 완전수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말하는 일주일도 7이 되는 것이고, 럭키7도 여기서 유래합니다.(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는 6일만에 천지창조가 끝났고, 숫자 1,2,3의 최소공배수가 6이기 때문에 6을 세상의 완전수로 보았음, 반대로 일반적으로는 완전수인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악마의 수로 봄)

12지파, 12사도도 카발라에서 6을 완전수로 본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1,2,3,4를 약수로 갖는 최소공배수이기 때문에 완전수로 보았고, 60도 1,2,3,4,5를 약수로 갖는 최소공배수이기 때문에 완전수로 봤습니다.

그럼 1,000은 뭔가?
1,000은 초기 유대교에서는 야훼의 완전수, 10,000은 엘로힘의 완전수였습니다.
(엘, 엘로힘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헬로가생님께서도 언급하셨고, 저도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으니 이해가 안되시면 찾아보십시오.)
기독교에 들어서면서 1,000은 그리스도의 완전수, 10,000은 야훼의 완전수로 다시 갈라집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천년이란 표현이 나온 것이고, 서양에서의 단위의 기본이 1,000이 된 겁니다.(단위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 해당 구절의 천년도 신의 완전성을 뜻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고,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도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완전한 왕국을 의미합니다.

현실에서는 1000년을 의미하는 밀레니엄, 숫자를 1,000단위로 구분하는 thousand, million, billion 등의 고대의 흔적이 계속 계승되고 있고요. 영어에서 '수많은'이란 관형사를 'thousands of'라고 하고, 프랑스어에서는 mille이 1000, 수많은의 뜻이 있고, 숙어로 'mille et une'이 역시 수많은 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독일어의 tausend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런 걸 모르니까 14절과 15절에 인생의 복을 노래하는 것이 뻔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창세기와 연관시키며 영생을 바란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2-2."모세 때가 아담으로부터 거의 2500년 후입니다."

->아담의 창조부터 셈의 출생까지는 창세기 5장에 정확히 나와있고, 총 1554년이 지납니다.
셈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창세기 11장에 392년이라고 나와있고, 여기까지 총 1946년입니다.

(창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창 25:26)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출 12: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출애굽기 12장의 시점까지 총 2666년이네요?
설마 모세가 그리스도급 중요인물이어서 탄생을 기점으로 한다고 쳐도 애굽에서 자라고 광야생활을 한 80년을 빼도 2586년입니다. 게다가 2500년은 또 어디서 나온 말???
이사야서 65장 22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이야기인데 갑자기 모세의 때는 또 왜 나오고???

거기다 제3 이사야서의 기록시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언급도 안하고 패스하시는군요?


2-3. 시편 133편【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읭? 사람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네?

저기서 나오는 헐몬의 이슬은 이스라엘에 위치한 헐몬산에서 유래한 겁니다.
여기서 발원한 물이 요단강과 이스라엘로 퍼져내려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산이죠.
쉽게말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과 같은 의미로, 시온, 즉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복이 영원히 있기를 바라는 노래입니다.

우리 사랑 영원히! 우리 우정 세상 끝날까지!
님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구절들도 님 눈에는 영생을 추구하는 구절로 보이겠네요?^^


3. "사실상 종말론 밖에 안남은 아즈텍의 종교를 예시로 두기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 같고"
-> 아즈텍의 왕과 왕비도 천재지변을 달래지 못하면 목숨을 바쳐야 하는 나라이고, 명예와 신을 위해 귀족들과 장정들이 스스로 제물이 되는 나라였는데, 이걸 어떻게 영생과 묶을 수가 있죠? 영생과는 정반대인데?
아즈텍이 영생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란 것은 위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되고, 아즈텍 신화가 많이 연구되었기 때문에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이 아닙니다.
혹시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해보셨으면 테노치티틀란 발견 퀘스트를 하면서 케찰코아틀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봤을텐데, 이 케찰코아틀이 아즈텍의 주신이고, 그의 부모와 형제들, 이름의 의미, 업적들이 다 밝혀져있습니다.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비교한다면, 단군신화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상세히 연구가 된 종교입니다만...


4. 불교는 님도 세계관을 설명하기 힘든 거 같으니 관두죠.
설명은 위에 충분히 했는데요? 불교에서 석가모니는 영생 따위가 아니라 이 세상의 고통을 덜어내는 설법을 폈었다고요.
설명하기 힘들다고 한 부분은 진아입니다.
위에 다 설명했는데, '설명하기 힘든 거 같다'며 퉁치려고 하시네...


5. "제 이야기는 신이 아니고서는 죽음 못피한다고 말한 겁니다.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 그만큼이나 신이 무거운 존재라고요.
왜 종교에 신이 필요한 것일까?
이 역시 종교적 의문인데 신화의 결론은 이 역시 우의적으로 다루죠.
신에게 신급으로 인정받거나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죽음 못피하는 게 신화의 결론입니다."


님이 본문에 또 이렇게 썼었죠?

"사람은 천국과 영생같은 것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열망이 있고, 그것이 이전 원시인류와는 다르게 인류를 종교로 이끌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바로 위 문장은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는 뜻 아닌가요? 그러면서 위 글에서는 신이 아니고서는 죽음을 못피한다는 '신화의 결론'을 우의적으로 표현한다고요?
영생을 구하는데, 영생을 부정하는 종교를 만들었다?
님이 쓰고도 헛웃음이 나오지 않아요?


신이 아니고서는 죽음 못피한다
vs
신에게 신급으로 인정받거나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죽음 못피하는 게 신화의 결론

-> 그래서 신만이 영생한다는 겁니꽈? 신급 영웅들,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도 영생한다는 겁니꽈?


그만큼이나 신이 무거운 존재라고요.
vs
신에게 신급으로 인정받거나

후자는 지극히 드래곤볼 수준의 생각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신은 감하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이사야가 그러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런 신과 같은 급인 인간이 있을 수 있다고요???
고대신화에서 나오는 영웅들은 하나같이 신의 피를 이어받은 데미갓들입니다. 신급이니 뭐니를 떠나서 그냥 신의 혈통입니다. 그들 중 영웅적인 업적을 남긴 자들만이 선택되어 영생을 누립니다.
(심지어 영생하고자 우트나피쉬팀을 찾아나섰지만 영생에는 실패했던 길가메시도 어머니가 여신...,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이자, 최고의 인간인 아킬레우스도 어머니가 여신이지만 화살맞고 비명횡사..., 가장 유명한 영웅 헤라클레스도 독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분신자.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과는 전혀 동떨어진 신들의 이야기이고요.

결국 돌고돌아 님의 글들을 조합하면 고대인들은 자신이 신의 핏줄이 아니므로 고대의 영웅들(데미갓)처럼 영생을 갈구하기 위해 종교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진짜 아주 예외적으로 신과 소통을 하며, 신의 선택을 받은 몇 명이 영생이란 선물을 받을 뿐이지요.

(글을 쓰다보니 영생을 얻은 인간이 한 명 더 생각났네요. 여신 에오스의 애인 티토노스. 중요한 건 영생이 아니라 젊음이란 걸 알려주는 아주 교훈적인 신화...)


아 왜 자꾸 글을 쓰면 쓸수록 베이컨칩 냄새가 진동을 하지...
레종프레소 19-02-12 23:10
 
뭔 이야기를 하는건지..

영생을 말핥 듯 하더만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고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임? 뭔 알맹이도 없는 글을 연재씩이나 하나
     
국밥햄 19-02-12 23:59
 
요약하면 종교의 탄생부터 변화까지가 천국과 영생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으로 나타난단 주장입니다.

문장력이 떨어져서 주제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죄송합니다.
제 나름대로 각종 근거로 이야기하다보니 글이 산만해졌습니다
          
레종프레소 19-02-13 13:19
 
뭐 유불선 말고 종교같은 종교가 있나..이 세 범주를 벗어나면 다 사이비에 쭉정이들이지..

천국 영생이야 예수쟁이들이나 찾는거지 (부처도, 신선도 장생불사를 해도 궁국적인 수명은 있었음...부처, 신선이라고 천억년 씩 산다고 생각한 줄 아나..닦은 근기만큼, 수행으로 정기를 뭉쳐놓은 만큼 영혼의 수명도 정해진다고 봤지)

유교도 천국이나 영생을 개소리 취급하고,

도교(선)도 천국 같은 개소리는 안했음.


그리고 선후를 잘못생각하는 것이

천국과 영생이 어찌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이겠음?...

생로병사에서 로병사야 그 자체로 인간의 고통이니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열망은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있어왔던 것임..

즉, 인간이 영생을 바란게 아니고, 인간은 생로병사에서 로병사를 피하려는 본능과 열망이 있었던거지

생로병사를 피하려는 열망에서 그게 발전해서 영생도 이야기가 나온 거지

오늘 폐병앓고, 디스크 앓고, 심장병앓고, 봉사가 된 나약한 인간들이 무슨 영생부터 생각하나

일단 병부터 고쳐지기만 바라는거지 영생부터 꿈꾸는 그런 정신병자가 어디있다고

영생 그런 것은 예수쟁이나 그런 생각하는거지...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쇠병사장衰病死葬,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생사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지..

영생같은 개소리야 저 서양 물들어간 예수쟁이 정신병자들이나 그걸 생각하고 고민하는거지 건전한 이성과 상식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무슨 인간이 영생을 열망한다 이런 소리를 하겠음?.

세상에 종교가 예수교만 있는게 아님....오늘날에는 인간들이 무식해져서 종교 하면 자신도 모르게 떠올리는게 기독교적 유일신을 생각하니 종교의 탄생이 무슨 천국과 영생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는 망령된 생각을 하는거지...


종교를 인간의 열망, 욕구 이런 측면에서 보는 시각은 세상 사람 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 가치도 없는 것임....인간이 필요와 욕구에 의해 종교를 만들었다 뭐 이런 소리는 장황하게 안해도 그 정도 생각도 안하고 세상을 사는 사람은  이 게시판에 베씨 정도 말고는 존재하지 않음....한편,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하는게 인간의 한계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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