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신이 저 돌을 만들 수 없으면 전능하지 않으며" ---> 신이 전능하다면 저 돌을 만들 수 있다.
"만들었다 한들 저 돌을 들 수 없으니 전능하지 않다" ---> 신이 전능하다면 저 돌을 들 수 있다.
즉, 병아리님이 본문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인즉슨,
---> 신이 전능하다면, 신은 '저 돌'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기 때문에 신은 전능하지 않다. 이 말인거지요?
그런데 병아리님의 본문 첫 문장에서 이렇게 언급했네요.
"신도 : 전지전능하신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 전능한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전능자는 '그 돌'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모순이지만 가능해야 함.)
다시 말해서, 님의 논리 전개를 보면,
전능한 신은 무엇이든 가능해야 한다 -> 그런데 전능은 모순이다 -> 따라서 신은 전능하지 않다.
이런 흐름인데, 이는 자가당착입니다. '전능'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전능'이라는 단어는 '모순'이 있고 없고의 여부에 의해 규정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전능한 신은 어떤 돌이든지 만들 수 있고, 어떤 돌이든지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신도가 요구하는,
"신이라도 절대 들어올릴 수 없는 무거운 돌"이란 것은 없습니다.
(신이 들어올릴 수 있지만 들어올릴 수 없는 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논리법칙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전능자는 1+1=3 인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에게 비논리를 요구해 놓고서는, 봐라 신은 전능하지 않으며 비논리적이다 라는 주장을 전개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신이라도 논리의 영역 안에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논리와 법칙을 만들어내는 분도 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아주 가끔 들릅니다만, 여차하면 신흥종교 창시하실만한 분들이 많이 계신듯합니다. ^^; 하여튼 각설하고...
올리신 질문이 제 보기엔 그다지 진지한 문의는 아니신 것 같고 저도 잘 모릅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바를(?) 논의 전개에 도움 될까하여 글을 달아봅니다.
쓰신 글로 보아 아마 기독교의 신을 얘기하시는 것 같아 그 전제로 말씀드리면,
흔히 기독교에서 신, 창조주가 우리말로 '전능'(전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 원문에선 뭐라한지 모르겠네요....)하다고 하지만 그냥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점에서 문자적으로 따져 정말로 전능하냐라고 묻는다면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 최소한 2가지 경우에서 신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이 스스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물론 신에게 있어 죽음이란 것과 죄란 것이 무엇인가를 또 따지면 논의가.... ) 그러니 엄밀하게 봐서 문자적으로 '전능'은 성립하지 않고 전능이란 문자에 얽메여 너무 관념적으로만 신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나 가치있는 논의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댓글에 언급하신 돌 얘기는 "나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그럼 "네가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보아라" 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을 해보라"하는 말로 그런 말 자체 성립에 대한 논리 문제이지 신의 실재와 실재한다면 어떤 신인지의 진지한 고민과 문제와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아마도 창조주로서 신이 우주밖(?)에 있다는 것으로 피조물은 한계가 있으나 신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참고로 '우주 밖'이란 말은 정말 우주 밖에 또 어떤 것(곳)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초월자란 뜻입니다.
제가 생각기에 관련하여 오히려 의미있는 논의는 그럼 기독교의 신이 정말 초월자냐? 또는 참 신이냐 일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논의는 가볍지 않은 것으로 오랜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쟁하던 주제이니 만큼 제가 여기서 더 뭐라 말씀드릴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가생님이 언급하신 노아 홍수사건에 있는 표현(맞나요?) 대한 것 포함 신에 대해서 화내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즐거워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제가 알기로 신의 능력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감정이 있는 존재로서 '인격'적인 특성을 나타낸 표현과 묘사입니다. 우리 사람도 어떤 큰 일을 당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헀어야 될 일에 대해서도 심정적으로 후회하며 말하지 않습니까? 결국 이것도 따져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럼 사람이 그럴줄 알면서 신이 왜 선악과를 동산에 만들어 놨는가? 또 왜 사람이 따먹을 때 나타나서 바로 제지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전에 왜 뱀이 유혹하도록 내버려두었는가? 아니 애초에 왜 '악'을 세상에 허용하였는가? 등등의 질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쯤되면 관련 주제와 논의할 것이 너무 방대해저서 저같은 깜냥의 사람은 어떻게 더 논해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 여기 관련 학자분이나 공부를 하신 분께서 글을 달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그동안 제 보기에 안계신지 아니면 제가 못 봇 것인지 아직 그런 글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면에서 좀 아쉽습니다.
하여튼 올리신 글과 관련해서 너무 말 자체의 논리적 관점에서만 글타래가 흐르는 것 같아 그냥 조금 알고 있는 것을 올려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을 해보라"
-->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부화뇌동하는 부류들이 많이 있다는게 문제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형식의 주장을 과연 논리로 쳐 줄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진지한 고민과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싶습니다.
---> 전능자가 할 수 없는 일? 없음 (신의 의지에 따라 하지 않는 일이 있을 뿐..)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데도, '없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능이 아니다?
이런 식의 주장이 억지이고 비논리인 것이지요?
보너스,
전능자가 자신의 전능성을 스스로 내려놓기 전까지는 여전히 전능하다.
전능자는 자신의 전능성을 스스로 내려놓을 능력도 있으며, 전능성을 회복할 능력도 있다.
(돌을 들어올릴 수는 없지만, 돌을 없앨 수는 있기 때문에)
만약 전능자가 자신의 전능성을 영구히 내려 놓을 능력까지도 보여준다면?
자신이 진짜로 전능자였음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증명해 주는 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 말 대잔치네요. 자연법칙을 맘대로 한다는 말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라서 논리적으로 존재 가능한 것만 만들 수 있다는 말과 모순입니다. 님 스스로 전능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전능자는 자신의 전능성을 스스로 내려 놓아 전능이 아닐 수도 있다? 전능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어떻게 들어올릴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냐고 했던게 누구였더라? 보너스로 개그 한 번 더 하신 듯?
님의 문제가 뭐냐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과 현실을 구분 못한다는 거에요. 이를테면 어느 장사꾼이 자신은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만들어 판다고 해요. 그런데 지나가던 구경꾼이 그걸 보고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면 이 얘기를 듣고 애초에 장사꾼이 했던 얘기가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뻥이구나 하고 이해를 해요. 그런데 님은 도리어 그 구경꾼이 말도 안되는 일을 시켰다고 구경꾼 탓을 하고 있어요. 전능이 모순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걸 보여주었으면 현실적으로 전능이 말도 안되는 거라고 이해를 해야 하는데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고 도리어 남 탓을 하고 있으니 원. 그것도 자신이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던 남의 얘기를 전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 끌어오는 자가당착을 보이면서 말이죠.
전능성의 의미가 한 가지 뿐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부류는 아마 fkwhjtls님과 같은 수준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
전능의 역설을 논할때 전능성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상황도 일으킬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 무엇을 포함시킬 것인지 자체가 또한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아퀴나스는, 전능자가 전능하기 위해서 굳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면 전능한 것입니다.
여기에 비논리적인 것까지도 전능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비논리를 요구하는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을 일으키는 능력도 전능의 범위에 포함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모순이 있고 없고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전능합니다.
한편 러셀의 '들 수 없는 돌'에 관해서.
처음에는 전능자는 모든 돌을 들 수 있다라고 정의해 놓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오히려 어떤 돌을 들 수 없어야 전능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즉 전능함의 의미를, 돌을 들 수 있음에서 들 수 없음으로 재정의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들 수 없는 돌' 방식 논증의 타당성 여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능하다면 전능하지 않은 상황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전능이다. 뭐 이런 식이죠.
여튼 전능하지 않을 능력도 굳이 전능의 범위에 포함시킨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는가?
위의 제 댓글의 보너스가 개그로 보였다면 fkwhjtls님의 독해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네요. ^^
어떤 주장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용어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처럼 '전능이라는 단어자체가 모순이다' 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능' 의 단어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따라서, 전능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범위를 특정하지 않은 주장 전개는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능'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능의 범위에 해당하는 '어떤 일' 을 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주장의 타당성 여부가 갈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몇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썰을 풀었던 것이지요.
또 한편으로, 어떤 상황을 일으킬 수 있는 힘과, 실제로 상황을 일으킨다는 것 또한 구별됩니다. 그리고 논리적/비논리적 할때의 논리의 정의와 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주장의 전제가 되는 용어들의 개념을 정의하고 확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주장이 전개될 가능성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fkwhjtls님처럼 무턱대고 의례짐작으로 한가지 주장만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사고방식이지요.
나는 이러이러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견을 제시한다 라고 처음부터 명확히 하지 않은 건 제 잘못이긴 하죠. 이 때문에 여러 의견들을 함께 제시한 제 주장이 일관성이 없게 비춰질 수도 있었겠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
청수님이 글을 해석하는 것을 보면 일차원적이고 표면적인 해석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한 때 초등생들이 재미삼아 '바보'라는 단어를 '바다의 보배'로 바꿔서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한 초등생이 '나는 바보다' 하고 동급생들앞에 자랑스럽게 말했던 상황이 있었다고 칩시다.
이 때 청수님 해석법을 보면 '쟤는 바보멍충이다' 이런식으로 해석한다는 거죠.
당시의 배경, 문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이것이 청수님의 평소 학습법에 의해서일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청수님의 내면에 고착화된 어떤 불신으로부터 형성된 현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해석과 이해 및 입장의 차이 때문에 청수님과 대화를 시도하다보면 불필요한 에너지가 낭비될 때가 많음을 느낍니다. 따라서 저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 표출과 궁색한 답변을 회피하기 위한 일타쌍피의 방편으로 인신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좋았으나, 그것도 수준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거나, 최소한 지금까지 수준을 보여준 사람의 글이라야 정신적인 데미지가 1이라도 들어올텐데, 당신의 수준은 이미 몇몇 글로 다 드러났기 때문에 그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데미지는 커녕 비웃음만 나오네요.
그리고 바이블이 무슨 깊은 내용을 지닌 책도 아니고, 수많은 모순들로 가득찬 책이어서 모순들을 지적하며 설명하면 정상인이라면 일차원적으로만 봐도 구라라고 생각하고 침을 뱉어 마땅한 책입니다. 그래서 전 절대 성경이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성스럽지도 않고 경전으로 불릴만큼 가치있는 내용도 들어있지 않아서 그냥 바이블로 씁니다. (고대 사막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름대로의 배려임)
특히나 이 게시판의 사람들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며 딱 눈에 띄는 모순만 보여줘도 정신줄 놓을 텐데, 말장난 가능한 신학적 해석들을 주제로 선택해서 도망칠 뒷구멍 만들어 줄 이유는 없지요. (가생이에서 히브리 원어까지 써가며 tXcup과 지X엘, 딱 둘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둘 다 단어의 의미를 취사선택하며 못알아들은 척하며 어거지를 씀. 내가 그런 사람들과 아까운 시간 투자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아주 간단한 수준에서 끊어버립니다.^^)
베XX칩이나 하X메X저가 처음에는 토론 운운하다가, 나중에는 눈 가리고 귀 막고 복붙만 하게 된 걸 보면 딱 수준이 보이죠잉?
아래와 같은 아주 뻔한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믿는 사람들에게 내가 뭘 더 이야기할까...ㅉㅉㅉ
마태복음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부활 소식을 알게 된 후, 여인들의 반응 :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감
(마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 28: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마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 :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부활 소식을 알게 된 후, 여자들의 반응 :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함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막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막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막 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막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
(막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막 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누가복음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 :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
부활 소식을 알게 된 후, 여자들의 반응 :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알림
(눅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눅 24: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눅 24: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눅 24: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눅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눅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눅 24: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눅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눅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한복음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 : 막달라 마리아
천사와의 접촉 : 공관복음에서는 천사, 혹은 천사로 보이는 인물이, 여자들이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한 순간에 나타나서 부활의 소식을 알리지만, 요한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를 먼저 만나지 못하고, 곧장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알림. 천사는 이후에 등장함.
(요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요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요 20: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요 20: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요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요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요 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이 밖에도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제자들이 알게 된 후 베드로가 가장 먼저 무덤에 달려가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보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달려가서 무덤을 확인한다고 나옴.
여기서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이라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
-------부활한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
마태복음 : 예수의 부활소식을 접한 여인들의 에피소드 이후에 아무런 상황 설명도 없이 아래의 구절이 나옴. 갈릴리의 한 산에서 예수를 만남.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가복음 : 제자 중 두 사람이 시골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남, 다른 제자들과 만나는 장소는 언급되지 않음
(막 16: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누가복음 :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는 도중에 예수를 만남, 나머지 제자들은 마태복음과 모순되게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나옴.
(눅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눅 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중략-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눅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요한복음 :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약속한 산으로 예수를 만나러 갔다고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을 피해 건물 안에 피신해있고, 예수가 그들에게 먼저 가서 모습을 드러냄.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모순 해결해주겠다던 세상의X과 파X한은 왜 해결은 안해주고 한명은 수준 타령만 하고, 한 명은 아예 잠적하고...
님도 그들처럼 빤스런 하는 건 아니지요?^^
빤스런 하면 오랫만에 제 주특기인 쪼이기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