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글은 한잔 걸치고 해야 의욕이 충전되는 듯 합니다
종철게에서 서식하다보면 소위 "빡침"의 대상을 만나기가 쉽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 다른 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실거라 봅니다
그런데 "빡침".. 즉 분노는 일종의 내 무식에 의한 반응이기도 한 듯 합니다
도대체 이 또라이 새끼들은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내가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단이나 방법이 있다면
화를 내지 않고 그 방법을 사용할테고 그게 통해야 하는데..
상대가 논리를 이탈해서 그게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대응책이 뭔지도 모르니까 발생하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반응인 듯 합니다
이걸 좀 해소시킬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제목과 같은 주제를 꺼내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요샌 저 제목과 같은 구별이 되는지라 저 "빡침"이
개인적으로는 별로 발생하지 않는 듯 해서 효험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은 대부분 물리세계와 이념세계에 양 다리를 걸치고 살아갑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물리세계가 객관의 세계라면
이념세계는 주관의 세계가 되겠지요
이념세계는 곧 개인들의 정신세계라고 보셔도 무방할거라 봅니다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물리세계와 이념세계의 구별을 잘 못합니다
물리세계가 이념세계와 얼마나 다른지는 이런 질문을 사용하는게 유효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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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M 쯤 밖에서 큰 나무가 부러질때 "우지끈"하고
소리가 나는건 물리적 실재일까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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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물리적 세계에선 저런 "소리"가 물리적 실재가 아닙니다
큰 나무가 지면에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공기의 파형이 우리의 고막에
전달되어 고막에서 뇌로 전달할 때 우리 뇌가 "소리"로 인식시키는 것 뿐이죠
그래서 공기가 없으면 공기의 파형이 발생하지 않으니 소리가 발생하지 않으며,
거시적으로 본다면 뇌와 고막을 가진 존재들이 없다면 "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리"는 물리적 실재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여러사람들이 이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요
사회의 기초적인 정의를 "나와 타인의 관계이자 그 집합"이라고 본다면,
이 전제하에서 사회적 실재라고 불릴 뿐입니다
우리가 당연시하게 믿고 있는 것 오감..
즉 시각,청각,미각,촉각,후각에 대해서 우리가 믿고 당연시하는 세계가
실재의 물리세계와는 이런 차이를 갖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아무 전제없이 실존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닙니다
이것은 실존하죠. 사회적 실재로서 말입니다
제가 이념세계라고 부르는 영역은 사회적 실재를 뜻합니다
돈이 실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물리적 실재로선 단순 인쇄물의 종이쪼가리지만
사회적 실재로서는 인간의 삶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죠
인간에게 사회적 실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회적 실재 중 무엇이 중요한가를 형성한
현실 경험을 개인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개인의 이념체계를 형성하는 동기이자 삶의 적지 않은 지분이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각자의 그럴만한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기도 하고
화자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지만
그것이 각자에게 중요하다는건 당연한 얘기일 겁니다
그저 청자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화자의 이런 이념체계와 그 파생반응만 접할 수 밖에 없는데,
일단 확인되는건 화자의 반응과 이념체계일 뿐이니,
이를 화자의 이념세계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각자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매개로 형성한
이념체계를 갖게 되는건 맞을거라 보는게죠
왜냐면 인간의 뇌는 "예측"이란걸 안하고는 불행하기 쉬운 현실에서 살고 있고,
각자 자신이 접한 지식 내에서 조우한 현실에 예측을 위한 판단을 지속하니,
그것이 고착화를 통한 내면화를 진행하여 개인이념의 "체계"를 형성할 겁니다
결국 이런 이념체계가 형성된 것은 자신의 인식체계로서
살아가는 생존 체계이기도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한편
이게 이상하게 형성중인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뜯어 말리는 시도가 해소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미 이상하게 형성된 사람에게 우리는 무능합니다
이 게시판에 그런 존재가 그걸 보여주죠
하지만 이 해결책은 아직 인류가 해결못한 커다란 숙제기도 합니다
결국 그들에겐 합리가 현실의 해결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그저 대상에 따라 우리가 합리를 주고 받을 대상과
아닌 대상을 구별하는게 필요하다는 통계적 학습..
즉 경험이 현재로서의 지혜일 필요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있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건 타인과의 거리조절이라고 봅니다
말이 통할 상대에게 합리를 사용하고,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에게 분리를 택하는게 거리조절 일니다
이런 구별없이 막연히 인간에 대한 동등한 솔직이나 도리..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나은 내 삶을 위해서
이렇게 보는게 현실세계를 유익하게 살아갈
정상인의 시각으로서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