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8-12 19:36
조회 : 398
|
요세푸스(37-100) 그는 누구인가? 요세푸스는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지 7년만인 37년에 태어났다. 외가 쪽으로 하스몬가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고, 히브리어 이름은 요셉 벤 마티티야후였다. 요세푸스는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조차 그를 찾아와 도움을 구할 정도로 율법에 능통했다. 26세에 유대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로마에 건너갈만큼 헬라어 실력도 뛰어났다. 66년 열심당원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갈릴리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투 중 그는 갈릴리의 요타파타에서 로마군에 포위되었다. 그와 함께 동굴에 숨어있던 동료들은 로마인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죽음들을 결심하였다. 이때 유대인들은 요세푸스의 제안으로 먼저 제비에 뽑힌 사람이 다음에 뽑힌 사람에게 당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제비뽑기에서 요세푸스는 최후까지 살아남은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요세푸스는 남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로마군에 투항하였다. 로마군에 투항한 요세푸스는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그가 머지않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것임을 예언하였고, 실제로 베스파시아누스는 68년 네로의 이후 부하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유대인과의 전쟁은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서 70년에 마무리되었다. 요세푸스는 이들 부자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한 공을 인정받아 로마로 건너가 플라비우스라는 황제가문의 이름까지 얻고 황제의 보호아래 남은 여생을 보냈다. 요세푸스는 전쟁이 끝난 뒤 75년경에 {유대인 전쟁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유대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로마인들을 위해 인간의 창조부터 네로 황제 때까지의 역사인 {유대인 고대사}를 저술하였다. 그 외에도 요세푸스는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을 남겼다. 요세푸스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1세기 당시 이스라엘의 유일한 역사가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요세푸스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유대인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세푸스의 저작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의 손에 의해 보존되어 왔다. 이상...
|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