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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12 19:44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예수에 대한 증언
 글쓴이 : 돌통
조회 : 1,095  

우리는 예수에 대해 주로 4대 복음서로 알게된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 종교적이지 않고 역사,학자 등에 의해서 예수에 대한 기록은 있을까?  그러면 진실에 더한층 가까워질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쨋든 그시대에 실제로 요세푸스란 재미있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예수에 대한 글을 썼는데 한번 살펴보는것도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100)의 예수에 대한 증언


 
비기독교인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책 {유대인 고대사}(Antiquities, 1833)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시대에 예수라고 불리는 현인이 있었다. 그의 행실은 선하였고, 그의 학식은 뛰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었던 자들은 그의 제자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삼일만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보도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놀라움으로 자세하게 말했던 메시아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그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그리스도인들 족속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At this time there was a wise man who was called Jesus. And his conduct was good and his learning outstanding. And many people from among the Jews and the other nations became his disciples. Pilate condemned him to be crucified and to die. And those who had become his disciples did not abandon their discipleship. They reported that he had appeared to them three days after the crucifixion and that he was alive; accordingly, he was perhaps the Messiah, concerning whom the prophets have recounted wonders. And the tribe of the Christians, so called after him, has still to this day not disappeared. translation of Shlomo Pines.
 
또 요세푸스는{유대인 고대사}(Antiquities, 2091)에서 야고보의 형제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아나누스는 베스도가 죽었고, 알비나스가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호기를 맞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의 판관들을 소집하였고, 그들 앞에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어떤 다른 자들을 불러내어 율법을 범한 자들로 고소하고, 그들에게 돌로 치는 형벌을 받게 하였다."
 
 
. . . . Possessed of such a character, Ananus thought that he had a favourable opportunity because Festus was dead and Albinas was still on the way. And so he convened the judges of the Sanhedrin, and brought before them the brother of Jesus, the one called Christ, whose name was James, and certain others, and accusing them of having transgressed the law delivered them up to be stoned. . . .
trans. Louis Feldman.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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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가생 19-08-12 21:20
 
난 예수가 실존했다 믿는 사람임.
하지만 요세푸스의 글은 절대 증거가 되지 못함.

위 영문이 요세푸스의 헬라어원문 번역이 아니라 10세기 아랍어번역이란 사실이나
11세기 이전의 복사본이나 1세기 원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댓글에 언급하지 않겠음.
그냥 한글로 번역한 부분에 대해서만 지적한다면.

"They reported that he had appeared to them three days after the crucifixion..."
그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삼일만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보도하였다.

한마디로 지 눈으로 본 게 아니란 말임.
그렇게 말했다고 들었단 말임.

"...accordingly, he was perhaps the Messiah..."
따라서... 메시아였을 것이다. (X)
그말에 따르면... 어쩌면 메시아였을 수도 있다. (O)
그말에 따르면... 어쩌면 메시아였을 지도 모른다. (O)

말에는 아가 다르고 어가 다름.
지청수 19-08-13 06:59
 
요세푸스의 기록은 조작이라고 밝혀진 지 수십년이나 지났고, 이 게시판에서도 수도 없이 올라왔는데, 교회에서는 아직도 이걸 가지고 세뇌... 아니 설교하나봅니다.ㅋㅋㅋ




요세푸스 증언의 실체 




요세푸스의 첫 번째 저서로는 '유대 전쟁사'가 있으며, 여기서 그는 AD 66~73 년에 일어난 독립 투쟁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이 아주 세밀한 것은, 본인 자신이 그 전쟁의 와중에 중요 인물로 활동 했기 때문이다. 
이 책중 어디에도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두 번째로 그의 자서전이 있다. 
자신의 출생 배경 부터 시작 해서 로마에 항복하고 그들의 세력에 포섭된 자신의 합리화와 미화를 꾀하고 있다. 

세 번째의 책으로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가 있는데 예수에 관한 유일한 자료가 이 책의 복사본들에 들어 있다. 
이 책은 아담과 이브로 시작되어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 시대, 출애굽을 망라하며 독립 전쟁 직전 (AD 66) 까지의 유태 
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책 뒷부분에 문제가 되는 예수 인용구가 있는데 그 것 들을 보기로 하자. 




첫 번째의 구절이다 

"유태 지방의 행정 장관 "페스투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황제는 "알비누스"를 그 후임으로 파송한다. 그 와중에 "아그립바" 왕이 "조셉"의 대제사장 직을 박탈하고 "아나누스"의 아들 또 다른 "아나누스"를 그 자리에 임명한다 

..... 

그는 "사두개"파로 범법자를 다루는 데 매우 엄하였다. 

..... 

그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여 "산헤드린" (Sanhedrin - 바빌론 유배 이후 생겨난 제사장, 법관들의 회의로 종교적 문제, 사법, 형법을 다루는 최고 기관)을 소집한다. "페스투스"는 죽었고 "알비누스"는 아직 노상에 있음을 기회로, 그는 즉 구세주라 칭함 받는 예수의 형제, "제임스(야고보)"와 몇몇 다른 인물들을 산헤드린 앞에 소환한다. 그들을 정죄하여 돌에 맞아죽게 한다. 의식있는 시민들이 이를 못마땅히 여겨 왕에게 탄원하고, 그 중 몇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고 있는 "알비누스"에게 마중을 나가, 그에게 행정 장관의 동의 없이 소집된 산헤드린의 불법성을 고한다. 

..... 

"알비누스"가 대노하여 서신을 보내자, "아그립바" 왕은 "아나누스"의 대제사장 직을 박탈하니 그가 대제사장 직을 수행한 지 3 개월 만이다. 
"댐네우스"의 아들 "예수"(다른 예수임 -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상당히 흔한 이름 이었음)가 대제사장이 된다" ['유대 고 대사' 20 번째 책 9장 1절] 





문제의 구절만 다시 본다 



"즉 구세주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제임스 (.... brought before them the brother of Jesus, who was called Christ, whose name was James)" 

이 짧은 구절 속에 나타나는 예수는 성경 상에 나타나는 예수를 지칭하고 있는 것 같다. 

"구세주라 불리는" 구절과 "...형제 야고보" 의 구절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또 하나의 두 번째 구절을 보자, '유대고대사'를 통털어 예수 인용구는 이 두 구절 뿐 이다. 







"그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이적도 많이 행하고 훌륭한 선생이어서, 사람이라고 여길 수 가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현인이었다. 

많은 유태인과 이방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탄복하였다. 그는 구세주 였던 것이다. 

우리가 빌라도 총독을 움직여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그는 3일만에 부활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 크리스토의 이름에서 연유된 크리스찬이라는 무리들이 이런 연고로 오늘날까지 소멸되지 않고 있다." 



[유대고대사 18 번째 책 3장 3절]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와 얼마나 정확히 부합되는 묘사인가? 하지만 그 구절들은 중세부터 현대에까지 끊임없는 조작시비를 불러일으킨 부분이다. 원래에 없었던 구절이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동안 덧붙여진 것이다. 이 구절들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의 역사적 배경을 골드버그의 서술로 먼저 간단히 훑어 보자. 





AD 93: '유대고대사'가 로마에서 발간되다. 



93년에 발간된 원본들에도 문제의 구절이 들어 있었을까? 

유대고대사는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원본들의 권말에는 "티투스" 황제가 직접 서명을 해 주었고, 발간을 윤허하였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 원본들이 아니다. 원본들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세대에 전해 내려온 것은 이 원본을 베껴 쓴 복사본들이다. 그나마 가장 오래된 복사본도 10 세기경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거의 1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 얼마나 충실되게 우리에게 전달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과연 1세기 말의 연대기와 10 세기에 만들어 진 복사본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복사기가 없었던 시절이었음을 명심하라. 



220~250년경: 유명한 초기 기독교 변론자인 오리겐(Origenes. '오리게네스'라고도 불림)은 헬라적 신화를 차용해서 예수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하는 이교도들에 대항해서, 그리스도의 변증적(辨證的) 저술로서 '첼수스에 대한 반론(反論)'(Contra Celsus)을 썼다. 이책에서 그는 요셉푸스의 첫번째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두번째 구절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 한다. 



324: 추기경 '유세비우스'가 처음으로 두번째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 내용은 현존하는 복사본들의 내용과 거의 다름이 없다. 



10 세기: 아랍 역사 학자이자, 아랍 기독교인이면서 추기경인 '아가피우스'가 두번째 구절을 인용한다. 

그런데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기독교 취향이 훨씬 제거된 그의 인용구를 쉽게 풀어서 다시 보자. 



"유대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대인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구세주였던 것 같다" 



16 세기: 1500여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오다, 16세기에 들어 와서야 '조셉 스칼리거'라는 인물이 두 번째 구절의 진위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너무나도 기독교 색채가 짙다는 것이었다. 



17 세기: '리차드 몬테규' 추기경이 '그는 구원자였다'라는 구절이 훗날 기독교인이 복사 과정에서 덧붙여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1737: '위스튼'이 '요세푸스'의 저술들을 번역하면서 '요세푸스가 유대인 기독교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 전체가 원래 그에 의해 쓰여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8세기~ 20세기 초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구절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위조되었다고 주장한다. 



1929: '대커리'가 위조설을 지지하면서, 또 '누가복음'과 '유대 고대사'에 공통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누가'와 '요세푸스'의 상면 가능성을 주장한다. 



1931: '아이슬러'가 기독교 검열 하에 많은 부분의 삭제가 있었다며 그 나름대로 재수정 복구된 구절을 제시한다. 



1941: '마틴'이 부분적인 위조를 지적하고 나머지 부분은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1954: '폴 윈터'가 위조된 곳은 세 곳 뿐이며 나머지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세 군데 위조는 "그는 구원자였다",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의 두 구절과 뒷 부분의부활과 예언에 관한 구절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많은 공감을 샀다. 



1960: '콘젤만'이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 내포된 신앙관과 문제의 두 번째 구절간에 공통성을 발견하고, 두 번째 구절 전체가 기독교인에 의해 위조됐다고 주장한다. 



1963: '펠드만'이 거의 모든 부분이 정확하다고 단정한다. 



1971: '파인스'가 9~10 세기 아랍 및 시리아 본(상기한 '아가피우스'의 구절)을 발견하고, 이들 사본에는 "구원자" 운운의 구절과 "인간이라 부를 수...." 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들어 이것이 위조되지 않은 원본 기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973~1983: '렝스토푸'가 '요세푸스'의 저술을 집대성 재구성하여 용어 색인 체계를 만듦으로 학자들의 연구에 편리한 도구로 쓰이게 한다. 



1984: '버즈올'이 '렝스토푸'의 색인 체계를 이용하여 두 번째 구절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요세푸스'의 문체와 너무 다르므로 두 번째 구절 전체가 위조라고 주장하다. 



1991: '마이어'가 '폴 윈터'의 설을 지지하다. 즉 세 군데만 위조됐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현재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5: '골드버그'가 두 번째 구절과 누가 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 (예수가 부활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 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는 컴퓨터를 동원하고 통계학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그의 연구 결과는 예수 신화설과 상치된다.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원본 그대로라면, 그 자체로 예수의 실체적 존재는 객관적인 역사 학자 요세푸스에 의해 증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의 모든 학자들이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다. 신화파에서는 전체가 다 위조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께름직한 것은 '유대고대사' 복사본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의 관리 하에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초대 교부들과 기독교 변증가들은 왜 요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초대 기독도들은 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각 종파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 예수의 실존과 그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은 본인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좋은 증거물을 제시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구절은 324년이 되어서야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처음으로 인용 되었다. 

첫 번째 구절은 그 전에 '오리겐'에 의해 230~250년 사이에 와서야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유대고대사가 발간된 게 93년경이니까 거의 140~250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에 기독교 변증가들은 연대기를 읽지 않았을까? 

유대고대사는 초대 기독도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었고 소중히 여겼다. 초기의 기독교는 이방종교에 의해서 수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무수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읽었던 사본에는 문제의 구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백년이 넘도록, 요세푸스의 저술을 잘알고 있던 초대 교부들은 상기의 증언 귀절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동 구절이 요세푸스의 저술에 있었다면 그들은 도전자들과의 논쟁에서 그것을 재빨리 인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 구절은 그 저술에 없었다. 요세푸스의 저서를 읽어 본 오리겐도 요세푸스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동 구절은 기독교 최초 역사가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언급 되었다. 동 구절은 그의 조작으로 사료된다. 



"유세비우스는 신앙의 명분 아래 문서 변조를 지원 하였고 요세푸스외의 여러 저술가들의 책들도 변조시켰다"[마샬 거빈 (Marshall J. Gauvin)] 



그리고, '오리겐'은 첫 번째 구절은 읽었는데 두 번째 구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은 그 후에 첨가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요세푸스'의 책 '유대전쟁사'는 '안티오코스'의 예루살렘 점령 부터 AD 70 년의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내용을 '유대고대사' 책에서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빌라도'가 군중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등 다른 부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서술되었는데 '유대전쟁사'에서는 유독 상기의 예수 인용구들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유세비우스' 추기경이 처음으로 인용한 두 번째 구절은 '조셉 웰레스'에 의하면 유세비우스 본인 스스로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조셉 웰레스'는 많은 연구 끝에 당시 교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서 변조의 행태를 캐어 낸 인물이다. 그는 문서 변조의 대표자로 '유세비우스' 추기경을 꼽았다. 



유세비우스 자신도 그의 저서 복음적 증명(Evangelical Demonstr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 만으로도 충분 하다. 하지만 유태인 '요세푸스'를 여분의 증 인으로 이용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usebius, Ev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p.124) 



유세비우스 자신도 그것이 조작이었음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는 장황설을 늘어놓는 작가였다. 

그는 보다 중요성이 적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썼다. 예수에 대한 이 구절이 이토록 짤막한 것은, 따라서, 이것이 거짓된 것이라는 강한 논증이다. 



예수에 대한 부분만큼은 선행한 구절이나 뒤따르는 구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그 구절은 유대인들에게 닥친 재앙에 관한 이야기들의 모음들 가운데에 나온다. 즉, 그 부분의 위치는 그 역사가의 글에 공간을 만들기 위한 개작의 손길에 의해 나뉘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요세푸스는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므로 일정한 계시의 기간에만 이루어진 것이다. 즉 모세로 부터 아닥사스다(Artaxerxes, 465 ~ 424 B.C.)왕 때까지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으며, 유대교의 제사장이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술에서 그 당시에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많았다고 기술했으며,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던 그는 그들을 모두 사기꾼으로 간주했다. 



"파두스가 유대의 총독이던 시대에, 튜다라는 이름의 어떤 사기꾼이 많은 수의 대중을 선동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소유 물을 가지고 요단강으로 그를 따라오라고 선동했다. 그는 그가 예언자이며, 그의 명령에 따라 그 강이 갈라지고 그들을 쉽게 건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유대고대사 20,97] 



"이집트에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자기가 예언자라고 선언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5퍼얼롱(furlongs) 떨어져 있는 올리브 산으로 나가자고 선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명령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줄 것이며, 그 때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대고대사 20,169~70,유대전 쟁사 2,261~62.] 



유대교의 사제였던 요세푸스는 메시아를 자칭했던 그들에 대해 사기꾼들로 평가했다. 그런데, 예수와 관계된 문제의 구절은 그가 예수의 신성과 기적,부활을 인정한 것으로, 요세푸스가 마치 기독교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이다. 다시 말하자면, 독실한 유대인이 기독교를 믿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요세푸스가 문제의 그 구절을 직접 기록했더라면, 예수도 위에서 언급한 사기꾼처럼 묘사했을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예수의 실존성을 증거한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매국노라고 볼 수 있는 요세푸스가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은 로마황제이다. 
유대-로마 전쟁때 패배하여 베스파시안 앞으로 끌려간 요세푸스는 그가 바로 유대인이 학수고대하는 메시아이며, 곧 로마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요행인지 몰라도 그의 예언은 적중하여 베스파시안은 69년에 로마황제로 등극한다. 황제는 예언에 대한 보답으로 요세푸스를 로마에 데려가 측근의 한 사람으로 삼았다 



역사와 이성의 모든 논증들은 그 구절이 염치없는 위조임을 증거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직한 기독교 학자들은 누구나, 그것을 첨삭된 것으로써 버려왔다. 



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많은 추가적인 구절들과 함께 첨삭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을 쓰며, Dean Farra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세푸스가 현재 있는 것과 같은 구절을 전부 썼다는 것은, 제대로 된 정신의 비평가라면 절대 믿지 않는다.” 



Chambers'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세푸스의 유명한 그 구절은 일반적으로 첨삭임이 인정된다.” [The Chambers Encyclopedia] 



Warburton 주교는 그것을 “비열한 위조이며 매우 어리석은 것이기도 하다”며 비난했다.
돌통 19-08-13 14:10
 
헬로가생님 전 돌통 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분명 예수란 이름은 흔했고 또한 전 예수라는 사람이 그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이 실제로 살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요세푸스의 글이 증거가 되지 못할수도 있지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헬라어로 원문이 번역된것이 10세기에 아랍어로 번역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왜불가능합니까?
11세기 이전 복사본은 있다고 대학교 다닐때 교수님,전문가분들 한테 그것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근거로 11세기 전에 복사본이 없다고 생각하는지요?
그리고 요세푸스가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한것은 그건 당연한 가능성 이죠..  예수와 만날 인연이 있는게  가능성이 거의 매우 없다는게 더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실이죠.
그렇습니다.  요세푸스는 예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유명했고 간접적으로 듣고 썼을 겁니다.  그러니 헬로가생님이 말했듯이  예수가 메시아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말못하겠네요.  즉 예수가 메시아일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즉 그 조금이 진실이라면 예수는 진짜 메시아 일것이다가 성립되네요.
     
이리저리 19-08-14 09:43
 
"예수가 메시아일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이 말이 어째서 갑자기

"예수는 진짜 메시아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바뀌죠?

진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결국 양쪽 모두의 가능성을
열어둔 가정 인데, "조금의 가능성" 이 어떤 중간 과정을 거쳐서
"진짜 메시아일 것이다" 로 뜬금없이 변화하나요?

"조금은 있다" 는 건 말 그대로 가능성이 희박하단 의미예요.
바꿔 말하면 차라리 "메시아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 정도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11세기 이전 복사본이 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어디까지
그 사본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고, 어떻게 확인이 가능한지 여부를
명확히 보여주셔야 근거로서의 효력이 생기는 것이지, 다른 이가
모르는 당신만 안다는 그 대학 때 교수님과 전문가들을 내세워서
막연한 권위에의 호소를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있다고 들은 것" 과 "있는 것" 은 완전히 다릅니다.
돌통 19-08-13 14:54
 
지청수님 전 돌통 이라고 합니다.

님의 많은 지식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제 의견을 써보려고 합니다.

첫번째에서 그렇습니다.  '전쟁사'  는 자기가 직접 체험한 것이니 더욱 정확하고 세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사' 에  굳이 예수의 기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좀 어불설성 같습니다.  전쟁을 중심으로 쓰는 글에서 예수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것 아닙니까.!!

둘째는 합리화 와 미화를  꾀 했다고 하는데  그건 여러 복잡한 상황이 있었을수도 있고 개인의 성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그것으로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지청수님의 글을 읽어보면 그럴듯하고 타당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에도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있고  그건 당연이  예수의 일들은 현실적으로 일어날수 없는 것들 입니다. 

그러니 종교에 예수라는 인물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확실히 아니라 라는 근거도 부족합니다.  요세푸스의 글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 조작이나 없는 내용이 글을 덧붙였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사실이라고 해도 꼭 예수를 일반인으로 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럴가능성도 충분히 매우 높습니다.  글에서도 보듯이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것이 아닌 소문이나 간접적으로 취해서 글을 썼다고 해도 그게 확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역부족이죠..

그리고 그가 예수를 믿지 않는것은 그는 예수를 직접 보지 못했고.. 그는 지식인 입니다. 그리고 현실주의자 였다면 당연이 예수의 일들은 믿지 않은것은 당연한것입니다. 

아니면 관심이 없거나 그냥 시큰둥 했으면 그냥 간접적으로 듣거나 사람들의 말에..  이미 예수는 유명하니.    지금 아는대로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쓸쓰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요세푸스의 글들이  부분적인 조작이나 없는 내용들을 어떤목적으로 덧붙여졌거나 기타.. 등등..  이라고 해도  그게 확실히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요세푸스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또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그의 고대사에 쓴 글에 예수에 대한 비교적 긍정적으로 쓰인 것은 그만큼 예수의 일들이 당시 파장이 컸고 그럴가능성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라도 예수에 대해서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글이 후세에 부분적으로 조작되었다는 것도 명확하지 않고 또 그렇게 됬다고 해도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같은 말이지만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지청수 19-08-13 20:36
 
님이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나 신분을 위조할 수 있고, 다중이 놀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님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님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님은 위 글이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있는 그럴듯한 가능성에 대해서만 썼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런 발언은 위에 언급된 여러 학자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단어 하나하나까지 분석해서 연구한 내용들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시하는 매우 몰염치한 짓입니다.


학술적인 부분은 학술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정상인데, 님은 그냥 장광설만 늘어놓는 재주밖에 없는 듯 하니 더 본질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기독교의 신앙의 토대는 성경무오설입니다. 바이블의 근거가 바이블 자체가 된다는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도 안되는 궤변이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이런 논리적 오류는 보지도 못하고 덮어놓고 경전만 외우고, 종교에 빠져 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이블은 오류가 없지 않습니다. 반대로 수다한 오류 투성이로 되어 있고,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의 생애마저도 사복음서가 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죠.
그럼 마음의 준비하시고, 정신줄 단단히 부여잡고 밑의 내용을 보세요.




예수의 생애, 그리고 구원사역의 핵심은 다음의 사건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초림-십자가 고난-부활-(승천)-재림-심판

사복음서에 쓰여진 내용은 초림부터 승천까지인데, 안타깝게도 저자들이 입을 맞추지 못한 모양입니다.

초림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 둘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는 예수는 헤롯대왕의 칼을 피해 그의 부모들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거기서 헤롯대욍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헤롯대왕이 죽었다는 꿈을 꾸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마저도 헤롯대왕의 아들인 헤롯 아켈라오가 두려워서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갑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아기예수는 태어나서 정결례의 기한(40일; 레위기 12장)을 다 채우고 부모의손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서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고 원래 고향인 나사렛으로 갑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우구스투스의 호구조사는 언급되지 않고, 원래 나사렛에 살았다는 내용도 없이 베들레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 나사렛이고,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었다고 설정됨)

어? SB! 처음부터 이야기가 꼬이는데? 이것이 요즘 과학계에서 말하는 평행우주! 멀티 유니버스인가?????


십자가 고난 :
사복음서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으로 나뉘는 이유가 여러 사건들과 주장하는 내용이 상이하기 때문인데, 십자가 고난마저도 날짜가 서로 다릅니다.
최후의 만찬부터 십자가 처형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을 끼고 일어난 사건인데,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서로 다른 날에 예수의 체포와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고 쓰여져있습니다. (관련 검색어 :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부활 :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부터는 사복음서가 각각 다른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서 천사(the angel)를 만나고,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달음질 함. (달음질 도중에 부활한 예수를 만남)
마가복음 :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빈 무덤과 흰옷을 입은 청년(a young man)을 만나지만,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부활소식을 알리지 못함
누가복음 :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이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two men stood by them in shining garments)에게 부활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달려감
요한복음 :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만 보고 제자들에게 달려가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전함. 소식을 들은 제자 중 둘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고, 무덤 안에서 두 천사를 만남.



위 사건들은 말 그대로 사건입니다. 개인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사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다 달라!!!!!
와 ㅅㅂ!


덤으로 부활 후 제자들의 거취도 제각각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갈릴리의 한 산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나오고,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만났다고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해 피신해 있는 건물 안에 예수가 찾아왔다고 적혀있음. (마가복음은 장소는 나오지 않고,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가 나타났다고 나옴)



이 따위 설정충돌 저급 판타지를 믿느니 차라리 어벤저스를 보면서 아이언맨의 희생을 추모하고,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호빗들의 용기를 찬양하는 게 백 배 의미가 있을 겁니다.



다시 요세푸스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여러 학자들이 원문의 단어 쓰임새까지 비교해가며 연구하고, 컴퓨터와 통계학까지 접목시키며 연구한 내용들을 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도 없이 일개 가능성으로만 치부하며, '요세푸스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또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이라는 검증 불가능한 가정들을 추가하며 위 연구 내용들을 무시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헬로가생 19-08-13 22:48
 
99% 부정 가능성은 100% 불신.
하지만 1% 긍정 가능성은 100% 맹신.
ㅋㅋㅋㅋ

예수를 부정하지도 않았고
아주 간단히 학술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할 뿐이였고
번역의 오류를 지적했을뿐인 제 댓글을
이해조차 못하는 대댓글을 보고 댓글 달 가치를 못 느낀다능.
대화가 될리가 없어요.
지능의 문제임.

글 쓰는 게 태지스러움.
               
지청수 19-08-13 23:26
 
헬로가생님도 그러시겠지만, 저 역시 당사자 보라고 글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보라고 쓰는 글이어서.ㅎㅎ

잘 아시잖아요? 아무리 논박불가능하게 완벽하게 글을 써도 이에 굴하지 않고 셀프핍박받는 사람들이라는 걸...

태지가 왕년에 기독교 까고 다닌 적이 있어서 태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그 편견을 배제하고 차근차근 읽어보니 진짜 태지스럽네요.ㅋㅋㅋ
                    
베이컨칩 19-08-14 10:18
 
반갑습니다 지청수님.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의 명수도 조금씩 다르지요.
지청수님이 쓰신 오류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에요.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판단하다가는 크게 후회해요 지청수님.
                         
헬로가생 19-08-14 10:28
 
오류가 사소하다라.
전지전능이 내린 단 하나의 성경 속의 내용의 오류가 사소하다니 푸하하하
                         
이리저리 19-08-14 12:03
 
사소한 오류는 오류가 아닌 게 되는 건가요?

그 종교에서 협박이 빠지면 섭섭할 지경이네.
논리에서 밀리니 어떤 식으로 후회를 하는지
상세히 말은 못하겠고 대뜸 그러다 후회함!!
정도의 샤머니즘 성향 짙은 저주만 내뱉다니.
          
akrk 19-08-14 08:51
 
일일이 말하기 지루하여 한 마디만 보태겠습니다. 나름 여러 내용들을 쓰셨습니다.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본인이 지적한 내용들에 대해서 기독교 학자들이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청수 19-08-14 11:34
 
'본인이 지적한 내용들에 대해서 기독교 학자들이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봤습니다만 납득할만한 신학자들의 주장은 하나도 없더군요.^^

첫번째와 세번째는 명백한 사건의 기록 오류이기 때문에 유구무언일 겁니다. 두번째 사건에 대해서 신학자들의 입장을 퍼올까요?

(요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4절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요한은 이 역사적인 시점에서 그 때를 다시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날과 시간이 공관복음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관복음은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다고 전한다(마26:17-30, 막14:12-26, 눅22:7-23). 유대인들은 유월절 안식일이 겹치기 전에 서둘러 예수를 처형하려 한 것과(요19:31) 유월절을 시작으로 무교절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처형이 없었다는 점(마26:5)을 고려할 때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공관 복음서와 요한복음이 사용한 달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관복음은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한 개인달력이었고 요한은 예루살렘의 공식달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정착되기 전이라는 것이다. 공관복음서의 저자들이 하루 전에 유월절을 먹었지만 의미상 유월절 식사로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 : 유월절이 유대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개인달력을 사용해서 날짜를 잘못 알았을 거야~ 물론 근거는 없어~ 합리화 하기 위해서는 이랬을 거라는 거야~

제 육시라 그런데 막15:25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제 삼시'였다.
(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마가의 제3시는 예수를 처형시킨 시간이 아니라 막15:24의 병사들이 제비뽑고 십자가형 이전에 태형과 조롱의 시간이 있어 상당히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로마의 시간법 즉 밤0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법을 따르고 마가는 일출을 시작을 구분으로보는 팔레스타인 시간법을 따라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본서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6시가 되고 마가의 것은 9시가 된다. 약간의 시간차가 줄기는 했지만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는다.)
결국 이러한 시간 차이의 문제는 현재와 같이 시간이 표준화 되어있지 않은데서 오는 것이다. 또한 그 시간을 보는 것도 하늘의 해만 쳐다보고 3시인지 6시인지 사람마다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론 : 요한이 시간을 착각해서 새벽과 아침을 구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비판에 대한 옹호를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근거를 찾아오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 아닙니까?
왜 비판하는 사람이 옹호하는 측의 자료도 다 찾아와야 하죠?
심지어 옹호하는 측의 자료를 찾아봐도 명쾌한 반론이 없네요^^
돌통 19-08-14 19:05
 
다..  잘 보았습니다..    다 나름대로 맞는말이고 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다들 어떤 틀을 가지고 계시고 지식도 많으셔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고 공감되고 여러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저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그냥 기독교,불교,코란,철학 이런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냥 아마추어 입장에서 조금 있는 지식으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 속마음은 이 혼탁한 사회에  성경에 있는 예수님 같은 분이 절대자의 아들이어서 실제로 성경대로 예수님이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그와 같이 의심도 회의감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은 안가게 되네요.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연히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이에 대한 관련글이 있어서 올리려고 하는데  (도올선생이 무조건 옳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도올 선생님은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자료가 되기도 할것같아, 글을 올릴까 생각입니다.
     
이리저리 19-08-15 02:14
 
기독교 이야기에서 갑자기 도올 선생 이야기를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은 적어도 국내에선 인문학의 거성이 맞다고 봅니다.
비단 인문학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넓은 분야에서의 지식과 사고 수준은
그 누구도 무시하거나 낮잡아 볼 수 없는 인텔리겐챠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지도 않고, 도올 선생의 주장에 대한 이견이 없지도 않죠.
실제 비판도 상당히 강하게 받는 분이기도 하고요.

요는 받아들이는 청자가 도올 선생의 강의에서 어떤 부분을 얼만큼 얻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유용하게 잘 활용하느냐일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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