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A.D 33년 이후 당시는 복음서가 기록되지 않았죠.
예수님이 승천하실 적에 내가 곧 온다고 하셨는데 그 "곧"이 예수님은 언약의 의미
즉 분명히 온다 그러니 종말론적 긴장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세상이 좋다고 세상에 마음 뺏기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곧 주의 재림이
임할 것처럼 살아라는 말씀이죠.
그런데 제자들은 그 곧을 시간으로 해석합니다. 금방 오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요한을 제외한 남은 사도가 모두 순교하자 예수에 대해
증언할 사람이 사라지는 위기가 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기록이 되는데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는 마가복음으로 대략
A.D 60여년경으로 말을 합니다. 이 시기에 도마복음이나 Q자료 라는 예수의 어록이 있다는
가설도 있지요. 아무튼 마가복음이 기록된 후 마가복음을 근거로 하여 누가복음
과 마태복음이 기록됩니다. 다만 마태나 누가는 자신들이 목회를 하고 있는
공동체(교회)적 상황에 맞게 마가의 기록과 자신들의 예수경험을 담아 복음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마태는 거듭난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기에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약성서 인용이 본문에 많이 등장합니다. 예로 이사야가 일렀으되 와 같이 구약
성서 인용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60여회가 넘는데 그것은 예수라는 분이 유대인
들이 그토록 바란 메시야가 맞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누가는 당시 버림받고 소외당한 계층 및 여인들 이방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기에 그런 소외된 자들의 예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누가복음에 기록(10장)되어 있죠.
그러다보니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나 부활 사건이라는 역사적 팩트는 존재했으나 이를
자신들의 공동체에 맞게 편집한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에 편집이라는 단어가 몹시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편집 속에도 하나님의 개입과 계시가 있다고 믿습니다.
예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기에 왕의 급에 맞는 동방의 박사들이 그 먼거리를
와서 경배합니다. 마태복음에서만 나옵니다.
반면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주님이기에 누가는 예수탄생 시 목동들
(당시 천민이었던 신분)이 와서 경배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사실을 갖고 자신들의 공동체 교회의 상황에 맞게 편집을 한 것입니다.
그런 예들은 너무나 많으니 서*석의 복음서 해석을 정독해 보길 권합니다.
고로 복음서 내에 예수의 기록이 조금씩 다른 것이 예수의 존재나 부활을 부정
할 일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문 3: 정말 예수가 오백 명 앞에 나타나셨을까? 나타나셨다면, 왜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예수가 오백 명의 군중 앞에 나타났다는 내용은 고린도전서 15장에만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 보면서 왜 바울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떨칠 수 가 없다.
나는 고린도전서 15장의 신뢰성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고 싶다.
무신론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 역사적 진실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 사건으로 두려움을 갖고 흩어진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모여 목숨을 걸고 에수의 증인으로 돌변할 수 있었는가?
2.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의 체험을 받은 사건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아무리 한 사람에 대한 충성이 크다고 해도 자신들의 목숨을 집단적으로 버리면
서까지 충성하는 이는 드문데 초대교회는 수도 없이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체험하여 그랬던 것일까? 집단 히스테리로 볼 수도 없다.
그들은 정상적 정신을 갖고 순교했으며 그들의 깊은 친밀함과 섬기는 사랑은
일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오백명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집단 최면에 걸려 예수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 중에는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만 그 부활을 기록했다고 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는
기록의 필요성을 그 누구도 갖지 않았습니다.
곧 온다 라고 승천하신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 누가 기록을 할 마음이 있었
을까요?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당시에 학식있는 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쓰는 일이 요즘처럼 쉬운 시대가 아니었음을 전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고로 부활에 대해 아무리 의문을 제기해도 기독교는 부활사건으로 시작되었고
부활사건으로 인해 성령이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 실제 마가다락방에서 이루어
지게 되었고 그 불씨가 예루살렘을 비롯 사마리아와 저 로마 및 전세계로까지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부활이 없으면 우리(그리스도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