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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15 03:45
본시오 빌라도, 그는 누구인가 (2)
 글쓴이 : 돌통
조회 : 238  

본시오 빌라도, 그는 누구인가 (2) 
 
 
복음서의 빌라도-문제점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묘사된 빌라도의 캐릭터를 논의하기 전에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복음서 내러티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복음서 자체보다는 복음서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창작물들은 4복음서 내의 서로 상충되는 수난 내러티브들을 적당히 각색해서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각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가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빌라도에 대한 이미지 역시 이런 창작물을 기반으로 형성된 경우가 다반사다.
 
 
 
한 예를 들어본다면, 모 위키에는 예수가 채찍질을 당한 것이, 빌라도가 유다인들의 동정심을 유발해서 예수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일부러 명한 것이며 따라서 빌라도의 어설픈 동정심 때문에 쓸데없이 맞은 것이라고 서술된 문서가 있었다.(현재는 필자가 수정해서 없어졌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이건 작성자가 영화 <패선 오브 크라이스트>의 묘사를 복음서 내용 그대로라고 오해해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 내에는 빌라도가 유다인들을 달래기 위해 예수에게 태형을 가했다는 묘사가 단 한 마디도 없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들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마르코 복음 15:15)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마태오 복음 27:26)
 
 
 
여기 보면 예수를 구해주려고 매를 쳤다는 구절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오히려 사형선고를 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매를 친 것이다. 이 채찍질은 특별히 예수에게만 가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처형 과정의 일부로, 원래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들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매부터 맞았다.
 
 
 
사형 선고를 내리기 이전에 매를 치겠다고 하는 것은 루카 복음과 요한 복음의 묘사다. 그런데 여기도 군중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매를 치겠다는 말은 없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주겠소 (루카 복음 23:16)
 
 
 
여기서 말하는 매질은 십자가형을 받을 죄수가 당하는, 반쯤 죽여놓는 태형과 용어 자체가 다르다. 이 태형은 일반 잡범에게 "몇대 쳐맞고 정신차려라" 정도의 의미로 치는 가벼운 매질이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요한 복음 19:1)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 하다 안되니까 데려가서 매를 치고 가시관을 씌운 뒤 다시 데리고 나와 Ecce Homo!를 말하고 또 풀어주려 하다 결국 밀려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영화 등으로 익숙한 내러티브는 요한복음의 묘사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실 군중들의 폭력성을 만족시키려고 심한 매를 쳤다는 서술은 없다. 복음서는 기본적으로 고대 문서고, 현대 문학처럼 복잡한 심리 묘사를 하지 않는다.
 
 
 
4복음서의 수난 내러티브는 각 저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목적에 맞게 특정한 신학적 목적을 위해 쓴 텍스트다. 따라서 같은 사건이더라도 그 서술은 상당히 다르며, 이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성서에 묘사된 빌라도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서 여기서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찾아낼수 있는지 보도록 하자.
 
 
 
루카 복음-갈릴래아인 학살 사건
 
 
 
4복음서 중 루카 복음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직접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 로마 권력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다.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선고한다거나 가벼운 처벌을 내리려 하는 묘사도 여기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마냥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바로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사건을 예수님꼐 알렸다.  (루카 복음 13:1)
 
 
 
이 사건의 진상은 더 이상 추가적인 기록이 없어서 알수가 없고, 요세푸스 등의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성도 파악하기가 힘들다. 빌라도가 이 갈릴래아 사람들을 왜 죽였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요세푸스의 시위진압 기사 등을 볼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대적인 학살은 아니고 소규모의 유혈사태였을 것이다. 이는 사실 본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피를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지난 글에 다른 역사가들이 서술한 빌라도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수난 내러티브의 빌라도-공관복음서
 
 
 
그렇다면 이제 빌라도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수난 내러티브를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는 빌라도가 어떻게든 예수님을 풀어주려 하지만 유다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옳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스토리이다. 그러나 이런 '유약한 빌라도' 상은 사실 창작물의 빌라도 이미지에 더 가깝다. 가장 먼저 쓰여졌다고 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마르코 복음서의 수난 내러티브는, 적어도 원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우선 빌라도의 심문은 빌라도가 예수에게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예수가 로마 권력에 위협적인 정치범임을 묻는 질문이다. 이에 예수는 "(내가 아니라)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라면서 모호하게 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을 고소하고 있지 않소?"하고 물었으나,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주곤 하였다.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오던대로 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거듭 소리질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단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마르코 복음 15:4-15)
 
 
일단, Dunn 선생이 지적하듯, 복음서들은 기본적으로 초기 교회 공동체가 로마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예수 죽음의 책임을 로마에서 유다인 사제권력으로 옮기려 시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의도가 들어간 문장들을 조심하면서 이 구절을 읽어보면 뭔가 우리가 흔히 아는 내용과 다른 점들이 눈에 띈다.
 
 
첫째, 가장 오래된 이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다거나,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죽을 죄를 찾지 못했다' 등의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둘째, 예수를 풀어주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는다. 군중들에게 예수와 바라빠를 내세워서 선택하게 하는 것도 애초에 군중들이 요구한 것이지 빌라도가 요구한게 아니다.
 
 
 
셋째, 마르코 복음은 예수는 종교지도자, 바라빠는 정치범이라고 구분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해당 문장을 유심히 보면 바라빠는 '반란군들과 함께' 갇혀있을뿐, 본인이 반란군이라는 말은 없다. 바라빠 본인을 반란군이라고 서술하는 것은 루카 복음서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빌라도 이미지는 상당부분 2차 창작자의 각색 외에도, 복음서 원문에 암시되있는 사회적, 정치적 현실이 우리에게 낮설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1세기에 복음서를 읽는 이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해설이 없이는 알기 어렵다. 그 점에 집중하면서, 그리스어 원문을 통해 이 부분을 연구한 최근 학자들의 중론은, 이 사건을 철저히 빌라도가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끌려가기는 커녕 자기 뜻대로 사건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다.
 
 
가령, 죄수 한 명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빌라도는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달라는 뜻이냐?"라고 답한다. 유다인의 임금이란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반역 수괴라는 말과 똑같다. 여기서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를 정치범으로 찍어서 칭하고 있다. 즉 빌라도의 물음이 당대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는 "아 그러니까 지금 로마에 반항하는 역적 수괴를 풀어주길 원하는거야?"이다. 그 군중들이 친예수파이건 친바라빠파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이 질문에 대고 "네"라고 답할 수 있었을까?
 
 
 
빌라도의 두번째 질문 "여러분이 유다인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는 더 노골적인 질문이다. 여기서 빌라도는 굳이 "여러분이 부르는"이라는 말을 붙여서 유다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반역 수괴에 대한 처벌은 사형 뿐이다. 여기 반대하는 쪽도 공범이 된다. Bond 선생이 지적하듯, 만일 빌라도가 "여러분의 종교선생인 예수를 어떻게 할까?"라고 물었다면 군중들의 선택지는 좀더 다양했을 것이다.
 
 
 
사실 마르코 복음서에 드러나는 빌라도의 이러한 화법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꽤 자주 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화법을 가리켜서 "답정너"라고 부른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조차도, 한국어 번역으로만 봐선 잘 알기 어렵지만 억울함이나 무죄의 탄원이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 예수를 직접 정치범으로 언급해놓고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는건 "어디 니들 입으로 한번 들어보자ㅋ"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서학자들 다수는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이 마르코 복음을 원사료로 하고 각각 다른 전승들을 추가하여 좀더 후대에 저술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중 빌라도가 직접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라고 선언하는 것은 루카 복음서에 나온다.
 
 
 
앞서 말했듯, 루카 복음서는 로마 제국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복음서이며 그리스도교 교회에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그 이유가 루카 복음서가 의도한 저자들이 비유다인 출신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로마 제국의 신민들에게 새로운 신앙을 전파하면서 "우리가 믿는 사람은 로마법에 따라 반역자로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하는건 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루카 복음서에서 빌라도가 맡은 역할은 기본적으로 로마 행정관으로서 예수는 로마법에 의해 무죄라고 선언해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걸 제외하면 루카복음의 빌라도는 앞서, 보았듯, 갈릴래아 인들을 학살하는 등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생각하는 우유부단하고 예수가 무죄임을 알고 있지만 소신껏 판결을 못 내리는 빌라도의 이미지 상당부분은 루카 복음서에서 왔다. 그 복음서의 저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복음서를 읽을때 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오래도록 반유다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안타까운 역사라 하겠다.
 
 
 
요한 복음의 빌라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상물을 통해 익숙한, 두번 세번 예수의 무죄를 선언하지만 그때마다 반대에 가로막혀서 결국 사형 선고를 내리는 빌라도 이미지는, 공관복음서에 독립된 전승을 다수 포함한 책인 요한 복음서에서 왔다. 앞서 언급한대로, 병사들이 예수에게 채찍질을 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한 뒤에(대체로 창작물은 병사들의 독단이거나, 빌라도가 군중의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그런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고 하는 유명한 전승과 그 뒤에도 예수를 풀어주려 하다가 실패하는 스토리 역시도 요한 복음서만의 내용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사형선고를 내린 뒤에 채찍질을 하고 바로 처형장으로 끌고 간다.
 
 
 
그렇기 떄문에 얼핏 보면 요한복음의 빌라도도 루카복음 못지 않게 예수에게 우호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수난 내러티브를 처음부터 꼼꼼이 읽어보면 뭔가 이상한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 점이 현대의 성서비평학을 완전히 거부해버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제대로 놓친 점이기도 하다.
 
 
 
일단 요한 복음의 예수 체포 대목은 다른 복음서와 상당히 다르다. 다른 모든 복음서에서 겟세마니의 예수를 체포하러 온 것은 '수석 사제와 원로들이 보낸 무리'였다. 루카복음은 여기에 '성전 경비대장'을 추가한다. 즉, 이들은 평소에 성전의 질서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유다인 성전경찰들이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의 서술은 다르다.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요한 복음서 18:12)
 
 
여기서는 성전 경찰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와 그 대장'이 등장한다. 한글 성경으로는 전혀 알기 어렵지만, 원문을 보면 미스테리가 풀린다. 그리스어 원문은 이 군대를 스페이라(σπεῖρα), 그들의 대장을 킬리아르코스(χιλίαρχος)라고 표기하고 있다. 스페이라는 당시 그리스어권 저자들이 로마식 편제를 갖춘 군대의 코호르스를 부르던 표현이고, 킬리아르코스는 로마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을 가리키던 표현이다. '로마군'이라는 언급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예루살렘에서 이런 편제를 갖추고 활동하는 부대는 빌라도가 지휘하는 로마 보조군밖에는 없다. 즉,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유다인 성전경찰과 로마 보조군이 공조해서 예수를 체포했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루살렘 사제들이 마음대로 로마군을 동원할 권한이 있었을리가 없다. 이 부대는 빌라도의 명령으로 출동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사제들의 지원요청을 빌라도가 승인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요한 복음서의 빌라도는 사제들이 예수를 체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허가도 해주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래놓고서 사제들이 예수를 끌고 오자 전혀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 뚝 떼고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라고 묻고 있다. 뭔가 그림이 상당히 이상하다.
 
 
 
이 점을 감안하고 요한의 내러티브를 읽으면, 빌라도가 정말로 진지하게 예수를 풀어주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기는 참 힘들다. 사실 W. Carter 선생이 지적하듯, 원문 읽기를 통해 드러나느 요한복음의 빌라도는 상당히 시니컬하면서도 시종 조롱으로 일관하는 캐릭터다. 빌라도는 몇번씩 예수가 죄가 없으니 풀어줘야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점차 강도를 높여서 예수와 유다인들을 모두 조롱하고 있다. 특히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가시 왕관을 씌워 조롱한 뒤 그 모습을 유다인들에게 보여주며 하는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요한 복음 19:14)"는 간혹 유다인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 연구자들의 입장대로, '왕 참칭자' 예수를 조롱하면서, 동시에 유다인들의 메시아 신앙 자체를 조롱하는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 내러티브에 비추어 가장 아귀가 맞는다.
 
 
 
사실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빌라도를 전혀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저 유명한 "진리가 무엇이오?" 문답도 마찬가지다. 이는 전혀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러 왔으며,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나가버린다. 여기서 빌라도를 대하는 복음서 저자의 태도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는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그의 말을 듣는다라고 했으나, 빌라도는 들으려 하지 않고 나갔다. 즉, 복음서 저자는 '빌라도가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날의 진실(?)
 
 
 
살펴본 바와 같이, 복음서 내의 빌라도 묘사는 일관적이지 않다. 이는 각 복음서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특수한 신학적 목적 및 그 복음서가 의도한 독자들,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군중들이 겁나서 십자가형을 선고하는 빌라도' 이미지는 상당부분 오독이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복음서를 철저히 그 내러티브에 따라 분석하였다. 그것이 과연 얼마나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지, 혹은 어떤 복음서의 서술이 가장 역사와 근접한지는 결론 내리기가 매우 힘들다.
 
 
 
예전에도 몇번 관련 글을 썼지만, 예수의 급진적인 하느님 나라 신학이 권력자들의 불안을 샀고, 그것이 예수의 체포와 처형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많은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바다. 그렇다면 복음서 내의 묘사와 유다인 역사가들의 빌라도에 대한 기록을 모두 종합해서 봤을때, 예수의 처형은 민감한 시기에, 잠재적인 정치적 위험인물을 유다인 권력자들과 빌라도가 합심해서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세푸스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이유에 대해서 "요한이 하는 일이 반란을 촉발하기 전에 미리 싹을 제거하는게 낫다고 판단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빌라도가 예수를 처형한 이유도 이와 가장 비슷했을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살펴본 유다인 귀족들과 빌라도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감안했을때, 예수 재판 당시 양측이 심각하게 아웅다웅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요한 복음서의 기록대로 빌라도가 사전에 체포를 승인하고 병력까지 지원했을 가능성도 제법 있다. 기존의 정치 질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나라'를 주장하며, 지지자도 꽤 있는 카리스마적인 예언자는 로마 장관 입장에서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존재다. 빌라도는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킬까 두려워서 처형시켰다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요세푸스가 서술한 예루살렘 수도 사건에서 빌라도가 조금 과격한 시위를 어떻게 때려잡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는 필론의 기록처럼 합리적인 이유(티베리우스의 약속)를 대면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이들에게는 물러나줬지만, 과격시위를 피를 보면서 진압하는 데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거듭 말하지만 빌라도vs유다 사제와 군중들 구도 자체가 상당부분 로마 제국을 적으로 돌릴 수 없는 복음서 저자들의 집필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예수의 죽음을 원할 정도로 예수가 유다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못받고, 인기가 없었다면 Fredericksen 선생의 말대로 카야파나 빌라도는 굳이 예수를 체포해서 죽일 이유 자체가 없다.
 
 
나오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유다인들이 기록한 "잔인하고 공격적인 빌라도"vs복음서에 나오는 "약하고 우유부단한 빌라도"의 이분법은 당대 사료들을 잘못 이해한 것에 가깝다. 엄밀하게 기록들을 읽어보면, 사실 유다인들이 묘사한 빌라도와 복음서가 그려낸 빌라도 사이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양자 다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수사학적 서술을 하였기 때문에 둘 다 100퍼센트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러한 수사학적 표현들을 감안하고 당대 기록들을 읽으면, 매우 흔한 로마 식민지 관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자기가 다스리는 피정복민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전혀 용납하지 않지만, 그래도 때때로 질서와 평화의 유지를 위해 유연성도 보여주는 그런 인물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처형은 당대에 흔했던 여러 잠재적 메시아 후보에 대한 일반적인 예비검속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기서도 빌라도는 망설이기는 커녕, 별 주저 없이 예수를 십자가로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다한 유혈을 자제하는 모습은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직 예수 운동은 폭력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경향을 띄지 않았기 떄문에 빌라도로서는 굳이 여럿 잡아 죽일 필요 없이 지도자 한 명만 처리하면 알아서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후대의 역사는 이것이 착각이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쩌면, Fredericksen 선생의 말대로 예수의 재판에서 처형까지는 대규모 군중들이 동원되기는 커녕, 대부분의 예루살렘 주민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면 복음서 모든 내러티브가 한밤에 예수를 체포하고, 아침 일찍 재판을 하고 십자가로 보내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예루살렘 주민들, 특히 잠재적인 친 예수파 주민들에게까지 예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돌때쯤이면 이미 모든 일은 끝나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모든 기록과 정황을 종합하였을 때, 다른 모든 사건들이 그랬듯이 이 사건도 빌라도는 주도권을 놓지 않고 통제하고 있었다.
 
 
 
참고
 
Aldo Schiavone, Pontius Pilate: Deciphering a Memory (New York, 2017).
 
Helen K. Bond. The Historical Jesus: A Guide for the Perplexed (London, 2012).
 
Helen K. Bond, Pontius Pilate in History and Interpretation (Cambridge, 1998).
 
Warren Carter, Pontius Pilate: Portraits of a Roman Governor (Collegevill, 2003).
 
James D. G. Dunn. Jesus Remembered(Cambridge, 2003).
 
Paula Frederiksen, Jesus of Nazareth: King of the Jews (New York, 2000).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London,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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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19-08-15 03:52
 
그래서 그런데 멀 어쩌자고?

'어제 비왔고 과일 노점상 김씨 장사 안했음'

요런글이랑 머가 다름?
이리저리 19-08-15 03:56
 
무명검님 자꾸 닉 바꿔 오지 마시고 하나로만 노세요.
지청수 19-08-15 09:34
 
돌통 19-08-14 19:05

다..  잘 보았습니다..    다 나름대로 맞는말이고 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다들 어떤 틀을 가지고 계시고 지식도 많으셔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고 공감되고 여러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저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그냥 기독교,불교,코란,철학 이런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냥 아마추어 입장에서 조금 있는 지식으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 속마음은 이 혼탁한 사회에  성경에 있는 예수님 같은 분이 절대자의 아들이어서 실제로 성경대로 예수님이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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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데, 쓰는 글은 한결같이 기독교측의 자료이며, 기독교를 옹호하는 글임.ㅋㅋㅋ

게다가 다음 문단에 예수의 위상과 존재를 바라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인은 아니라네요.ㅋㅋㅋㅋ

구라를 쳐도 교묘하게 치셔야죠~
팔상인 19-08-15 13:30
 
이제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의 글 내용을 보기보다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정체성'을 우선 살피는게 올바른 순서이지 싶습니다

2레벨 아이디로 가생이 최고의 혼돈을 자랑하는 종철게에
참으로 용감하게 '기독교찬양' 글로 일관된 게시물을 입력 하였네요

가생이 종철게를 선험적으로 인식해왔다는 반증인데,
아마 기존아이디로 종철게를 경험해왔던 탓이겠지요
이 점에서 이리저리님의 댓글은 타당한 추론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무명검씨가 종철게를 탈출하여 다른 게시판에서도
개독바탕의 파생사상을 여기저기 배포하였으나 해당 게시판의 사용자에게
이리저리 비판당하고 자취를 감추었던데
결국 돌아온 곳이 종철게일 수도 있겠습니다

뭐 논리의 전개 방식이나 상식과 공감능력의 부실 등이
무명검씨와의 공통점으로서 엿보이기도 합니다

사회성에 누수가 있는 분들이 보통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위안을 찾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인식의 상위체계에 두던데,
돌통씨도 이쪽 부류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돌통 19-08-15 23:33
 
지청수님 당신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나요?  확신한다고 해도 말을 부드럽게 하시죠..
구라, 교묘하게 친다..    이런 자만감  섞인 말들은 함부러 하는게 아니죠..  상대방이 기분이 매우 나쁘잖아요.
당신 말이 맞다고 해도 그런식으로 쓰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피곤해 19-08-16 00:35
 
머지 사실적시 명예훼손 같은건가....
사실적시 명예훼신 죄 폐지가 세계적 추세인데...
돌통 19-08-16 01:50
 
피곤해 님은 매사에 성격이 삐딱하고 부정적이신 성격이신가요?
제가 보기엔 그런것 같은데    물론 아니시길 바라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갖도록 노력하는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아니면 다행이고요..
     
지청수 19-08-16 10:36
 
돌통 19-08-16 01:39

지청수님이 누군데..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평행우주따위 믿으라고 말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

응?
이거슨 내로남불?
k2k3k4i5님은 피곤해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저런 부정적으로 인격을 까내리시나요?
이리저리 19-08-16 04:57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보통 남들이
합당한 근거를 통해 논리적인 반론으로 "그건 아니다" 라고
하는 부분을 의연히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상이나 특정 종교관을 타인에게 주입 시키듯 강권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억지를 부리는 행태는
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세계 구축을 걱정하지 마시고
본인부터 미몽에서 깨어나길 바랍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잠깐 기대 쉴 수 있는 언덕 정도로 믿고
넘겨야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삶의 주체가 되거나, 사회적
규범과 약속 보다 우위에 서면 지나친 겁니다.

과유불급의 고사를 상기하시길.
돌통 19-08-16 15:55
 
이리저리님 제가 언제 타인에게 특정 종교관을 주입 시켰다고 하나요?

그리고 미몽 이라뇨?        제 생각이죠..

그리고 종교는 잠깐 기대고 쉴수있는 언덕 정도로 믿는다..  맞는말입니다.  하지만 전그정도로 종교에 빠져 있지도 않고 제 대학 전공이 북한학과와 종교 부분이라  그냥 가끔 예전 자료로 글을 올립니다.  요즘 시간이 한가해서 글을 많이 올리기는 하지만 저는 님이 생각하는것처럼 미몽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님이 잘못짚었습니다.
돌통 19-08-16 16:00
 
지청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왜곡하게 생각 하고 있네요.  기독교를 옹호하면 누구나 다 기독교인이 되나요?

구라를 친다,  그렇게 말하지 맙시다.  전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기독교인을 혐오 하나요?
왜 자꾸 저따라 다니면서 이런 싸구려 글들을 쓰는지..  그러지 마세요..
돌통 19-08-16 16:02
 
팔상인님  혹시 저기 무당이세요.?  아니시면

나에 대한 망상에서 깨어나시죠...
제로니모 19-08-16 22:24
 
그냥 기독교인이라 당당히 밝히세요. ㅎ

뭐가 부끄럽고 뭐를 숨기고 싶죠?

아...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인이라서 못밝히는건 아니시길...
돌통 19-08-19 03:49
 
나는 대학에서 북한학과와 종교학을 전공해서  또한  기독교,불교,이슬람교등 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입니다.
난 교회도 성당도 안다니고 그런걸 떠나서 믿음이 너무 많이 부족합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기독교인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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