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진실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있다.
불자들이 모이고 절마다 의식을 거행하는데
신과 영혼을 모르고 시작된 종교이니
불상을 만들어놓고
부처를 신인양 섬기는 그들이 한편으론 측은하다.
불교의 시작은 신이 없고,
영혼(영원한 나)도 없고(무아)
육신의 나만을 바라본다.
나도 내거라는거도 인생도 모든게 무상하니 고통이고
그 고통마저도 무상하니 지나가고
혹은 내 고통이라 할거도 없으니 남을 보듯 지나간다.
들어오는 고통을 그렇게 의지로 밀어내고 평안을 지키려한다.
석가모니(고타마 싯타르타, 부처)는
그런 사유와 수행을 궁리하여 해탈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려했다.
다시 태어나는거도 고통인데
해탈했기에 다시 태어나지않는다고 여겼다.
사후 소멸이나 다름없지만,
그러나 사후는 침묵했다.
그의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아라했는데 후대는 진아를 찾으려한다.
아트만을 부인했는데 아트만을 찾으려한다.
후대는 죽은 그를 신으로 앉혀놓고
불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기원한다.
다음 생에 극락(서방정토)를 바란다.
혹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길 바란다.
석가모니의 초기불교에서는
극락은 희열이라는 의미였지
어떤 영적인 장소가 아니었고
당시 인도인들이 아트만과 윤회와 환생을 믿었기에
선하게 살면 다음 생에 좋은 곳에
나지않겠느냐는 정도로 말했다.
카스트제도에 얽매인 환생이 아니라
업에 따른 윤회를 말했으니
당시로서는 참신한 발상이다.
그러나 그는 가정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고
산속에서 혼자가 편하고
또 사람들을 기르치고 싶었다.
혹은 처자식에게도 업을 끊어주려했을지모른다..
그의 가르침이 진리는 아니다.
고통을 소멸시키는게..해탈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를 알아 마음평안을 얻고
또 자비를 말하니 행하면 마음도 밝아지고 좋은데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선한 양심들에게
연옥에서 혹 구원받을 기회를 주실지도 모르지만
사후의 진실, 내세의 진리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에서 전하고 있으니
한번 관심을 가져봄직도 하다.
(불교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사실과 틀린 부분도 있을수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