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진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치않고 대답할것입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기준, 혹은 선과악을 구분하는 것, 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아마 인류가 탄생하면서 부터 역사를 이끌어온 과정속에 함께해온 중요한것일 것입니다.
난 인간에게 선과악의 개념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위대한문명을 이루지 못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과악을 나누려면 먼저 기준을 잡아야하는데 사실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상대적이라 다 제각각이니 어떻게 그 기준을 잡겠습니까?
물리적인 것이라면 모두 합쳐서 평균값을 내면 되겠지만 선과악의 개념은 어찌보면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평균을 잡을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명한 인간들은 다수의 합의에 의한 법과 질서를 만들어 선과 악을 구분지으며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완전치 못해서 법위에 군림하는 자나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일명
법꾸라지들을 걸러내지 못해서 완전하다 할 순 없을것입니다.
물론 내가 얘기하려는것은 위의 상대적진리가 아닙니다.
절대적 진리입니다.
이천년전 기록된 신약성경에서 예수의말씀, 가르침을 통해 이 진리를 찾을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이전엔 죄에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오직 율법과 법을 어기는 범죄만이 있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에게 두구든지 죄 없는자가 먼저치라고 하자 자신들의
죄를 느낀 유대인들이 모두 흩어진 얘기는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것입니다.
절대선이 죄를 깨닫는 것임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자면
자신의 본성, 본질을 깨닫는 것이 절대선이고, 깨닫지 못하는것이 절대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기 위해선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법을 실천해야 깨달을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도 현대에 맞게 해석하자면 남에게 인색하지 굴지 말고 베풀며 살아야 마음이 깨끗해져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치며 악행을 저지르면 마음이 어두어져 자신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자꾸 선행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남에게 조금 베푸는 것이 관대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악한마음으로 살때는 자신의 악함이 작아지고 선함이 커지며 선한마음으로 살때는 자신의 선함은
작아지고 악함이 커지는 이 신비한 현상.
그리고 이런 선악의 기준은 당연히 상대적 존재인 인간은 할수가 없습니다.
미국대통령도 훌륭한 철학자도 왕관을 뒤집어쓴 교황도 목소리 카랑카랑한 사상가도 깊은 산속에서
평생 도만 닦은 도사도 정할수가 없습니다.
오직 절대자인 신인만이 정할수 있는것입니다.
바로 이것때문에 이 진리때문에 허다한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를 신인이라고 주장했었던 것입니다.
많은 기적도 요나의표적도 결국 이 진리를 위한것으로 생각하면 이상할게 없습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이 뒤섞여있습니다.
궁극적으론 신의 공정한 기준으로 선과 악은 완전히 구분되어 질것입니다.
그때까지 선에 속한자들은 악에 휩쓸리지 말고 항상 선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