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이 복잡해져서 새로 팝니당.
=====
전 무식해 철학이니 이런건 잘 모릅니다. ㅎㅎ
하지만 님이 말씀하신 것과 연관된 제 생각이 있어 그냥 끄적여봅니다.
제 생각에 현기독교의 문제는 신을 너무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성경이란 책이구요.
몇천년 역사 속에서 신을 안다고 떠들던 오만한 인간들이 쓴 책을 읽고
그 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 오만한 것들이 만든 교리를 듣고
신을 안다고 외치는 무리들.
그게 제 생각엔 지금의 기독교인들입니다.
내 머리 속에서 신을 정의하면 정의할 수록 신은 작아집니다.
성경에 쓰여있는 것처럼 신이 인간을 만든 걸 후회했다 믿는 순간
신은 후회를 할줄 아는 저능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다 믿는 순간
신은 인간의 불완전한 성격이나 신체를 갖게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역사 속에 살았던 오만한 인간들에 의해
신은 정의와 정의를 거치게 되어 지금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이상한 모습의 신이 만들어졌죠.
또 몇천년 후엔 이 신이 또 더 많은 오만한 인간들의 정의를 거치고 거쳐
더더욱 무의미한 모습이 되어버릴지 모릅니다.
이렇듯 전 인간이 신을 정의할 수록 신은 무의미해지고 저능해진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님이 말씀하신 인간이 존재해야 신도 존재한다는 말과 비슷한 것일 수도 정반대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 글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전 학술적이기보단 감정적으로 종교를 논합니다.
"내가 존재해야 신도 존재한다.
내가 그 어디도 없는데 신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냐" 라는 주장은
물론 학술적인 figure of speach이겠지만
제게는 너무 개인주의적이고 차가운 철학입니다.
슬프고 고통 받는 남이 있는데 내 머리 속이 뭔 상관일까...
우리는 "나"가 아니라 "우리"니까요.
내가 존재하지 하지 않아 그 신의 존재가 상관이 없다해도,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타인은 존재하기에
타인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그 신 때문에 그들에게 생기는 슬픔이나 고통은 그래도 제겐 중요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 아닐까...
그런 너무 과학적인 생각에 부족한 그 사랑을 넣어주는 게 참 종교가 아닐까.
제게 그 참 종교의 모습은 인간이 처음 신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감사하던 모습.
그냥 막연히 하늘을 울러러보고 내 행실을 가다듬던 그때 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 모습이 저점 오만한 인간들에 의해
신은 이런걸 싫어하고 좋아한다느니
신에겐 이 날에 이런 물건을 바쳐야한다느니
신은 이 날에 모여 이렇게 예배를 봐야한다느니 하며 정의되면서
신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사랑은 점점 사라졌다 생각합니다.
양심이 사랑하라 말해도 교리때문에 못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진정 신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신의 뜻일 겁니다.
남이 주입시킨 교리가 아니라 나의 양심이.
악을 미워하고 선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인간 본연의 양심이 바로
신이 우리에게 하는 말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 양심에 어긋나는 교리가 있다면 그 교리가 악이 아닐까.
그래서 종교란 오만하게 신을 알려고 하고 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정의하고 나를 계속 그 양심에 맞게 솔직하게 가다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