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여러 제자들 중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수만큼 많이 준비된 천국 열쇠들 중의 하나를 받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던지 어떤 교리를 믿는 신자이던지,
짝퉁 성도들을 상대로는 천국문을 잠그면 잠기고,
무엇이던지 어떤 교리를 믿는 신자이던지,
진짜 성도들을 상대로는 천국문을 열면 열린다는
감독관의 열쇠를 땅에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순교하여 하늘로 떠나시면서 그 감독관의 열쇠를
그대로 하늘로 가져가셨지,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열쇠가 아닙니다.
맡길 필요가 없는 이유는,
베드로 사도가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기고,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도 열린다 하셨으므로,
순교한 베드로 사도가 하늘에서 잠그면 땅에서도 잠기고,
하늘에서 열면 땅에서도 열리는 감독관의 열쇠를 맡으셨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새로 맡길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하시기 전에 이어 맡기지 않은 그 열쇠를
한 참 지나서 누군가가 넘겨 받았다고 주장하면
후대의 사람들은 위 19절의 예수님 말씀을 믿어야 하는가,
증거없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당연히 예수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해서 누군가가 넘겨 받았다 하는 것은
19절의 예수님 말씀을 헛된 거짓으로 바꾸는 태양신교 다운 신앙입니다.
마치 태양신 숭배일인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고 속여서
하느님 아래 거짓된 날로 바꾼 것과 같고,
태양신교가 로마 가톨릭을 이용하고 앞세워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이후에도 태양신교를 믿던 옛 로마의 지배층은
그리스도교가 태양신교보다 전파력이 크다는 것을 시기하여
베드로 사도가 받았다던 천국의 열쇠를 빼앗기 위한 방법으로
당시 로마의 지배층과 연루된 로마식 가톨릭이 처음 생겨나게 하더니,
많은 신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교황직을 임의로 만들기 위해
이미 하늘로 떠난 베드로 사도를 자신들의 뜻으로 1대 교황으로 추대해서
이후에 실질적으로 이용할 차기 교황을 최초로 세웠고,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그 천국 열쇠를 이어 맡았다는 거짓 명분으로
가짜 열쇠를 만들어서 19절의 예수님 말씀을 헛되고 거짓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순교하실 때 열쇠를 그대로 가지고 하늘로 가신 셈이라서
지구가 없어질 때 까지 땅에서 그 열쇠를 맡은 사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가톨릭 교황직이 사도직인가? 아닙니다. 가톨릭 사제직이 사도직인가? 아닙니다.
신부님이 사도급인가? 아닙니다. 목사님이 사도급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도가 아니면 그 중에서도 베드로가 아니면
그 열쇠를 맡기시지 않았습니다.
훗날 하늘에 와서도 맡으라고 하늘과 땅을 언급하며 맡기셨다는 19절입니다.
그래서 현재 하늘에서도 천국문의 열쇠를 맡고 있는 베드로 사도는
땅에 있는 각 교리별 신자들이 짝퉁 말고 진짜 성령을 받아
진짜 성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해서 천국 안으로 들여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감독관 역할을 지구가 끝날 때 까지 맡으셨습니다.
그런데 교황님이나 신부님들이나 여러 교리의 목사님들이
서로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서 주의 양떼들을 천국 문 앞까지 길 안내를
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천국의 열쇠를 지녔다고 하는 것과 동일해서
19절의 말씀과 모순이 됩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1세기 사도들의 뒤를 잇는다고 주장하고,
개신교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진짜 1세기 사도들의 뒤를 잇는다고 주장을 하며
평화 아닌 분열을 해서 주의 양떼를 각 교리별로 뿔뿔이 흩어버리니,
예수님이 이를 다 예견하시고 일부러 베드로 사도 한 사람을
감독관으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유럽의 로마식 가톨릭이 태양신교에 이용당한 십자군교 사건과,
가톨릭이 개신교와 함께한 지동설 반대 교리와,
19세기의 다윈 진화론을 초기 진압하여 흡수할 수 있었던
솔로몬의 지혜서 19장 19절에 쓰여 있는 창조주의 생물 진화 권능을
세상에 내세우지 못함으로 그 바닥을 드러낸 역대 교황직과,
그들의 종복이 되어 이어져 온 가톨릭 성직자들과,
각종 교리로 분리된 목사님들은 모두,
흩어진 주의 양떼들을 천국 문 앞까지 길 안내를 하면서
함께 들어갈 만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찾을 정도로 넓고 쉬운 신앙에 입문하게 해서
성경을 통해 대략적인 방향성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들은 1세기 때 예수님과 제자들과 동행하지는 않는데 그분들을 반대하지는 않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 주었던 어떤 사람과 똑같은 성직자들이라서,
주의 양떼들을 위해주고 지지하는 우리의 친구 같은 봉사자, 전도자이긴 하지만,
그들이 각자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맡은 것은 아니라서
양떼들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인도할 만한 목자의 그릇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만 쓰시려는 그와 그들의 활동을 막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세계에 많은 성직자들이 생겨나 왔는데,
마지막 7년 환난 초기에 전 세계 각지에서 144000명의 진짜 성도들이
목자 된 사도로 나타나면 기존 전 세계 성직자들의 직분은 박탈되고,
호칭도, 그리스도인 성도를 의미하는 사제 신부나 목사가 아닌,
봉사자, 전도자, 각 교회성당의 문지기로 불리게 됩니다.
앞으로 지어질 제3성전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요한복음 9장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위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과 1세기 사도들의 시대도 다 지나가면
이후로는 아무도 빛의 일꾼으로 일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4절에서 ‘우리’ 라고 하여서, 주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활동했던 1세기말 까지는 빛의 일꾼이 되어 일하신 낮의 시대였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언해두신 대로 제자들이 훗날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가르치던 회당에서 모두 쫓겨난 이후부터는,
아무도 빛의 일꾼으로 일하지 못한다는 밤의 시대로 접어든 시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사도가 아닌,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만한 진짜 성도도 아닌,
성령을 짝퉁으로 받은 이류, 3류 성직자들이 교회 안의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되어서, 자신들 교리를 잘 따르는 신자들만 아무나 성도라고 많이들
인정해주게 되었고, 그렇게 짝퉁 성도가 많이 생겨나는 흐름 속에서
모든 성직자들보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도들의 가르침을 더 중시하는
신자들 중에서 진짜 성도들이 소수로 계속 생겨나 왔습니다.
2세기부터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아무도 빛의 일꾼으로 양떼를 인도하지 못하는
밤의 시대가 되었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살아 있는 말씀이나 다름없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과 빛의 일꾼들이 항상 말씀으로 가르쳐 온 세상입니다.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은 모두 사도급이 아니고,
사도급이 아니라는 것은 천국의 문 앞까지 인도해 줄만한
인도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어서 재림을 예고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재림할) 나 ( = 그리스도) 보다 먼저 온 자들은 ( = 자칭 그리스도인 성직자)
모두 목자가 아니다. 라고 알려두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의 양떼를 천국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으로 인솔할만한
목자의 그릇이 아니라, 각 교회성당의 봉사자, 전도자 정도의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양떼들더러 그러한 성직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사람 신분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2세기부터 현재까지 생겨난 전 세계 모든 성직자들을
신자들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커트라인으로 세워두신 것이지,
함께 천국까지 들어갈 만한 인도자로서 시대마다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성직자들은 하늘이 직접 세우신 것도 아니고
그들이 성직자가 되려고 하는 뜻을 막지만 않으셨을 뿐입니다.
모세 탈출기에서 악하게 살아온 파라오 왕이 완강하게 살아도
직접 벌하시는 방법 등으로 바꾸어서라도 복주시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신 것처럼.
성직자들은 설마 하느님이 그 파라오 왕을 완강하게 만드셨다고 믿을 것인가.
1세기때 베드로 사도가 직접 이끌던 당시의 반석 같던 교회에 비해서
지금의 전 세계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이 인도하는 모든 교회와 성당은
여러모로 세속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세계 오지의 난민을 위해 빵 1개의 기적도 베풀지 못하는 영성으로
베드로 사도의 천국문 열쇠를 똑같이 지녔다는 듯이
신자들에게 교리적 교훈을 가르치며 인도하니,
마치 모세에게( = 참 그리스도교의 반석교회에) 도전했던
아론과 ( = 가톨릭과) 미리암이 ( = 각종 개신교가)
자신들의 영성을 누룩으로 부풀려서 모세와 대등한 줄 착각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짝퉁 성령의 감투를 쓰고서 주여, 주여 하고 생을 마치게 되면,
예수께서 양떼로서는 아는데, 진짜 그리스도인 성도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니
떠나가라 하시게 되어서 진짜 양으로 살게 되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훗날 도무지 모른다 하시게 된다는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는 성령을 받고나서 악을 행한 것이라면
사후에 주께서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어떻게 도무지 모르실수가 있겠는가?
처음부터 성령을 보내주신 일이 없었는데도
각 교리별로 이류, 3류 성직자들을 통해 성령을 짝퉁으로 받고는
주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함께 한 줄로만 알고 살다가,
사후에서야 자신이 짝퉁 성도였음을 깨닫게 되는 사례입니다.
이것을 살아서 깨달아 방법을 찾으라고 이렇게 알립니다.
현재의 전 세계 짝퉁 성도들은 수억년 전 공룡시대의 적외선 속성의 태양이
6천년 전의 7일 창조 때 가시광선 속성의 광명체 태양으로
리모델링 재창조 된 것도 잘 모르고 있으니,
현대의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시작한 믿음입니다.
그러니 무신론자들이 먼지 날리며 웃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