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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1 22:37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현재 우리나라의 법치
 글쓴이 : 지청수
조회 : 852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문장은 들어봤을 겁니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문장으로 그의 철학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문장입니다.

태초의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은 모두 경쟁상태이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의 경쟁상대가 되고, 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인자가 됩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내 등에 칼을 꼿을 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런 불안정한 삶에서 탈피하고자 나온 것아 사회계약론이고 사회적 연대이며 국가입니다.

개인적인 신뢰로 연결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무한정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절대적 존재, 주권자나 국가에 권력을 이양하여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류사회가 진화했다는 게 사회계약론인데요, 요즘 한국의 사회를 보면 이 기본적인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위와 같은 사회계약 하에서는 사회집단에게 사법권이 주어지고 개인은 자력구제가 박탈됩니다. 즉, 내가 피해를 입었어도 개인적으로 보복을 할 수 없고, 법에 근거해서 사법부를 통해서만 처벌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법이 문제입니다.

먼저 법이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번 검찰 문제를 보더라도 기소독점주의에 근거해서 검찰의 입맛대로 기소가 이루어집니다.


기소가 되서 법원까지 간다고 문제가 사라지느냐? 법이 너무 무릅니다. 사람을 죽여도 초범이다. 심신미약상태다. 미성년자다, 피의자가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심한 경우는 집행유예도 나오는 아주 허접한 판결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고 있죠.

얼마나 법이 약하면 미국이 한국의 성범죄자를 넘겨달라고 했을까요?

요즘 기사화되는 판결들을 보면 어이가 없는 것들 중 최고가 촉법소년과 소년법. 얘들은 강.간살인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몇 년 살고 다시 사회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에 버금가게 어이가 없는 사건들은 자기 자식을 죽인 애엄마들. 예전에 이슈게에도 쓴 적이 있었지만, 모성애와 우울증 등의 이유로 심한 경우에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그냥 풀려납니다. 이 밖에도 툭하면 죄다 집행유예로 풀어주죠.


세번째로는 유죄추정의 원칙. 제가 보기만 해도 치를 떠는 꼴페미들 문제입니다.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사람을 인격살해까지 시키는 어이가 없는 판례들...


미투운동이 퍼지면서 민주당 인사들이 억울하게 많이 당했죠. 안희정 전 도지사는 감옥에도 가고, 박원순 전 시장은 자.살까지 했는데, 사실 전 그들이 가엽지 않습니다.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무고한 남성들을 범죄자 취급하다가 거꾸로 당한 거여서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심지어 안희정 사건 때 박원순이 안희정을 저격...


마지막으로 법의 형평성 문제. 누구는 몇 만원 절도를 해도 3년 징역형, 누구는 몇 십억 횡령을 해도 몇 개월 황제노역... 게다가 돈 많고 빽 있으면 형량이 점점 줄어드는 마법까지...



이런 현실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법과 사회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조두순이 출소를 한다고 하니까 테러를 가하겠다며 개인이 법 대신 처벌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등장하고, 어차피 법으로 처벌하기 힘드니 내 손으로 저 새끼 아작내겠다는 놈들도 나오고, 페미 때문에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안하겠다는 남자들도 나오고... (현재 한국의 20~25세 청년들의 연애율이 21%랍니다. 한창 연애를 할 때인데, 30대 아재들의 연애율보다도 낮아요.)


이게 지금은 공권력이 감당할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회계약이고 뭐고 멕시코, 필리핀처럼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인적자원과 단합력으로 일어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집단이 와해되면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경제성장도 민주화도 다 끝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국의 미래가 너무나도 암울해 보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비혼을 주장하는 청년들, 이에 따른 저출산율, 커져가는 빈부격차, 정규직 일자리의 감소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생겨난 노인빈곤율과 자.살율.

여기에 더해서 법적 안정성의 붕괴로 사람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력구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그 땐 진짜 끝이에요. 더 늦기 전에 이 사회가 제대로 바로 서길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우리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즉 모두가 헐벗도 비위생적인 삶을 살며, 인간성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잔인성이 극대화되는 그 야생의 모습으로 한 순간에 무너질 겁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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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인 20-12-12 03:52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칸트가 정의한 인간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보이네요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판별할 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위에 서야
자신이 행복하다 판별함으로 타인과의 경쟁은 필연적이고,
이 경쟁이 아무 기준없이 이루어진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음으로
탄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리가 평등사상이며 이 평등사상을 기준으로
자신이 조금 더 경쟁의 우위에 서려는 인간의 계산력이 곧 논리력이라는 풀이였죠

결국 자신의 방종을 포함한 자유를 좀 더 확보하려는 경쟁과
이를 제한하는 평등이 병존하며 지속되려면 결국 "공정"해야하고
이것이 인간의 인간성을 실현하는 원리라는 식의 논증이었던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가는 친구(親舊)는 결국 확고한 인간성을 토대로 인격성을
나누는 사이여야 평생가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보고 있으며
이것이 확장될수만 있다면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할거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거 한국의 교육과정에 없습니다
칸트의 비판서를 읽어보질 않으면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이 없죠
이런 philrosophy들은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전해지질 않습니다
일단 가르칠 사람들부터 philrosophy들을 살피질 않으니 단편적인 교과교육에만
열을 올리고 그것으로 교육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했다 여기는게 현실이죠

결국 저러한 삶의 관념과 그 중요성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득실개념의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여기에 단편적인 지식만 결합하면 기회주의와 개인주의의 탄생은
동물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우리 근대사가 그 기회주의와 개인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이루면서
성공한 삶의 모습으로 비춰지니 너도나도 그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저 만연한 사회문제들은 결국 기회주의와 개인주의가 너무 만연해지면서
인간성의 기본적인 토대조차 무너져버린게 현대사회문제의 주요한 원인이겠죠

인간(人間)의 人자가 혼자서는 설 수 없어서 기댈 존재가 필요한 종이라 人이라고 한다죠
인간관계에서의 행복이 자신만 좋다고 그 행복이 지속되는게 가능한지
깊이있게 살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게
저러한 사회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하기엔 워낙 까마득한 일이라 캄캄한 문제이긴 합니다

아마 지적하신 모든 문제가 이와 관련된 것이지 싶습니다
     
지청수 20-12-12 11:49
 
동감입니다.

한국의 모든 교육은 지식의 주입과 시험에만 관심을 가지죠.
학문의 도입 목적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단편적인 지식만 가르치고, 고득점을 맞아서 시험만 통과하는 것으로 변질되는 시스템입니다.

윤리 시간에 철학사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로만 피상적인 내용만 후딱후딱 가르치고 진도 빼는 게 전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철인정치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고, 플라톤-이데아-철인정치-여성차별 이따위로 암기만 하게 가르치는 게 전부.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연도별 사건 등등만 가르치니 역사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고, 수학도 과학도 공식만 달달 외우고 문제만 풀게 만드는 교육.

이렇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다 날라가는 휘발성 지식이 되고, 남는 건 하나도 없는 시간낭비만 되버리는 교육이 되었죠.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직접 연구하고 생각해보라고 수행평가를 만들어놨더니 현장에서는 등수 나누기에만 관심을 두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교사들 천지이며, 어떻게든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학부모들이 수행평가에 달라붙게 되는 부작용만 발생하고...

그러니까 성인이 되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막장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 천지인 사회가 되버렸죠.


모 역사 채널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진작에 알았다면 학창시절부터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했을텐데...'

재미있고 심도 있는 것도 죄다 재미없고 피상적으로만 가르치고, 가르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이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간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니 결국 인생의 가치가 돈과 인기로 귀결되고,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네요.


앞으로 쓰잘데기 없는 미신 이야기보다 발상인님과 기타 다른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청수 20-12-12 11:53
 
댓글을 쓰다가 왜 종게가 아니라 종철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게시판은 이슈게시판에서 개신교 관련 글들이 난무하다보니 쓰레기 처리장 겸 분리된 게시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종철게가 아니라 종게라고 많이들 불렀고, 격위가 다른 종교와 철학을 왜 붙여놨는지에 대한 푸념도 많이 올라왔지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학문이어서 이 둘을 붙여놓은 게 아닌가?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종교와 철학이 제시하는 길이 다르고, 그 깊이가 다르지만 최소한 시작점은 같은 질문이니까 종게가 아니라 종철게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꿈보다 해몽...
팔상인 20-12-12 22:50
 
아마 종/철게라고 이름지은게 휘발적인 발상이었을지는 몰라도
이곳 종철게가 지청수님의 해석과 동질적인 의도는 아니었을거라고 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게 맞겠지요 그건 뭐 그렇게 정리하다라도..

아무튼 지청수님 같은 분들과 활발히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롭겠습니까?
그런데 이놈의 종철게는 핫산이나 베씨 같은 "추의 대상"들이 들러붙어
그에 대한 대응을 신경쓰게 만드는게 소모적이라
시간낭비라는 판단으로 여기게 하는데서 오는 불쾌와 함께 그럴바에야
이 게시판에 거리를 두는게 더 낫지 않겠나는 판단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쟤들에게 개연성의 지적 열매를 통해 항변하도록 만들게 아니라
비개연적인 욕망의 과도한 자유를 그대로 재연하여 그들에게 거울이 되어줌으로써
그와 동시에 "내가 이짓을 왜 하고 있나?"란 성찰이 생기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할만한 비전이
내가 세우고 싶은 높은 우선순위의 비전은 아닙니다
나름의 높은 우선순위의 비전을 세우려는 노력은 다른 분야에서 끊임없이 지속해왔고
그런것도 없이 쟤들이 왜 저러는지 영문도 모르는 다른 분들은 더 짜증나겠죠

그러니 종철게가 분리되길 바라는 쪽이고
종교계는 소위 철학과 붙어있는 것보다 차라리
윤리와 붙어있는게 더 낫겠다고 보는 편입니다

저쪽은 지들이 윤리를 훼손하는 지향을 갖고 있다는 것부터 전혀 자각이 없으니까요
윤리부터 중시해야 도덕을 논할 수 있고 그 다음에야 삶을 논할 수 있을 겁니다

ps.
윤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법칙이란 규정으로 사용하고
도덕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법칙이란 규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시 한국 교육에는 이러한 규정의 구별을 강조하지 않죠
제로니모 20-12-13 22:13
 
지나가다 두분 대화를 발견하고 추천누를려하니 추천기능은 없네요 ㅎㅎ

올만입니다 청수님! 글보니 방갑네요.

좋은 내용의 글로인해.. 과거 존 로크와 영국 의회민주주의 발전사에 대한 내용이 잠시 회상되어 한참 생각하게 되는 글입니다.

그냥 지나칠까 생각하다 어줍잖게 글 남깁니다.

근대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등 대부분의 인간사에 계몽적 선구자 역할을 해온 존 로크, 그런데 특히, 정치철학 쪽으론 그 저서 통치론(정부론) 사상도 본문에 언급한 토마스 홉스 레비아탄(라틴어발음)으로 부터 영감을 얻었을겁니다.

발상인님은 존로크의 두 저서 통치론과 인간지성론 중, 지성론에서의 인간 본유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신듯 보입니다. 특히, 인간 내면의 종교, 윤리, 도덕에 관한 내용이죠.
지성론에선 데카르트식 본유관념의 부재론을 따르기에 지식은 곧 명확한 언어와 이성적 직관력을 통한 경험적 관념들간의 결합으로 설명했던거로 기억합니다.
덧붙여 도덕론에선 선악의 기준으로 쾌락주의를 제레미 벤덤에 영향을 줬다고 하죠.

무엇보다 이 지성론 3, 4권에서 언어의 문제와 지식의 문제로 설명하는 인간 언어의 명확한 의미 전달이란 소통문제나 자연현상에대한 경험과 어떤 인식의 정확성에대한 판단문제가 결국 관념간의 결합을 결정하는 이성적 직관능력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이 스코티쉬 계몽철학자 데이빗 흄을 거쳐 근 백년 후대인인 임마누엘 칸트의 삼대 비판서에 영향을 줬다고 하죠.

저는 존로크 사상을 기준으로 정치, 경제 철학적으로 잠시 돌아볼까 생각이 들었네요.

1628년 권리청원(the petition of rights) 후 찰스 1세의 폭정과 독재, 청교도혁명과 내전, 찰스 1세 처형, 올리버 클롬웰 군부독재, 찰스 2세의 왕정복고, 권리청원이 있은지 정확히 60년 만인 1688년, 제임스 2세에 대항한 윌리암 3세와 메리2세의 명예혁명, 1689년권리장전으로 이어지는 17세기 잉글랜드 스튜어트왕권과 의회권력간 정치권력사 레짐체인지와 의회민주화과정 의의나 정치경제학적 근세기 자유론과 현대의 신자유주의 비판에대해 오래전 조금 끄적였던 기억이 어렴풋 나지만.. 과거를 넘 들추면 머리가 아파지는 현상이 생기네요. ㅎㅎ

한가지만 강조하자면 정치철학적으론 인간 존엄성과 천부인권적 자연권적 자유란 가치 존중을 강조하고 명예혁명, 권리장전의 사상적 이론적 기초와 나아가 70년후 미국독립선언문, 100년후 프랑스대혁명의 인권선언문, 더 나아가 230년후 한국의 기미독립선언, 제헌 헌법에 지대한 영햘을 준 위그당 존로크에 비해서,

 저서 패이트리아크를 통해 천부 왕권은 신성하며 국왕에 절대 충성 복종하며 국왕을 중심으로 로마카톨릭의 압박과 외세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해야한다하여 절대왕권을 강조하며 의회는 단지 자문과 보좌역할로 그 권한을 최소한으로 행사해야하는게 바로 애국의 길이라 주장한 왕권파 로버트 필머나 그와 비슷한 관점으로 안보 치안 부재로 수시로 일어나는 혁명으로 부터 나라가 평안하기 위해선 왕권 강화한 왕의 절대주권을 주장한 토마스 홉스나 사실 정치적 관점에선 반민주적일 수 밖엔 없죠.

그렇기 그의 리바이어던은 사실 민주공화제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현대 시민들에겐 큰 의미로 다가오긴 쉽지않을겁니다.

또, 욥기 고대 거대 악어 형상의 레비아탄을 따와 국가 권력으로 비유한거 까진 좋으나 이걸 또 다른 특별한 초인간의 개념으로 이해시키려한건 적절한 설명이었는진 좀 의문이구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자연상태에 국가권력 부재시 없었던 국가, 내지는 사회공동체와 개인 간 관계 설정, 즉 토마스훕스 사회계약설이 다시금 존로크에의해 입헌군주식 민주정 체제를 발전시키고 오늘날 민주 공화제를 꽃피운 기초를 세웠단 점에선 큰 의미가 있을거 같습니다.

통치론에서 존 로크는 애초 국가의 모든 권력은 시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강조하죠. 즉, 시민정부론(Civil of Government).
왜냐면 국가가 없는 시기의 자연상태에선 그 누구도 왕도, 신하도, 노예도 아니며 만물의 주인도 있을순 없을테니깐요. 그기 보편적 진리니.

그러나 국가권력 생기면 그 권력 행사할 대리인이 권한을 가질 뿐인데 그 때 그 권한을 부여받은 자(왕, 정치인)는 국가의 실제 주인인 시민과 국가 공동체간엔 암묵적이며 동시에 또한 성문법 등 명시적으로 큰 두가지 계약이 자동적으로 생겨난다고 보는 거죠.

하나는 국가권력이 없던 자연상태에서도 보장받아야할 갠 생명,자유,재산에대해 안전을 보장받을 '자연권'
또하나는 이 자연권을 합리적인 이유없이 부당하게 국가권력을 사용하는 위임자(왕, 정치인 등)를 바꾸고 뒤집어 엎을 권리 즉, 시민 '저항권'이죠.

이걸 설명하고 있고  현대의 헌법정신에 나오는 주요 골자들이 이 존 로크의 통치(정부)(two treatises of government)론에서 시작되는거죠.

우리 헌법 1조 2항에 나오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나 민주주의 작동핵심인 다수결원리, 10~ 39조까지의 자유권적 기본권들 특히, 10조 인간존엄성과 생명권, 천부인권이나 23조 재산권과 노동가치론 관계, 37조 기타 저항권, 26조 청원권 알권리, 45조 의원 면책특권, 47조 회기 총일수와 의회 자율권 천명 등등

이러니 존 로크를 추종할 수 밖엔 없을겁니다. 현대 민주주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니..
     
팔상인 20-12-13 23:13
 
어떤 면에서는 존로크는 참 멋집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좀 부실하기도 하다고 봅니다

이게 감성적인 통찰의 측면 때문인데요
제가 일전에 언급한 "위험한 지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걸 중재자로서 어떻게 풀어내는게 좋을지는 저로서도 아직 숙제네요
          
제로니모 20-12-13 23:34
 
음. 나중에 한번 철학적 관점에서 발상인님께 존로크에 대해 듣고싶군요 기대됩니다. ㅎ
               
팔상인 20-12-14 00:32
 
음.. 현대철학자 중 할머니인 마샤 누스바움이란 학자가 있는데
이 분이 정의론을 집필한 존롤스를 어떻게 비판하는지의 맥락과 비슷할 겁니다

다만 요새 새롭게 생각나는게 "비판의 정체성"이란 점에선데요
비판의 대상이 순수한 자기 견해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견해의 예술적 완성을 추구하면
그 비판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비판은 긍정적일 수 있는데 그럴 의사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면 이는 비난과 감성적으로 동질적이기에
사람 가리는게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사적인 견해는 구태여 싸울 명분도 좀 빈약한 측면이 있거든요
공적인 것과는 매우 상반되게 말이죠

제 경우는 이게 이성논증이 아닌
감성논증에도 공정한 중심을 둘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그럴텐데요
이성적인 것도 하나의 지적도구이기 때문에
선용될수도 악용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감성적인 것도 하나의 지적도구인지라
선용될수도 있고 악용될수도 있죠
현대에선 양성평등의 탈을 쓴 페미니즘이 후자의 악용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양쪽의 논증이 서로 일정수위 이상 기반이 형성되야
현실문제의 상당수가 좀 더 온전히 헤아려지는데 보탬이 될 것이고
단순히 남녀의 사고차이와 꼴통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사고차이가
구체적으로 무슨 차이인지를 설명하는데서
두 분께 지적공감대를 형성하는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성논증을 하는 분을 접하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저도 이게 필요하다는 시점의 인식까지 오니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일단락을 짓는게 좋을지부터 고민되긴 하네요
                    
제로니모 20-12-14 03:14
 
오 글을 다셨군요 ㅎ

잠이 안와 잠시 들렸는데 잠시 읽고 갑니다.

존롤스 사회정의론은 많이 알려져있으니 글타고 치고. 마샤 누스바움이라.. ㅎ

대강 글을 보아하니 이 분이 존 롤스 정의론 가정에서 마치 페미니즘적 감성적 차일 빼먹고 가설을 세운거 처럼, 감성적 통찰력의 디테일 측면에서 부실하다고 비판한게

그게 마치 존로크에 대해 아쉬운 점이다 뭐 이런 말씀같군요.

이해력이 좀 떨어져 그런건진 모르나 암튼 전체적으론 핵심을 다 이해하긴 힘들군요. ㅎ
                         
팔상인 20-12-14 07:57
 
아마 제로니모님과 제가 감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를 겁니다

일단 단어부터 좀 규정을 하자면
감성이 언어적으로 표현될때 감정(emotion)이라 하고
그 이전까진 감성(feeling)이라는 구별을 합니다

제 경우엔
감정일반에 대한 사상이 감정철학이고
미추에 대한 일반사상이 미학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조성하는 하위범주들의 개별원리를 심리학으로 보는데요

이 3가지 영역은 한국의 대학에서도
제가 인식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교육과정은 없는 걸로 압니다
그저 일종의 정신계 덕후(오타쿠)로서 가진 인식일 따름이겠지만
제가 사람의 정신, 그리고 다른 정신과의 관계를 인식하는데
통찰과 통섭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나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적합하게 꾸려가는 것 뿐이거든요

이런 인식에서 봤을 때 수 많은 학자들이 놓쳤던 사실 하나는
인간의 정신은 통일체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이성,지식,감성이라고 본다면
이성과 지식에만 의존한 논증을 하다보니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누락'이 생깁니다

그러니 아무리 온전한 논리적 논증이라도 실현이 잘 안되죠
즉 아는 것 따로 행하는 것 따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 온전한 논리적 논증을 좋아하게 만드려면
감성에 대한 논증을 배제해선 안되는데
그게 없어서 지루하게 비춰지는 경우가 태반이라 봅니다

이걸 중재자로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풀어내는게 좋을지 고민입니다
                    
지청수 20-12-15 21:50
 
비판의 대상이 순수한 자기 견해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견해의 예술적 완성을 추구하면
그 비판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비판은 긍정적일 수 있는데 그럴 의사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면 이는 비난과 감성적으로 동질적이기에
사람 가리는게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 이 부분 격하게 공감합니다.
비판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비판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비판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비판은 지적질에 불과하며, 자신에 대한 공격일 뿐이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상대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외로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인정하고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웬만해서는 남에게 충고를 하지 않습니다.



아래 글에서 '미추에 대한 일반사상이 미학'이라고 쓰신 부분이 있어서 이 글로 아름다움에 대해 잠깐 제 생각을 덧붙여보겠습니다. (사실 발상인님의 글과는 큰 관련은 없지만...)
예전에 종철게에 비슷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전 진선미 중 최고의 가치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이란 것이 단지 외적인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같은 말과 행동도 이 아름다움의 유무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다고 봅니다.
아름다움으로 인해 행위의 의미도 갈리며, 행위의 상대방이 받는 감정 역시 달라진다고 봅니다.


위에 언급한 지적질 역시 청자에게 화자의 선의가 느껴지게 된다면 지적질이 아니라 조언이 되겠지만, 지적 과시를 위한 조언이라고 느껴진다면 지적질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이겠죠.


이런 맥락에서 아름다움이야 말로 삶을 윤택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밑에 제로니모님에게 보내는 글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써놓고, 여기서는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라고 쓰니 저 스스로도 좀 모순된 느낌을 받네요.ㅎㅎㅎ
(역설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더 빛이 나는 것일 수도...)
                         
팔상인 20-12-15 22:33
 
지청수님께는 왠지 이런 짤막한 미학적 견해가
지청수님의 방향성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남겨둡니다

"미"란건 진이나 선의 그림자를 포착하는데서 그 본질에 접근하게 됩니다
미라는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의 이상형에 다가감을 포착하는 것이기에
진이나 선에 다가서는 과정이 미라는 해석이죠
다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진이나 선이지
객관적인 진이나 선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미의 발견은 추의 잉태를 낳습니다
그 미에서 멀어지는게 추가 되니까요
(이게 사이비 목사들에게서 신도들을 떼어놓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미가 없으면 추도 없죠
그러나 추가 없어도 미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에 미를 가늠할 수 있으면 받아들일 준비가 쉬운 비판이 되고
그 비판에 미가 없는 추를 가늠한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힘든 비판이 될겁니다
그리고 사람의 판단이란게 쉬운쪽으로 선택하는 비중이 높죠

이렇게 사람마다 개별적인 미추의 병존이 자유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미추가 현실에선 모호하고 별영향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매우 강렬하고 매력적일 때가 있을 정도로 분포되어 있을 따름이라 봅니다
     
지청수 20-12-15 21:33
 
앗, 제로니모님 오랫만입니다~

가생이에는 한 한달 전에 복귀했습니다.
복귀 후 제로니모님이 보이지 않아서 많이 공허했는데, 이제 그 공허함이 사라졌네요.^^


글이 긴 관계로 한줄 결론부터 적습니다.
결론 : 로크보다는 홉스가 짱짱맨! 인간은 이기적이야!


존 로크가 근대 철학의 큰 산인 칸트에게 영향을 주고, 민주주의 시스템에도 한 획을 그은 거물이라는 점에서는 존경할만 하지만, 전 성선설의 로크보다는 성악설의 홉스가 더 끌리네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서 홉스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선 사회의 성립에 관해서 로크는 홉스와는 달리 공동선을 위해 집단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는데, 전 이게 너무나도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되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집단을 형성하였다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 이전의 상태도 존 로크는 자연상태를 완전한 자유의 상태라고 보았는데, 뭐... 구속되는 집단과 규율이 없다는 점에서는 완전한 자유라고 볼 수도 있으나, 전 자연은 야생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자연상태가 과연 자유의 상태인지도 의문입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모든 야외 취미생활을 못하게 된 이후로 차선책으로 등산과 트레킹을 다녔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목적지를 정해서 등산과 트레킹을 했는데, 하루는 산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분명히 지도 어플에서는 길이 있다고 나왔는데, 막상 들어가니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더라구요.
한 여름인데도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무릎까지 쌓여있고, 길은 그 형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작년 여름의 태풍 때문인지 나무들이 몸통이 꺽여서 땅에 뒹굴고 있고, 나방과 벌레들은 왜 그리 많은지...


아마 원시 자연은 이 이상으로 악조건이었겠지요. 이런 원시 자연 상태에서는 발길을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고, 언제 어디서 늑대나 호랑이가 나타나서 나를 덮칠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같은 인간도 경계를 해야 하는 그런 상태였을 겁니다. 과연 이것이 완전한 자유의 상태인지...


전반적으로 로크는 세상도 사람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시각 덕분에 천부인권과 민주주의 사상의 개념이 싹틀 수 있었지만, 사실 전 이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과연 인권이 그렇게 소중하고, 인간의 가치가 존엄한 것인가? 민의를 따르는 민주주의란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이며, 이상적인 통치 체제인가?


전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생물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은 인간과도 경쟁을 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동물들을 사육하고, 그 과정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동물들을 학대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존재가 인간이죠.
다른 동물들보다 지성이 뛰어나고 그 지성을 이용하여 문명을 발달시켰다고는 하나, 이 지성을 이용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과 학살을 자행하였다는 점에서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전 지구적, 전 우주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생각한다면 지성 또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추켜세우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법 역시 위에 두 분이 잠깐 언급한 인물인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도출된 평등 때문에 강요되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도 언제 타인의 입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고, 이를 사회가 보장하는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역사적으로 만인의 인권과 생명이 동등하게 취급받아온 적은 없었습니다. 말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자를 착취하고, 심한 경우엔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게 역사였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모 재벌가에서 맷값을 주며 사람을 폭행한 적도 있고, 이에 대한 처벌도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힘든 수준에서 이루어졌죠. 29만원 할아버지, 황제노역, 여기저기서 터지는 갑질 등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대놓고 비웃는 사건들이 빵빵 터지는 게 현재 사회죠. 그나마도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꽤 평등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합리를 쉽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절대적인 권력이 줄어들고 있고, 언젠가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말하지만(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줄어들고 있는지, 아니면 형태만 바뀌는 것 뿐인지...), 아직도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대하는 법과 처벌은 너무나도 큰 격차가 있지요.


여기서 지켜볼 게 과연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못 가진 자들과 같다고 생각할 것인가? 천부인권과 자연법 역시 못 가진 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사회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란 인간의 가치를 조두순이나 기타 흉악한 범죄자나 모지리들과 가치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로크가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서 민주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보았지만, 전 그 반대로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중우정치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라고 비난하고 철인정치를 내세운 것이 이해가 됩니다.


지금 현 정치판을 보더라도 여야 모두 맹목적으로 지지만 하는 콘크리트들이 20~30%씩 깔려있고, 대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를 하고, 실리를 따라서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을 보면 더더욱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국민의 대표라고 뽑힌 국회의원들은 절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는 것이죠. 국민들은 돈 많고 정당의 입맛에 맞는 기득권 인사들 중에서 그나마 자기의 마음에 드는 인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자신의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들어도 그나마 덜 짜증나는 인물을 뽑는 것에 만족해야 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견제할 법적 장치도 국민들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시스템적으로 모든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는 봅니다.



여담으로 정치 시스템에서는 로크도 인간을 선하게만을 볼 수는 없었는지 권력을 둘로 나눠서 이권분립을 주장...(아시겠지만 삼권분립은 나중에 몽테스키외가 주장)
          
제로니모 20-12-15 22:53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청수님 처럼 쭉 읽은 후 제 감상평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부정적으로 보신단 생각이 많이 드네요. 물론 논리적으로 왜 부정적일수 밖엔 없는진 글 내용중에 합리적으로 잘 설명해주셨기에 더 토를 달순 없군요.

 

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부정적일수 밖엔 없는진, 말씀하신 여러 이유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렇게 불공정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혹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될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것이고 세상사람들은 그런 환경으로 바꾸고 개혁하려는 진심이 담긴 사람에게 힘을 실어 편차를 조금씩이라도 줄여 평균치에 최대한 가까워지게 해야하는게 세상 정의일테니깐요. 

 

그러나 우려하신 바대로 결코 세상 불공정과 불균등은 해소되지않을겁니다.

그렇다고 그게 진리니 그기에 순응해야만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전 단언컨대 노라고 대답할거 같습니다.

왜냐면..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이 로크가 주장한 거처럼 조금은 더 민주적이고 롤스가 40년을 얘기해온 대로 조금은 더 균등한 기회와 공정화 절차라도 부여받을수 있게 해야만하니깐요.

 

볼모의 땅에 먼저왔다며 깃발꽂고 자기 땅이라고 외치며 단 하나도 양보하지않고 동일노동에 비해 지나친 불노소득을 차지하는 저들 기득권 정치 경제 권력자들에게 영원히 노예론 지내게 할순 없지않겠습니까?

또 이런 자들과 그 자녀들에게만 관대한 세상이되어 시작부터 불공정한 룰로 경쟁하라 할순 없지않습니까? 가진자와 그렇지않은 자에게 기계적 공정의 잣대 조차 이미 형평성을 잃은 세상 룰이거늘 전체 90퍼를 소수의 기득층이 갖고 나머지 10퍼를 다수의 민중들에게 피터지게 싸워 나눠가져란건 해도 넘한 일이죠.

 

그래서 혁명이라도 일으키잖거냐면 네 혁명을 할수 있다면 저도 동참하겠습니다만 지금같은 민주화된 세상에서 칼을 들겠습니까 아님 총을 들겠습니까? ㅎ

 

민주적 절차와 법적 절차대로 하나씩 조금씩 한단계씩 바꿔 나가는 수 밖엔 없겠고 그럼에도 결단코 불공정과 불평등은 사라지진않을겁니다.

그걸 알지만 포기못하는건 결국 후손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기 위한 염원이 아닐까요? 

 

이 사회적 정의와 민주적 경쟁이란 아젠다의 본질적 역설이란 관점에서의 제 견해는 대강 이렇습니다.

 

시간되면 조금 더 글을 남기고 싶은데... 난중 다시 올게용 ^^
태지2 20-12-15 18:05
 
댓글이 없어졌는데.... 화면 캡춰를 못했었는데...
정직을 어느 사람이 어느 정도에서 지킬까? 자신도 그렇다 하는데...
그 주장함에 무엇이 있고 없을까?
과거 수도 었이 써 왔었던 말은 사실 대로인데... 제가 정직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있는 것의 파악인데 더불어 자신의 수준이 있는데 뭘 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가해 함으로서 이익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등 여러 사실인데 돈 먹기에서 사기가 있는 일 같네요........ 정확한 차이 대중과도 관련 되는데 사실을 말 해 보려 할 수는 있었을 것 같은데 안 하더군요...
     
팔상인 20-12-15 21:10
 
따라해라 핫산
후루뚜루뚜 후루뚜루뚜 후루뚜루뚜 다다다!
후루뚜루뚜 후루뚜루뚜 후루뚜루뚜 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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