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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9-09 11:44
승만경의 올바른 해설
 글쓴이 : 어비스
조회 : 498  



여태까지 써온 글이 승만경의 설법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지금껏 쓴 글들을 꾸준히 봐오신 분들은 이 해설을 통해 전반적으로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중요한 구절들만 가져와 해설 하였기 때문에 이것만 읽어도 불경을 많이 봐오신 분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보이게 될겁니다.

외도들과 논쟁하는 경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서 읽는 도중에 짜증이 일어나거나 읽기 싫어지는 마장이 올 수 있는데, 이것을 인내하고 봐야 마장이 극복되고 수준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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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번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주지(住持)번뇌와 기(起)번뇌입니다. 주지번뇌에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ㆍ욕애(欲愛)주지ㆍ색애(色愛)주지ㆍ유애(有愛)주지며, 이 네 가지 주지번뇌가 온갖 기번뇌를 일으킵니다. 기번뇌란 것은 찰나의 마음과 찰나에 서로 통하는 것이지마는, 세존이시여, 심불상응(心不相應)하는 것은 시작이 없는 무명주지(無明住持)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주지의 힘이 온갖 상번뇌(上煩惱)의 의지할 데며 종자이지만, 무명주지에 비하면 산수나 비유로 미칠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아서 무명주지의 힘은 저 네 가지 주지의 힘보다 매우 큽니다. 마치 악마 파순(波旬)이 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는 그 빛깔과 힘과 목숨과 권속과 여러 가지 도구가 가장 자재하고 뛰어나듯이 이 무명주지의 힘은 저 네 가지 주지의 힘보다 매우 크며,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상번뇌의 의지할 데가 되며, 또 네 가지 번뇌로 하여금 오래오래 머물게 하므로,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지혜로는 끊을 수 없고, 다만 여래의 보리의 지혜라야 끊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주지의 힘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또 마치 번뇌[取]의 연(緣)과 유루업(有漏業)의 인(因)으로 삼계(三界)를 내는 것같이 무명주지의 연과 무루업(無漏業)의 인으로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大力) 보살들의 세 가지 의생신(意生身)을 내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지위와 저 세 가지 의생신이 나는 것 및 무루업의 나는 것이 모두 무명주지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연이 있는 것이고, 연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의생과 무루업(無漏業)이 모두 무명주지를 반연한다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유애주지(有愛住地) 등 네 가지 주지는 무명주지로 업이 같지 않나이다.

무명주지를 여의는 것은 네 가지 주지를 여의는 것과는 달라서 부처님 자리에서 끊는 것이며, 부처님의 보리(菩提) 지혜로 끊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아라한ㆍ벽지불은 네 가지 주지는 끊었으나 무루를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재한 힘을 얻지 못하였으며, 증득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무루를 끊어내지 못하였다는 것은 곧 무명주지를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나 최후신(最後身) 보살은 무명주지에 덮였으므로 저 여러 가지 법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므로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끝내지 못하였습니다. 끊지 못하였으므로 허물이 남은 해탈이라 이름하고, 온갖 허물을 여읜 해탈이 되지 못하므로 나머지가 있는 청정이라 이름하고, 온갖 청정이라 하지 못하며, 남음이 있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이름할지언정, 온갖 공덕을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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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무명주지는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비상비비상처 이상의 단계이며 멸진정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대반열반경에 나옵니다.

<하나는 안에는 빛 모양이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 해탈하는[內有色相外觀色解脫]삼매요, 둘은 안에는 빛 모양이 없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內無色相外觀色] 해탈하는 삼매요, 셋은 깨끗하게 해탈하여 몸으로 증험하는[淨解脫身證] 삼매요, 넷은 공처(空處)해탈삼매요, 다섯은 식처(識處)해탈삼매요, 여섯은 무소유처(無所有處)해탈삼매요, 일곱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해탈삼매요, 여덟은 멸진정(滅盡定)해탈삼매니라. 또 아홉 가지가 있으니, 곧 9차제정(次第定)이니라. 4선(禪)과 4공(空)과 멸진정삼매니라. -대반열반경 中>

멸진정이 깨달음인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이 자리 또한 진정한 자유인 해탈이 아닙니다.

비상비비상처를 넘어 멸진정까지 자비로 여의어야 진정한 해탈이요 그렇지 못하면 허물이 남은 해탈입니다.

부처님의 보리의 지혜라야 끊을 수 있다 함은, 결국 깨달음은 위에서 건져주는 것이고 이에 대한 내용이 "마하반야바라밀경에 일체지는 부처님의 위신력 덕분이다"는 설법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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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세존이시여, 여래는 한정이 없는 시간에 머무시며, 여래ㆍ응ㆍ등정각은 끝없는 미래[後際]와 같이 머무시니, 여래가 한정이 없으시기 때문에 자비도 한정이 없으시어 세간을 위로하십니다.

한정이 없는 자비로 한정이 없는 세간을 위로하시니, 이렇게 말하는 이는 여래를 옳게 말하는 것이며, 만일 다시 말하기를, '한정이 없는 법과 항상 머무는 법이 온갖 세간의 귀의할 데가 된다'고 말하는 이도 역시 여래를 옳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도를 얻지 못한 세간과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 대하여 끝없는 미래[後際]와 같이 다함이 없는 귀의와 항상 머무는 귀의가 되는 이는 여래ㆍ응ㆍ등정각을 말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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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불교의 진리는 대자대비심입니다.

대보적경에 이르길 제일의가 자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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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세존이시여, 여래ㆍ응ㆍ등정각은 온갖 성문ㆍ연각의 경계가 아니니, 부사의공지(不思議空智)로써 온갖 번뇌장(煩惱藏)을 끊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번뇌장을 끊으면 곧 끝까지 이른 지혜[究竟智]이니, 이것을 제일의의 지혜라 합니다. 처음으로 성제를 안 지혜는 끝까지 이른 지혜가 아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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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부사의공지로써 번뇌장(미세망상 포함)을 끊어야 한다고 나오는데, 미세망상만 남은 공사상은 자비로 여의어야 합니다. 결국 부사의공지는 진공을 뜻하고 공을 총 망라한 18공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공입니다. 이에 대해 해설 가능한 구절이 승만경 후반에 나옵니다.

"부사의(不思議)한 것은 고가 멸한 진실한 법[滅諦]이니," 부사의공지는 진공을 의미합니다.

진공묘유에 대해서도 해설 하였는데 부처님의 자비로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에 공이 아닌 진공이며 청정합니다.
중생의 눈에만 세상이 공해 보일 뿐 부처님들 눈에는 자비로 가득찬 청정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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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세존이시여, 두 가지 여래장의 공한 지혜가 있사온데, 세존이시여, 공여래장(空如來藏)은 온갖 번뇌장을 여의었거나 벗어났거나 달라진 것이고, 세존이시여,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은 항하의 모래보다도 많은 여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아니한 부사의한 불법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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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공여래장은 번뇌장을 여의거나 변하는 것이므로 제행무상을 의미 합니다.

불공여래장은 공하지 않은 부사의한 불법으로써 제법실상을 의미 합니다.

모든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또한 불법의 하나이고 불공여래장(실상)에 포섭 되는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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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0. 한가지 진실한 법[一諦]


“세존이시여, 이 4성제(聖諦)에서 세 가지는 항상함이 없는 것이요, 한 가지는 바로 항상한 것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세 가지[三諦]는 유위(有爲)의 모양[相]에 들어가는 것이니, 유위의 모양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항상함이 없는 것이요, 항상함이 없는 것은 바로 허망한 법이며, 허망한 법은 진실한 것이 아니고[非諦], 항상한 것이 아니고, 의지할 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도제(道諦)는 제일의제(第一義諦)가 아니며, 항상한 것이 아니며, 의지할 데가 아닙니다.”


11. 한 가지 의지할 데[一依]

“고를 멸하는 한 가지 진실한 법[一苦滅諦]은 유위의 모양을 여의었으니, 유위의 모양을 여읜 것은 항상한 것이며, 항상한 것은 허망한 법이 아니며, 허망한 것이 아닌 법은 곧 진실한 것이며, 항상한 것이며 의지할 데입니다. 그러므로 고를 멸하는 진실한 법[滅諦]이 제일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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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대보적경에 이르길 제일의는 자비입니다.

대반열반경에 이르길 항상한 참나가 있다고 합니다.

고를 멸하는 진실한 법은 대자대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심이 불성이고 참나의 시작 입니다.

부처님은 공이 제일의라고 한적 없습니다. 공과 자비는 평등하지 않고 불교의 진리는 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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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곧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이 그것입니다. 모든 변천하는 법[諸行]이 항상함이 없다고 보는 것은 바로 단견이고 바른 소견이 아니며, 열반이 항상하다고 보는 것은 상견이고 바른 소견이 아니니, 허망한 생각으로 보는 탓으로 이와 같은 소견을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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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변천하는 법이 항상함이 없다고 보는것을 단견이라 함은, 위에서 설명 했듯이 제행무상의 법은 항상한 여래장 실상에 포용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번뇌에 가려진 중생들은 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는다는 단견을 냅니다.

열반이 항상하다고 보는것이 바른 소견이 아니라 함은, 중생들은 망상에 휘둘려서 멸진정같은 경계를 열반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설명 했듯이 이러한 열반은 허물이 있는 열반입니다. 멸진정까지 넘어서 대자대비심을 깨달은 열반은 항상하고 대반열반경 에서도 항상한 나에대해서 설법합니다.

또한, 승만경에서 열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것은 중생들은 허망한 생각으로 진제에 들어 이데아적인 세계에만 갇혀 있는 것을 열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반야경에서 모든것이 청정하다고 하듯이 진제와 속제 모두 다 이상적인 열반의 세계이고, 이것이 대반열반경에서 말하는 항상한 열반입니다.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를 쌍조하는 참된 열반이며 속세도 열반의 세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일대사인연으로 하생하는것 또한 열반입니다.

(열반경 40권본 447쪽)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를 얻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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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까닭으로 항상하다는 생각, 즐겁다는 생각, 나라는 생각,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뒤바뀐 소견이 아니니,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여래의 법신은 곧 항상한 바라밀(波羅蜜)이며, 즐거운 바라밀이며, 나라는 바라밀이며, 깨끗한 바라밀인 까닭입니다. 부처님 법신을 이렇게 보는 이는 바른 소견이라 하며, 바른 소견을 가진 이는 부처님의 참된 아들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입으로 났으며, 바른 법으로 났으며, 법으로 화생(火生)하여 불법 재물을 얻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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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열반경에서도 항상한 참나가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믿는 까닭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는것이 올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이 지금은 불경입니다. 불경의 법을 보는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유전] [오전 10:46] 남의 말 듣지 말고 불경의 법을 읽는 자신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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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3. 깨끗한 제 성품[自性淸淨]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란 것은 여래장(如來藏)을 의지할 것이니, 여래장인 까닭으로 그 비롯한 때[本際]를 알 수 없다 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음으로 해서 생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훌륭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난다, 죽는다 하는 생사라는 것은 바깥 것을 받아들이는 근(根)이 없어지고, 받아들이는 근이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생사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죽는다, 난다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법이 곧 여래장인데, 세간의 말로 말하므로 죽는다, 난다 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근(根)이 망가지는 것이요, 난다는 것은 새로운 근이 생기는 것일지언정, 여래장이 나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여래장은 유위의 모양을 여의었으므로, 여래장은 항상 머물러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의지할 데며, 거두어 지니는 것이며, 세워 일으키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여의지 않고, 끊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부사의한 불법이므로, 세존이시여, 끊어지고 벗어나고 달라지는 여러 가지 유위법의 의지가 되고 거두어 지니고 세워 일으키는 것이 곧 여래장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장이 없으면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나니, 그 까닭을 말하면, 지금 있는 6식(識)과 이 알음알이 지혜[心法智]와의 일곱 가지 법은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하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지 못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전제(前際)가 없어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법이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으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내가 아니고 중생이 아니고 목숨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므로 여래장은 몸이란 소견에 떨어진 중생이나 뒤바뀐 중생이나 공한 데 뜻이 어지러워진 중생에게는 그들의 경계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곧 법계장(法界藏)이며, 법신장(法身藏)이며, 출세간상상장(出世間上上藏)이며, 자성청정장(自性淸淨藏)입니다. 이 성품이 깨끗한 여래장으로서 객번뇌(客煩惱)ㆍ티끌번뇌[客塵煩惱]와 상번뇌에 물드는 것은 부사의한 여래의 경계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찰나의 선한 마음은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며, 찰나의 나쁜 마음도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니, 번뇌는 마음에 접촉하지 아니하고 마음도 번뇌에 접촉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접촉하지 아니하는 법으로 어떻게 마음을 물들일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러나 번뇌도 있고 번뇌가 마음을 물들이는 일도 있사오니, 성품이 깨끗한 마음으로서 물든다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불세존만이 진실한 눈이시며 진실한 지혜로서 법의 근본이 되시며 법을 통달하시어 바른 법의 의지할 데가 되었으므로 실제와 같이 아시고 보십니다."

승만 부인이 이렇게 알기 어려운 법을 말하여 부처님께 여쭐 때에 부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성품이 깨끗한 마음으로서 물든다는 것은 알기 어려우니라. 두 가지 법이 알기 어려운 것이니, 성품이 깨끗한 마음을 알기 어려우며, 그 마음이 번뇌에 물든다는 것도 알기 어려우니라. 이 두 가지 법은 너와 대승법을 성취한 보살마하살만이 듣고 이해할 수 있거니와, 다른 성문들은 다만 부처의 말씀 믿을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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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대반야경에 생노병사와 번뇌가 청정하다고 합니다. 모든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며, 모두 중생들을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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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4. 참 아들[眞子]

"만일 나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따라 믿고, 믿음이 더욱 자란 이는 분명한 믿음을 의지하여 법의 지혜를 따르고 그리하여 끝까지 얻게 되느니라. 법의 지혜를 따른다는 것은 마련된 근(根)과 뜻으로 이해함과 그 경계를 관찰하며, 업을 지어 과보(果報) 받는 것을 관찰하며, 아라한의 안(眼)을 관찰하며, 마음이 자재한 즐거움과 선정의 즐거움을 관찰하며,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大力) 보살들의 성스럽고 자재한 신통을 관찰하여 이 다섯 가지 공교한 관찰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내가 멸도한 뒤 이 다음 세상에서 나의 제자가 따라 믿고 믿음이 더욱 자라고 분명한 믿음을 의지하여 법의 지혜를 따르면, 성품이 깨끗한 마음이 번뇌에 물들었으면서도 구경(究竟)을 얻게 되느니라. 이 구경이라는 것은 대승도(大乘道)에 들어가는 원인이니, 여래라 믿는 이는 이러한 큰 이익이 있어서 깊은 이치를 비방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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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분명한 믿음을 의지하여 법의 지혜를 따르면 번뇌에 물들었으면서도 구경각을 이룬다고 나옵니다. 분명한 믿음을 얻고 법의 지혜를 따르려면 법을 알아야 하고 결국 염불수행을 하며 불경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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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은 대단한 경전입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대단한 경전을 전부 공으로 볼것인데, 이처럼 안타까운게 없습니다. 나나 유전님이 여태껏 선불교 갤러리에 설명해 왔던 내용들이 이 경전에도 들어있음을 보고, 법에 어긋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불경을 읽고 염불수행으로 어떤 비현실적인 체험을 해가는 과정은 결국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이라서 못믿겠다, 저래서 못믿겠다 하는 것도 다 자신의 선택이며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도 결국 자유의지 때문에 있는것이며, 처음부터 다 이해시키고 확신으로 가득찬 세상이라면 자유의지가 없는 로보트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은 진리가 없는 세상이며 결국 멸망합니다.

물앞에 데려가도 독인지 물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믿지않고 먹지 않는 것은 자유의지 때문이며, 이 때문에 분별력을 기르게 하고자 팔만사천법문을 설하신 것입니다.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라 하는것도 자유의지를 의미합니다.

이 자유의지는 오온에 방해되고 온갖 깨닫지 못한 신(귀신, 마귀)들에게 방해되며 공에 방해됩니다.

이러한 삼계의 모든 걸림으로부터 해방시켜 참된 자유(해탈)를 얻고자 하는것이 불교이며

이 대자유로 중생들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법이 불법(佛法)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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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1-09-09 13:15
 
자기 혼자만 열반을 해서 멸진정에 100억 년을 혼자 있다고 했을 때 그 기간이 감옥에 갇힌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고 불교 삼법인 중의 하나인 제행무상의 도리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이치로 100억 년 이든 1,000억 년 이든 그 상태로 그냥 놓아두지 않습니다. 그 멸진정 상태가 언젠가는 깨지게 되며 그렇게 멸진정이 깨지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수행해야 합니다. 멸진정이 너무 길어져서 그 습이 깊으면 처음 수행하는 것 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죠.
태지2 21-09-09 13:27
 
원본을 올려 보세요!
거짓말 이해하지 못한 해석이 많고, 저도 잘 모르지만... 제 경험에서는 절대로 한글로는 해석이 안 된다 생각을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요.

ps- 자신의 목숨보다 더 한 것도 걸을 수 있는지... 이 것에서 사람에 대한 악행과 정직이 있어야 하는 일 같은데...  한자와 그 출처, 그에 따른 또 출처를 밝히려고 했어야 했는데... 안 했네요? 왜 안 했었던 것 같습니까? 경전끼리도 타이틀 전이, 전파에서 석가모니 아랫 레벨이고, 그 인간들이 석가모니에게는 가만히 있었지만, 그 후 후학들이 잘났다에서 싸움이 붙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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