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오후 11:59] 6바라밀중 하나가 지계바라밀인데 계율을 갖추는 수행이죠. 그런데 여섯가지 바라밀중 하나만 완전히 구족해도 나머지 바라밀이 따라오는데, 이는 불교의 근본 현상에 대한 가르침이 연기법이기 때문입니다. 연기법은 모든것이 인연에 따라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러한 연기법에도 그 근본은 자비심 입니다. 계율의 완성은 자비심이며, 지혜를 구족함은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심이며, 선정을 닦아 상을 여의고 상을 여읜것조차 여의어 다시 상을 받음은 자비심 때문이며, 중생을 위한 자비심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견디는 인욕을 닦으며, 중생구제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며, 깨달은 바를 보시하는 법보시 또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해탈하고자 하는 이유는 나를 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며, 더 나아가 오탁악세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혼자만 깨달으면 끝난다는 소승법으로는 자비가 없으며 이런 깨달음은 방편일 뿐 참된 해탈이 아닙니다.
[심연] [오전 12:03] 계율 또한 자비심이 앞서서 지옥고를 두려워 하지 않고 파계하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지계입니다. 파계의 댓가로 받게될 지옥과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자비심이 더 앞서야만 높아질 수 있습니다. 법상에 집착말라는게 이런걸 의미하는 것이지, 법도 없고 진리도 없다고 삿된 견해를 가지면 막행막식을 하는 삿된경계에 떨어집니다.
[심연] [오전 12:31] 싯타르타가 왕자의 직위를 버리고 출가한 것이 백성들의 생노병사를 해결하겠다는 자비심이 근본이었죠. 이 때문에 6년을 고행했고 4무색정의 최고 경계이자 공사상의 마지막 단계인 비상비비상처정까지 이루고도 공사상으로 생노병사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 조차 버린겁니다. 여기서 마왕의 시험을 받고 최종적으로 등정각을 이룬 것이죠. 중학생이라도 이 일화를 보면 백성을 불쌍히 여긴 마음이 근본이라는걸 압니다. 이 일화 자체가 소승경에 등장하는데도 마음은 대승의 마음이지 소승의 마음이 아니죠.
<<대승기신론소 中 원효스님 저>>
부처님의 경지에서 발현하는 모든 공덕 가운데서, 여래는 오로지 대비만을 힘으로 삼기 때문에 이 '대비'만을 제시하여 '부처라는 인격[佛人]'을 드러내었다. 예컨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범인(凡人)과 성인의 힘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이 여섯 가지 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어린아이는 울음으로써 힘을 삼으니, 마음 속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선 울음부터 터뜨린다. 여인은 성냄으로써 힘을 삼으니, 성내고 난 뒤에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은 참는 것으로써 힘을 삼으니, 항상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챙긴 뒤에 할 말을 한다. 국왕은 교만함으로써 힘을 삼으니, 큰 세력[豪勢]을 가지고 할 말을 한다. 아라한(阿羅漢)은 한결같은 정진(精進)으로써 힘을 삼아서 할 말을 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로써 힘을 삼아서 중생에게 널리 이익 되게 한다." 이로써 모든 부처님은 대비로써 힘을 삼기 때문에 부처님의 '인격'을 표시하려고 '대비자'라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 세 구절로 불보(佛寶)에 대한 찬탄을 마친다.
[심연] [오전 2:25] 소승경으로 분류되는 증일아함경에도 나오네요. 부처님은 대비(큰 슬픔)로써 힘을 삼는다.
[유전] [오전 2:46] "부처님의 경지에서 발현하는 모든 공덕 가운데서, 여래는 오로지 대비만을 힘으로 삼기 때문에 이 '대비'만을 제시하여 부처라는 '인격'을 드러내었다." - 여기서 부처의 인격 즉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뜻이고 이 자체가 성품이죠. 견성성불 성품을 보는 자가 부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