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맥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책에서 인정상관이라는 분이 교징교라는 말을 쓰셨죠.
옳은 말이라 생각하여 그말을 인용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왜 자꾸 어느쪽으로 몰아가실려고 하나요?
님 만큼 교에 대하여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종교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어릴때나 군대있을때 과자 얻어먹으려고 다닌적은 빼고요.
레종프렌치님
나는 그렇치 않다고 몇번을 말했는데 님은 그렇다고 말하는 군요.
일면식도 없는 나에대하여 나보다 님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시네요.
더이상 님의 생각에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도덕경을 논할 뿐인데 왜 이런 댓글들이 달리는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공무도하님....승.
아니라는데....기를 쓰고 맞다고 하는 건 좀 그렇네요.
그나저나....상무욕. 상유욕에 대한 해석은....레종프레치님 승.
무욕과 유욕의 욕을...추구함 쯤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떠신지.
즉 추구함이 없는 세계....원리의 세계.
추구함이 있는 세계.....현상으로 드러나는 세계.
예를 들자면....만유인력의 법칙은 무욕의 세계.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유욕의 세계.
이 두가지 세계는 모두....오묘해서.....어느것 하나 버리면 안됩니다....늘 함께하고 있지요.
인간으로 치자면....의식과 몸뚱이의 세계는.....유욕.
의식과 몸뚱이를 지배하고 있는 근원적인 원리적 세계는....무욕.
사실 이 무욕의 세계가....실제로 인간의 90% 이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을 잃고 자고 있을 때에도....무욕의 세계는.....추우면 피부를 수축시키고 땀구멍을 닫아 줍니다.
세포막에서는 나트륨을 밷어내고 칼륨을 흡수합니다....우리가 의식 못하지만 그게 인간삶의 대부분이죠.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의 칼로리가....무욕의 세계가 쓰고 있거든요.
따라서...우리가 보통 나라고 하는 것은....거의 대부분 착각입니다....아주 일부분이지요.
무욕의 세계는....원리의 세계중 일부가 내 몸똥이와 내 의식에 적용되어 있을 뿐....우주원리와 구분되지 않습니다.
즉.....상대적인 세계가 아닙니다...너나의 구분이 없는 세계입니다....모두가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거든요.
성경에...천국은 내안에 있고 그리고 내밖에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똑같은 말인데....
천국과 지옥은 늘 함께 공존해 있는데...우리는 늘 땅의 세계(지옥)에 머물고 있습니다.
땅의 세계를 근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하늘의 세계를 발견하라는 게....성경입니다.
따라서...천국은 살아서 보는 겁니다....그래서 예수는 죽어서 천국간다 소릴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그 세계는 원리의 세계이므로....죽고 사는 세계가 아니며....죽고사는 세계는 오직 몸뚱아리에 해당합니다.
그 원리의 세계를....우리 선조들은....도라고 했으며.....일음일양이라고 했습니다.
음했다가 양했다가.....하는 것.....파동곡선을 생각하시면 될거 같습니다....성했다 쪼그라들었다...반복.
그 원리가 우주.지구.만물.인간에 모두 하나로 적용됩니다....그 적용된 현상의 세계를 지옥이라 합니다.
득도는 현상의 세계를 실제 지배하고 있는 원리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
득도해서...원리의 세계만 강조하는 것은....소승.
원리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늘 함께있는 있는 것이므로....현상의 세계를 원리의 세계처럼
돌아가게 만들어 보자는 게....대승이죠.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라...그게 그말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자와 본연의 존재와 같은 맥락이군요.
이에 대해서도 추후에 글을 써볼 예정입니다.
일단 지금은 도덕경 1장에 집중해 보지요.
상무욕에서 노자가 상(常)자를 왜 굳이 왜 썼는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세요.
욕심이 없으면(無欲) 으로 쓰는것이 항상 욕심이 없으면(常無欲)으로 쓰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볼때 항상 상(常)자는 불필요한 중복인 것이죠.
노자가 굳이 상(常)자를 쓴것은 순리로서의 삶에서의 욕(浴)을 특정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상무욕을 항상 욕심이 없으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하는 욕심이 없으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하는 욕심은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 생겨나는 욕(欲), 즉, 순리로서의 삶에서의 욕(欲)을 특정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항상하는 욕의 반대 개념으로 절대적인 욕, 또는 바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을 말하는 것이지요.
석가모니가 상욕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하나의 욕(바램)으로 보리수 나무아래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