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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7 23:25
사명당 설화
 글쓴이 : 레종프렌치
조회 : 844  

사명당에 관한 설화는 여러 가지로 그의 출가() 동인을 말하는 후처 응징 설화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활동한 이야기들로 대별할 수 있다. 후처 응징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명당은 속성()이 임()이고 전처 소생의 아들과 후처 소생의 아들이 있었다. 전처의 아들이 장가간 첫날밤에 어느 자객에 의해 목이 잘리자 신부는 누명을 벗고자 남복을 하고 집을 떠나서 범인 색출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범인이 바로 시집의 계모의 사주를 받은 하인임을 밝혀내고 이를 시아버지에게 알린다.

시아버지는 벽장에 숨겨 둔 항아리 속에서 아들의 머리를 찾아내고 후처와 그의 아들을 모두 묶어 집과 함께 불태워 버린 뒤 재산을 노복에게 나누어 주고 집을 떠난다.

이 설화는 「사명당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전주·안동·밀양 등 여러 지역에서 십여 편이 채록되었다. 임진왜란 시에 사명당의 활약상을 담은 설화는 주로 「임진록」에 집결되어 있는데, 구전설화로도 채록된 것이 많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명당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왜왕이 왜국의 시를 병풍에 적어 지나는 길에 진열해 놓고 자국의 문물이 번성함을 자랑하자 이를 모두 암송해서 모작()이라 했다.

왜왕은 사명당을 큰 무쇠 막에 넣고 숯불을 피워 무쇠 막을 달구어 데어 죽게 하였으나, 사명당은 ‘빙()’ 자를 천장에 써 붙이고 도술을 부려 왜왕이 방문을 열었을 때는 수염과 눈썹에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또 왜왕은 무쇠 말을 벌겋게 달구어 놓고 이것을 타 보라고 사명당에게 요구하자 사명당이 비를 오게 해 무쇠 말을 식혔다. 그리고 비를 계속 내리게 하여 왜국을 물에 잠기게 해 왜왕의 항복을 받고 매년 인피() 300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공하도록 했다.

이러한 설화는 모두 임진왜란 시에 형성된 왜적에 대한 민족적 적개심과 민족적 긍지를 반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에는 사명당영당비()가 있는데 이 비는 국가의 큰 일이 날 때마다 몇 말씩의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헌에 기록된 사명대사의 설화로는 『지봉유설()』·『청야만집()』 등에 수록된 가등청정과의 일화가 있다.

사명당이 왜장 청정의 진영을 들어갈 때 수 리에 걸쳐 기치창검(예전에 군대에서 쓰던 깃발, 창, 칼 따위를 통틀어 이르던 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나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가등청정()은 사명당에게 귀국에 보물이 있는가 물었다.

사명당은 그대의 머리가 오직 보물이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너의 머리에 천금 만호()의 상이 걸려 있으니 어찌 보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사명당이 꽂아 놓은 지팡이라는 수목설화가 있는데, 사명당은 지팡이를 꽂아 놓고 사라지며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사명당설화」는 구국도술설화로서 민족의 사랑을 받고 널리 전승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명당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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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im 16-06-17 23:31
 
우리나라 설화라 그런지 재미있고 흥미는 가네요^^
레종프렌치 16-06-17 23:35
 
저 땀흘리는 비석이 바로 표충비임....원래 표충사(절이 아니고 사당)가 있다가 표충사(절)로 옮겨 가고 비석만 남았는데 이게 그 유명한 국난시 땀흘리는 비석임..

[설화내용]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분연히 앞장섰던 승병대장 사명대사의 구국의지를 기리기 위해 조선조 선조대왕은 명을 내렸다.
『사명대사의 고향에 전각을 세우고 그곳에 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여 훗날까지 스님의 충혼을 모시도록 해라.』
임금의 명이 떨어지자 사명대사의 출생지인 경남 밀양군 무안면 산강리에는 사당이 세워지고 스님의 영정이 봉안됐으며, 선조는 이 전각을 「표충사」라 사액했다.
『누구든 이 표충사 근처를 어지럽히거나 신성시 하지 않을시는 엄히 다스리도록 하라.』
친히 사액한 선조는 고을 원에게 이처럼 신신당부하여 사명 스님의 호국정신을 치하했다.
그로부터 관료는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까지도 그 사당 앞을 지날 때는 늘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올렸다.
그렇게 백 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당우가 퇴락하자 사명 스님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는 표충사를 중수하는 동시에 스님의 공적을 기리는 표충비를 세웠다.
때는 영조 14년, 1738년이었다.
표충비를 세울 돌을 고르기 위해 경상도 경산까지 가서 높이 3.9m 폭 97cm, 두께 70cm크기의 돌을 구해온 남붕 스님은 당시 정승 이익현에게 비문을 부탁했다.
『내 본시 승려의 부탁으로 글 짓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나 오직 대사님의 사정이 간절하여 이를 물리치기 어려워 특례로 곧 비에 글월을 새기는 것입니다.』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했던 당시의 정승 역시 사명대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표충비가 세워지고 다시 백 년 후, 그러니까 조선 제24대 헌종 5년(1839),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월파선사는 표충사를 밀양 영정사로 옮기고 절 이름을 「표충사」로 바꿨다.
표충서원을 옮겨 가자 사명 스님의 고향엔 표충비만 남게 됐다.

지방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지난날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이 비석은 현재 몸체에 금이 간 채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비석 몸체에 금이 간 것은 일제 때였다. 사명대사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일본 사람들은 잔꾀를 냈다.
『저 비석은 보기만 해도 왠지 섬뜩하단 말이야. 마치 사명대사 귀신이라도 담긴 것만 같으니 무슨 방법을 쓰는 것이 어떻겠소?』
『좋소. 나도 동감입니다. 저 비석 옆에다 담배 창고를 옮겨 짓도록 합시다.』
일본인들이 사명대사의 혈맥을 끊기 위해 비석 옆에다 창고를 세우던 날이었다.
비석은 마치 살아있는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못 견딜 정도로 몸부리치니 비석 몸체에 마치 피를 흘리는 듯한 형상으로 「확」금이 갔다.
일본 사람들이 표충비를 무서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용맹스런 승장의 비라는 점도 없지 않으나 마치 스님의 구국혼이 비석에 어린 듯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면 비석에서 땀이 흐른다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진 것이다.
예전 것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비석이 세워진 후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땀을 흘렸다는 첫 기록은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기 7일 전으로 되어 있다.
비석이 있는 곳을 지나던 한 아낙은 매서운 겨울 날씨인데도 비석몸체에서 땀이 흐르듯 물기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낙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볼 일이 아니다 싶어 관가로 달려가 고했다.
당시 비석이 흘린 땀이 3말 1되나 된다고 한다.
그 뒤 군지(郡誌)에 기록된 표충비의 땀 기록은

경술합방,

기미독립만세운동,

8 · I5해방, 6·25동란,

4 ·19학생의거,

5· 16 혁명 등 여섯 차례이다. 그 중 가장 많은 땀을 흘린 것은 기미년 만세사건 때와 5·16 혁명 때로 기미독립운동 때는 19일간에 걸쳐 5말 7되를, 5 ·16 혁명 때는 5일간에 5말 7되를 흘렸다.
군(郡)의 공식 기록은 없으나 육영수 여사가 입적한 다음 날도 비석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 레종추가 :
1979  10. 26 사태 5일전 오전 6시 ~ 오후 4시
1980  칼 폭파사건 (4시간)
1983 버마랑군사태 (오후 4시 ~ 오후 10시)
1984 북한 수재 구호미 접수시 (오후 2시 ~ 7시)
1985 남북고향방문단 교환시 (5시간)
1990 고르바초프 제주도 방문시

이렇듯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때면 미리 땀을 흘려 어려움을 예고해 주니 마을 사람들은 비석의 영험을 받아들여 대소사에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6 ·25동란 때는 전쟁이 일어나기 25일 전부터3말 8되나 홀렸다.
『표충비가 땀을 흘린다는 소문이 동네에 나돌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아무래도 무슨 변이 있을 조짐인 듯하다며 양식이며 비상약품 등을 준비했지요.』
6·25무렵을 회고하는 주민 이씨의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땀 흘리는 비석의 영험을 믿으며 크고 작은 일에 조심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을에선 사명대사의 구국 충혼이 이 표충비에 서려 있다고 믿고 있지요. 매년 관광 철이면 이 비석을 보려고 1백 여 명의 관광객이 들르는데 주민들은 너나없이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강조하며 자랑스럽게 안내합니다.』
사명당 추모회 구장회 회장의 말처럼 마을 주민들은 사명대사의 정신을 이어 대체로 정의감이 강하다는 소문이다.
비석이 땀을 흘릴 때는 사람이 땀 흘리는 형상과 똑같아서 앞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뺨으로 흘러내리는 듯 비석 전후면 머리 쪽에서 땀이 나와 비문 글귀 사이를 타고 흘러내린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외지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기후·습도 운운하지만 여러 차례 땀 흘리는 광경을 목격한 저희들은 사명대사의 충혼이 서리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촌노 한 분은 자신의 믿음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62년 장마 때는 보리가 썩어 나갈 정도였는데도 비석엔 습기 하나 차지 않았다.』
며 사명대사의 높은 도력을 거듭 강조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는 이 비석이 나라의 경사로 땀 흘리는 일이 많기를 발원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땀흘리는 비석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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