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축구 관련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손흥민 영상을 본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의 반응 2차 번역으로 올려봅니다.
영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영상을 대략적으로 훑어본 바, 손흥민의 출생부터 시작해 아버지의 코치를 받던 유년시절 그리고 독일로 건너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관한 내용, 이후 EPL 토트넘으로 이적하기까지의 스토리를 득점 수나 팀 이적료 등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편한 감상 되시길 바라며 2차 번역이므로 다소 의역 및 오역이 있을 수 있는 점 너그럽게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영상 제목>
손흥민 이야기: 아시아에서 몸값 가장 비싼, 저평가 된 소년의 스토리
<댓글>
William Bernard R
토트넘의 서포터들 여기 있나… 토트넘을 응원한다면 좋아요 눌러.
ㄴoceng lana
COYS! 가자 스퍼스!
Jack yerikho
31년 인생 통 들어 축구를 봐 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유일하게
유럽 3대 엘리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 선수로써 날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는 손흥민이야.
나카타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팀을 자주 옮기며 일찍 은퇴해 버렸고
그 다음 왼발잡이로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프리킥으로 유명했던 선수가 있었지만
속해 있던 클럽이 스코티쉬 리그의 셀틱스에 불과했지.
그 다음 맨유의 박지성이 있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기술이나
드리블 능력이 손흥민보단 탄탄하지가 못 했어.
그리고 인터밀란의 우측 윙백인 나카모토는 그리 강렬한 선수는 아니고
도르트문트의 카가와는 항상 뮌헨의 강력한 힘의 그늘 밑에 가려져 있어 왔지.
그리고… 오직 이 손흥민만이 가장 빛나는 선수야.
그는 마드리드, 뮌헨, 리버풀, 멘시티 등등의 거인과도 같은
모든 유럽팀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선수임.
ㄴRobby Mardian Asmara
그 셀틱에서 뛰었던 선수 이름은 슌스케 나카무라야.
나카모토는 우측이 아니라 좌측 윙백이고.
ㄴJack yerikho
아 맞다 나카무라였지.
그리고 나카모토는 잠브로타같이 좌우 어떤 위치에서든 뛸 수 있어.
ㄴAlfin Riansyah
난 박지성~
ㄴErtiga Esemka
정말 그래. 유럽 5대 리그에서 뛴 더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있었지.
대부분 일본 출신이지만 오직 손흥민만이 가장 독보적이고 뛰어나.
Cool And Stuff Empire HD
안녕하세요(영어로 표기)~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야.
yeni sutisna
이 친구를 사랑해.
FrogVange
야 손흥민이네. 하지만 헤리 케인이 없었다면 덜 좋았을 거야.(?)
Rizki Amaluddin
결국 손흥민을 다뤄줬군. 고마워요~
Ramdanu An anjanu
토트넘이 최고지.
Orihara Izaya
스포츠 분야에서 아시아 남자들이 항상 저평가 당하는 건
그냥 숙명 같은 거야. 베트민턴이나 탁구 같은 운동 말고.
왜냐면 아시아인의 피지컬적인 능력이 백인이나 흑인들 보다 약하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지.
Prabu Gober
난 손흥민을 초월하기로 결정했어.
난 세상에서 최고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거야. 날 위해 기도해 줘 친구들.
Ahmad Solekhudin
카가와와 박지성 스토리도 만들어 줘.
Thominhas
아시아의 왕!
Nnnnnnnn Clouds
아버지를 따르길 원하는 아들이라니 아!
자신의 아이를 17살 만에 축구 클럽에 입단 시켰어.
어렸을 때부터 작은 육체적 훈련부터 드리블링까지 시켜서
클럽에 가선 그런 힘든 훈련 덕분에 정신적으로 강할 수 있었던 거지.
전직 축구 선수였던 손흥민의 아버지는 축구에 있어서 그의 아들을
매우 영리하게 잘 관리한 거야. 결혼 얘기도 그래.
자신의 아들이 은퇴하기 전엔 결혼 승낙을 안 할 거라는 것도 축구에만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거지.
Lesdoup 5
근데 여튼간 이탈리아 리그에는 가지마. 나중에 안정환처럼 된다.
이탈리아는 한국한테 졌었지. 근데 페루지아는
그 이유로 계약을 파기해 버렸어. 전혀 프로페셔널한 나라가 아니야.
Devan Laudra
손은 어메이징해.
Ramadan Rama
성공한 사람들도 항상 저평가 받았어야만 했어.
난 공원(park)을 볼 때마다 박지성 생각이 계속 나.
M home
저평가 된 거 전혀 없어.
과거에도 많은 유럽 클럽들이 그에게 관심이 있었어.
하지만 몸값이 매우 비쌌지. 독일리그를 전혀 보지 않았다면 모를 거야.
18세 이후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아시아에서 온 미래의 잠재적 슈퍼스타라고 불렸어.
Arif Patience Bus
손흥민 영상 오래 기다렸어.
Jimy Law
손은 아시아 최고야. 그는 책임감 있는 축구 선수임.
Noval Regza
손 같은 좋은 선수가 어떻게 유럽 탑 클럽들의
이적 시장 레이다에 걸려들지 않았던 건지 놀랍군.
Bahar Taram
그는 여튼 박지성 보단 잘 생겼어.
Akmal Latif
손흥민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한국인이야.
michael renaldy
손흥민 출생 월과 일이 나랑 같네. 7월 8일
Sudarman Harahap
토트넘 파이팅!
AFD Okay
손흥민의 드리블 속도는 정말…
Davitbona Lumbangaol
위대한 예수님께서(?) 손 너를 축복하실 거야.
Cross Supporters
유럽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빛날 시간이야.
Ramdanu An anjanu
손과 헤리케인 듀오가 뭉치면 그냥 폭발이야.
Harry Hazard
헤리 케인 이야기도 다뤄줘.
Pipin Firdaus
토트넘의 플래그쉽, 대표선수는 손이야.
ARDI DKL
인도네시아 로컬 선수들도 좀 다뤄줘.
Faizhin Albar
박지성에 대한 영상도 만들어 줘 제발.
Fitriana Wulandari
박지성 영상 부탁
I Max
이게 내가 바로 기다리던 영상임.
Gold Gamer
멋져 멋져
Adam Jidun
다음 번에 카가와 신지 영상 부탁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선수들 인기가 많은 듯 합니다. 카가와 언급이 많이 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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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그럴수밖에 없는게
태평양전쟁때 일본과 빅딜을해서 인도차이나반도의 통치권 일부를 할양받는 대신
일본과 함께 미국에 선전포고(미친짓)까지했던 나라입니다.
군사적으로 직접 행동한게 없어서 다들 잊고 있는데 말이죠
차근차근 따지고보면 제4의 전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국가에요.
갠적으로 나카타가 저리 고평가 받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페루자서 반짝하고 로마서 토티백업에 저니맨으로 선수생활도 짧았는데 유달리 고평가 되네요.
일선수들 중엔 나카모토, 카가와 정도가 최고의 선수라 생각되는데 그 선수들도 박지성이나 손흥민엔 미치지 못하죠.
다만 아직 손흥민 팀커리어가 너무 없어서 그게 아쉬울 뿐입니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이 적기일텐데 충성도 좋지만 좋은 제안이 있다면 잘 고려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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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yerikho
31년 인생 통 들어 축구를 봐 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유일하게
유럽 3대 엘리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 선수로써 날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는 손흥민이야.
나카타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팀을 자주 옮기며 일찍 은퇴해 버렸고
그 다음 왼발잡이로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프리킥으로 유명했던 선수가 있었지만
속해 있던 클럽이 스코티쉬 리그의 셀틱스에 불과했지.
그 다음 맨유의 박지성이 있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기술이나
드리블 능력이 손흥민보단 탄탄하지가 못 했어.
그리고 인터밀란의 우측 윙백인 나카모토는 그리 강렬한 선수는 아니고
도르트문트의 카가와는 항상 뮌헨의 강력한 힘의 그늘 밑에 가려져 있어 왔지.
그리고… 오직 이 손흥민만이 가장 빛나는 선수야.
그는 마드리드, 뮌헨, 리버풀, 멘시티 등등의 거인과도 같은
모든 유럽팀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선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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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고 "독일을 배워라"고 하는 한국인이 많은데 이미 일본은 독일처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유대인처럼 하지 않는 한국"입니다.
지금 한국처럼 외국인노동자 대량수입 + 기업해외이전 진행돼 양극화/저출산 악화되는 시기에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나라는 역사상 단 1개도 없습니다.
유대인이 지금 한국처럼 했으면 독일이 유대인에게 사죄와 배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독일이 유대인에게 한 배상도, 600만명 학살에 비해서는 매우 적습니다.
이 정도 배상을 가지고 독일 띄울 정도면, 일본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준 도움도 평가해야 합니다.
"90년대 중반에 대다수 국민이 희망, 기대에 넘쳤는데, 요즘은 암울하다"는 글 올라오면
"90년대 중반은 비정상적 거품이기 때문에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댓글이 달리는데
겨우 90년대 중반을 비정상적 거품이라고 할 정도면 너무 초라합니다.
한국은 80년대 초 4대 부채국 운운할 정도로, 동시대 중남미처럼 IMF 구제금융 신청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 방한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40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외환위기를 피했습니다.
1998년에 한국정부가 IMF에게 실제로 받은 구제금융 액수가 195억 달러입니다.
무역규모 감안하면, 1983년 40억 달러의 가치가 1998년 195억 달러보다 작지 않습니다.
1997년도 한국은 일본과 통화 스와프로 원래 일본에게 달러 받을 수 있었는데, 미국이 막아서 IMF행.
2008년 말 한국은 환율이 1달러=900원에서 1600원으로 치솟고, 가용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났는데
미국 중국 일본과 통화 스와프 체결로 IMF행을 면했습니다.
즉, 1997년 IMF 행이 필연이었다는 논리대로 똑같이 따져보면 1983년, 2008년도 IMF 갔어야 합니다.
세 시기의 다른 점은 딱 하나. 1997년은 미국이 "한국 봐줘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미국에게 양털깎기 당했다 ㄷㄷㄷ"이란 관점대로 따지면 한국도 당했습니다.
1인당 GDP, 경제성장률, 출산율을 비교해보면
1985년 일본 1만1천불, 1퍼센트대, 1.7명대 VS 33년이 지난 2018년 일본 4만불, 1퍼센트, 1.4명대
1996년 한국 1만3천불, 6퍼센트대, 1.7명대 VS 22년이 지난 2018년 한국 3만불, 3퍼센트, 0.9명대
대다수 한국인이 내심 기대하는 국력 수준이 되려면 1997년 IMF로 가선 안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은 IMF 극복으로 다 보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이 한국의 국운을 결정하는 시기였는데
양극화/저출산 부채질하는 외국인 대량이주 정책을 시작했으니... 정권연장 실패한 근본원인은 이겁니다.